광야와 봉우리/김민기님을 추모하며/240723
광야와 봉우리
광야(曠野)/이육사(1904~1944, 경북 안동)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참아 이곳을 범(氾)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여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날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봉우리/김민기(1951~2024)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애길 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나 한텐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 였지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 거야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얼마 남진 않았는데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 보는 거야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 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 숨 잘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 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거기 부러진 나무 등걸에
걸터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이 봐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뒤돌아서서 고함을 치거나
손을 흔들어 댈 필요는 없어
난 바람에 나부끼는
자네 옷자락을 이 아래에서도
똑똑히 알아 볼 수
있을 테니까 말야
또 그렇다고 괜히 허전해 하면서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 같은 것이 저며 올 때면
그럴 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 일뿐이라고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에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 지도 몰라
그래 친구야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별 하나가 졌다.
“별이 아름다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꽃 한 송이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오아시스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죠.“
어린왕자에 나오는 말이다.
그분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셨지만
숨지는 않았다.
별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별에서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고,
학전(이)라는 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려 수많은 꽃을 피웠다.
“별이 아름다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그냥 노래를 만들어 불렀을 뿐인데
의도치 않게 민주화 운동, 반독재 투쟁의 상징인물이 되어버린 인물,
가수이자 학전 대표로 활동해 오신 김민기 선생께서 별세하셨다.
가인박명()이라 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너무 아까운 나이에 가셨다.
그분의 부음을 듣고 문득 이육사님의 광야라는 시가 떠오른 건
아침이슬의 가사와도 무관치는 않겠지만,
그 보다는 그분의 선구적이고 개척자 같은 이미지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침이슬이라는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봉우리라는 노래의 가사가 오히려 가슴에 와 닿는다.
아침이슬은 의도 없이 그냥 만든 노래가
의도치 않게 민주화 운동의 애국가 같은 노래가 되어버렸다고 하고
이 노래로 인해 독재탄압 세력의 타깃이 되어버렸다.
봉우리란 노래는 1984년 LA올림픽을 마치고 메달을 받지 못하고 탈락해
쓸쓸하게 귀국한 운동선수들의 다큐멘터리 방송 주제음악으로 만들어졌고,
상록수란 노래는 공장노동자들의 합동결혼식 축가로 만든 곡이라 한다.
수묵화처럼 담백하고 담담한 어조로 읊조리듯 부르는
님의 노래가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는 아침입니다.
삼가 아름답게 살다 가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이 평안히 잠드소서.
김민기님의 추모와 함께 간단히 일대기를 돌아볼 수 있는 기사와
김민기님의 노래 세곡 함께 올려봅니다.
오늘 하루도 건강과 행복이 함께하시길...
(음표) 김민기의 “봉우리”
https://youtu.be/3DMQc76GfzQ?si=nlS3HiScwX99ce-w
(음표) 김민기의 “상록수”
https://youtu.be/KsaNs_hLpSk?si=9sw0_QALy7lwg1h8
(음표) 김민기의 “아침이슬”
***한국일보 기사 링크
"나 이제 가노라"는 '아침이슬' 가사처럼...김민기라는 큰 '봉우리' 떠났다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4072217030001096?did=k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