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여행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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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剛山도 息後景 - 풀잎처럼 눕자

햇살처럼 가족방/햇살이의 풍경첩

담양 금성산성/150425

서까래 2015. 4. 27. 16:02

 

보국문과 충용문을 지나 노적봉으로 오른다.
연둣빛과  녹색으로 곱게 물든 추월산과 눈이 시리도록 푸른 담양호를 바라보며 오르내리는

 충용문에서 노적봉 그리고 철마봉을 지나 서문으로 내려오는 길이 전혀 힘겹지가 않다.
서문에서 담양호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서문으로  돌아와 북문의 가파른 돌길을
따라 올라 북문을 코앞에 두고 담얌호와 추월산이 코앞에 조망되는 그늘진 성벽에 쉼터를 자리하고 앉아

이제야 지친 몸을 달래며 배낭속의 짐을 줄여본다.

 

산도 좋고 물도 좋고 날씨도 좋고...
날개만 있다면 담양호와 추월산 상공을 휘적휘적  날아 다니련만,
안타깝게도  내겐 날개가 없어라...

하지만 날개가 없으면 어떠랴?
날개를 대신할 다리가 있고 아름다운 자연이  나와 벗하여 주니,

내  비록 호연지기도 모르는 무뢰배에 불과하지만 이 아름다운 자연을 벗하여 밤늦도록 그와 함께 할지니...

나 오늘은 한 마리의 도요새이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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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꽃시장을 다녀와 가게를 대충 정리해 주고 10시를 막 넘긴 시각에

담양 금성산성으로 향한다.

목적지를 따로 정해놓지 않았기에 한재골 삼거리를 지나기 전까지도

어디로 갈지를 고심하다가 그냥 금성산성으로 향했다.

 

시간여유가 있으면 북문에서 능선길을 따라 강천산을 거쳐 강천사까지 내려갔다가

운대봉 방향으로 올라 동문을 거쳐서 하산할 계획이었으나

늦은 시각에 산행길에 오른데다가 노적봉과 철마봉을 거쳐 

서문에서 담양호 방향으로 내려갔다 올라오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겨서

강천사까지 가는 계획은 고이 접었다.

 

점심시간을 넘긴터라 허기가 지고 배낭속의 짐은 무겁지만

북문의 가파른 길을 앞에 두고 배를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북문 가까이 이르러 보따리를 풀고

담양호와 추월산을 마주하고 퍼질러 앉아 입도 즐기고 느긋하게 카톡도 보내며 휴식을 취한다.

 

그리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일찌기 인적이 끊어진 길을 따라 북문을 거쳐 연대봉을 지나 운대봉에 이르러

다시 배낭을 풀고 강천산을 마주하고 앉아 시간을 보낸다.

 

동문으로 내려섰다가 시루봉과 동자암을 지나 충용문에 이르니 해가 서산에 걸렸다.

어둠이 깔린 주차장에 홀로 주차되어 있는 차를 몰고 부리나케 가고 있는데,

문득 휴대폰을 보니 아내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몇통이 와있다.

에고, 오늘도 너무 늦어버렸고나@@

 " 나 금방 도착하니까,

조금만 기다려^^""

  

 

담양 산성산(금성산성)은?

전남 담양군 금성면 산성산(山城山·603m)은 추풍령에서 소백산맥과 갈라져 나온 노령산맥의 한 자락이다. 노령산맥은 전남에 이르러 두 갈래로 나뉘는데 남쪽으로는 산성산을 비롯, 추월산·병풍산을 이룬다. 다른 하나는 백암산·입암산·불갑산 등 서해 쪽으로 뻗어나간다. 산성산은 담양과 전북 순창의 경계를 이루며 강천산·회문산 등과 맞닿아 있다. 산성산은 그 이름처럼 옛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다. 산성의 총 길이는 7.3㎞에 이른다. 산성의 이름이 ‘금성산성’이라서 외지 사람들에게는 ‘금성산’으로 더 잘 알려졌다.

