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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剛山도 息後景 - 풀잎처럼 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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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의자를 위한 저녁기도 / 정호승/230104

서까래 2023. 3. 31. 10:08

낡은 의자를 위한 저녁기도

/ 정호승

 

그동안 내가 앉아 있었던 의자들은

모두 나무가 되기를

더 이상 봄이 오지 않아도

의자마다 싱싱한 뿌리가 돋아

땅속 깊이깊이 실뿌리를 내리기를

실뿌리에 매달린 눈물들은

모두 작은 미소가 되어

복사꽃처럼 환하게 땅속을 밝히기를

 

그동안 내가 살아오는 동안

앉아 있었던 의자들은 모두

플라타너스 잎새처럼

고요히 바람에 흔들리기를

더 이상 새들이 날아오지 않아도

높게 높게 가지를 뻗어

별들이 쉬어가는 숲이 되기를

쉬어가는 별마다 새가 되기를

 

나는 왜 당신의 가난한

의자가 되어주지 못하고

당신의 의자에만 앉으려고

허둥지둥 달려왔는지

나는 왜 당신의 의자 한번 고쳐주지 못하고

부서진 의자를 다시 부수고 말았는지

 

산다는 것은 결국

낡은 의자 하나 차지하는 일이었을 뿐

작고 낡은 의자에 한번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었을 뿐

..................

 

산다는 것이

고작 낡은 의자 하나 차지하는 것이요.

작고 낡은 의자에 한번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었을 뿐이라는데,

 

이 세상에서 낡은 의자하나 차지하는 것도 녹록치가 않은 일이요.

낡고 작은 의자에 한번 앉았다가

일어나는 것마저도 사실은 고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낡고 보잘 것 없는 의자가 대체 뭐라고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아옹다옹 거리며 사는 건지

모를 일입니다.

 

어쩌면 속된 우리 인간들의 숙명인지도 모르지요.

요즘 같은 세상에는

앉을 의자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란 말처럼

눈뜨고 볼 수 없는 일들도 많고,

귀를 열고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이 많다는 게

살맛을 잃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동지섣달 기나긴 밤,

내일 일은 내일에 맡기고

작은 의자보다는 낡은 침대에 몸을 눕히시는 게

훨씬 편하지 않을 런지요?

 

편안하고 오붓한 저녁시간 보내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