이 산을 에두르고 있는 금성산성은 삼국시대 때부터 축조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적 제353호로 지정된 이 산성은 고려 우왕 6년(1380년) 왜구 침입에 대비해 개축됐다는 기록이 ‘고려사절요’에 처음 등장한다. 임진왜란 이후 장성의 입암산성, 무주의 적상산성과 함께 호남의 3대 산성으로 불린다.

조선조 중기에는 성내에 130여가구가 살았으며, 이웃한 담양·순창 등지에서 거둬들인 군량미가 1만 2000~2만여석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호남지역의 군사 요충지로 자리 잡으면서 숱한 전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정유재란 때는 왜군과의 공방전으로 남문 앞 ‘이천골(二千骨)’이란 협곡에 아군과 적군의 시체 2000여구가 쌓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골짜기는 ‘골 곡(谷)자’ 대신 ‘뼈 골(骨)자’를 쓴다.

1894년 갑오 농민전쟁 당시 동학군이 이곳을 한때 점령했다. 녹두장군 전봉준(1855~1895)은 금성산성과 북쪽으로 이웃한 순창군 쌍치면 피노마을에서 체포되기 이전까지 이곳에서 전투를 지휘하기도 했다. 농민전쟁 당시 성내의 민가와 관아·대장청 등 모든 시설이 일본군과 관군에 의해 완전히 소실되고 그 흔적만 남아 있다. 한국전쟁 때는 미처 북으로 후퇴하지 못한 빨치산의 은거지로 이용되기도 했다. 산성산이 이처럼 전투의 거점으로 자리한 것은 봉우리와 협곡으로 이뤄진 산세 때문이다. 금성산성은 외곽이 30m가 넘는 수직 바위로 둘러싸여 전략적 요충지로 손색이 없는 지형이다. 주변에는 성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높은 산이 없어 천연적인 요새를 형성하고 있다. 항아리형 분지로서, 전체 면적은 120여만㎡(36만여평)이다. 외성의 둘레는 6486m, 내성은 859m이다. 이곳에는 외성·내성·옹성·성문·망대 등을 비롯해 관아·사찰·민가·우물터 등이 남아 있다. 외적의 침입 등으로부터 장기 농성(城)과 방어가 쉬운 입지 조건을 갖췄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매표소와 금성산성

주차장 부근에 개발게획이 있나보다.

추월산

조금 오르다보면 보국문(남문외문)이 나오고

충용문도 모습을 드러낸다.

충용문(남문 내문)

성벽에 자리한 민들레와 꽃마리

 

충용문에서 보국문을 내려다 보며 노적봉 방향으로 오른다.

금창초꽃도 피고

노적봉

담양호와 추월산

병꽃도 피고

구슬봉이꽃

양지꽃

철마봉이 가까워지고....

고추나무꽃

성안에 있는 유일한 민가

철마봉 정상부

각시붓꽃

철마봉 부근이 담양호를 조망하기는 아주 좋은 곳이다.

용마루길 시점의 데크교

서문아래 계곡에서 얼굴을 씻고 계곡을 따라 담양호방향으로 내려갔다가

차도와 만나는 삼거리에서 다시 서문으로 올라간다.

 

서문에서 북문까지는 가파른 오르막 길이다.

애기똥풀

서문 바로 아래 성벽에 추월산과 담양호가 잘 조망되는 그늘진 쉼터가 있어 여장을 풀고 느긋하게 휴식을 즐긴다.

배낭속의 짐이 절반으로 줄었다.

북문

강천저수지갈림길에서 연대봉으로

연대봉에서 운대봉에 이르는 능선길

최근들어 연대봉에 세워진 정상석

아찔해 보이는 운대봉

운대봉에서도 신선주 한잔은 마시고 가야지...

강천산과 구장군폭포

동문터

뒤돌아본 운대봉

 

시루봉

그냥 산행사진일 뿐인걸 역광이면 어떠랴?

그냥 있는 그대로 담으면 그만....

 

동자암

 

서산으로 기우는 해를 바라보며 하산...

주차장엔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