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여행의 시작

기쁨은 사물 안에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다!

金剛山도 息後景 - 풀잎처럼 눕자

읽어보아요/책, 이야기

기의세계 실록 도사열전-우화등선/펌글

서까래 2010. 3. 14. 00:07

기의세계 실록 도사열전-우화등선

 

까마득한 옛날.
천지가 개벽하자 조화가 무궁한 여와씨(와황)가 대황산 무계애에서
오색찬란한  바위기둥 3만6천5백개를 만들었다.
그 바위기둥은 높이 120척에 둘레가 240척이나 되는 거대한 것이었다.

와황은  이 바위기둥으로 하늘을 괴고 큰 자라의 발을 잘라서 사극에 세웠다.

사극이란 바로 세상의 사방 땅끝을 의미한다.

그래서 비로소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이라고 불리는

만물의 영장이 태어나 노닐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나게 되었다.

와황은 태초의 아득한 새벽 상고시대의 임금으로

인간에게 처음으로 고기잡이와 사냥 목축을 가르치고

팔괘와 문자를 만든 복희씨의 누이동생이다.

 

와황이  하늘을 괸 뒤로 수백년이 흘렀다.

공동산 산정 위로 두루마기에 두건을  걸친 두 명의 장년인이 나타났다.

회색 두루마기에 갈혜(칡덩굴로 만든신발)를 신고

등에 한 자루의 고동검을 둘러멘 이는 고대의 선인인 광성자였

청포에 선비차림을 한 인물은 황제였다.

 

두 사람의 나이는 대략 엇비슷한 40전후로 보였으나

실제로 황제의 나이는120세였고  광성자는 그보다 10배를 더한 1천2백세였다.

광성자의 긴 눈썹은 양 볼에까지 늘어져 있었으며

홍안의 입가에는 온화한 미소가 한 시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두 눈에는 금석이라도 꿰뚫을 수 있을 만큼 예리한 신광이 번뜩였다.

두  사람의 발걸음은 그야말로 행운유수처럼 가볍고 빨랐으며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발 아래 낮게 깔린 안개가 뱃전의 물살처럼 좌우로 갈라졌다.

 

공동산  봉우리의  하늘 끝에는 영롱한 빛을 발하는 오색 채운이 비껴날고

그 구름아래로 이름 모를 날짐승이 괴성을 질러대며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발한  기화요초를 헤치고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태고의 향기가 은은히 풍겨나오고 있었다.

 

동녁  하늘은  16세 소녀의 볼처럼 붉었으며

반대로 서쪽 하늘은 보석처럼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다.

두 명의 무지개 같은 안개를 헤치며 서서히 암반 위로 걸어 올라갔다.

그들은  거기에 옷자락을 걷고 나란히 걸터앉았다.

한 쌍의 봉황이 나직이 울부짖으며 두사람의 머리 위를 날아갔다.

이윽고 광성자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천기동부 석실안에 은거해있던 빈도를 이처럼 황제께서 불러내신뜻은...?"

광성자가 은근한 시선을 돌리며 황제의 두 눈을 바라 보았다.

 

"천한 속인이 감히 여쭙고자 하는 것은 도를 깨우치는 비결입니다"

 

황제는  짐짓 늘어진 검은 수염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그 눈빛을 그윽이 마주 보았다.

황제의 시선에는 존귀한 신분을 암암리에 과시하는 거만한 따위는

털끝만치도 없었다.

그것은 오히려 구도에 목마른 수행자의 어린아이 같이 순진무구한 눈빛

바로 그것이었다.

 

  "도를 깨우치기 위해서는 우선 그 도를 닦아야만 합니다"

  "수도를 말씀하시는군요"

  "그렇습니다.다만 그 가운데서도 수진을 취하십시오"

 

  "수진... 참된 것을 닦으라지만 도대체 어떤게 참된 것입니까?"

  "수선이지요"

 

  "수선?"

  "도에  이르는  길은 선법을 닦는 것 이외엔 없습니다.

이를 일러 선도라고하는 것이외다"

 

  "오오,선도!"

  황제의 눈빛이 일순 광체를 발했다.

크나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무상의 희열이 그 속에 담겨져 있었다.

 

  "선도를 수행하면 어떻게 됩니까?"

  "살아서 깨달음을 얻으며 완전한 육신의 자유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죽어선...?"

  "죽기  전에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우화등선이 가능합니다.

설령 육체적으로 죽었다 하더라도 영원한 생명이 가능한 것입니다"

 

  "모쪼록 선도를 수행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황제는  광성자의 발 아래 허리를 굽혀 절했다.

이것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나타난 선도의 시작이다.

황제는 그 후 수행에 힘썼고 끝내 천고에 이름높은 `황제내경'을 저술하여

세상에 남긴 채 신선이 되어 우화등선했다.

 

그로부터 다시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렀다.

광성자와 황제로부터 비롯된 선도는 잠시도 끊이지 않고,

그러나 표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채 암암리에 도맥을 이어 내려왔다.

우화등선의 장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때는 청나라 광서10년(서기 1883년).

메뚜기의 서식지로도 유명한 중국의 사천성 자류정이란 마을에

기상천외한일 하나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 날은 축제일도 아니요,명절도 아니건만 이른 아침부터 남녀노소할 것없

마을 중앙의 빈터로 몰려나와 호기심 반 흥분 반의 모습으로 웅성대고 있었다.

 

"대체 이 마을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소?"

때마침 부근을 지나던 과객 하나가 토박이 한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모르십니까?  오늘 이 고을의 유명한 신선이신 황원길 선인께서

백일승천하신답니다. 거 왜 우화등선이라고 하는거 말입니다"

 

"뭐 황원길 선인?

과객은 눈이 튀어나올 만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황원길  선인이라면 자류정 마을은 물론이요

온 중국 땅덩어리에서 추앙해 마지않는 불세출의 신선 아닌가.

그와 같은 희대의 선인이 우화등선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은

억만 번 태어나도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천재일우의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황원길 선인의 나이는 지금 6백세라고 한다.

과객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황 선인에 관한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그 말씀을 해주시던 할아버지 역시 아득한 옛날에 증조부의 무릎에 안겨

그 얘기를 들었다 한다.

증조부는 또 고조 할아버지로부터....과객은 아무래도  황  선인의 나이가

6백이라는 말이 사실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음..."

과객의 입에서 무거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중국 최대의 민중신앙이라면 그것은 바로 도교다.

도교의 사찰은 도관 또는 궁이라고  하며 그 수행자를 도사라고 부른다.

그 도사 가운데서도 수행을 오랫동안  깊이 쌓아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선인이라고 불리워질 수 있는 자격이  있으며  선인들 중에서도

실제로 우화등선의 비법을 실행할 수 있는 경지의 사람은 몇몇 되지 않는다.

 

황원길 선인은 바로 그 몇 안되는 고인 가운데 하나였다.

과객은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군중 속에 묻혀

황원길 선인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백일승천 또는 우화등선이라고 하는 것은

불로불사의 비법을 터득한선인이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과하는 대신에

여러사람이 목격하는  가운데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마침내는 

아득한 허공 가운데서 녹아버려 시공을 초월한 불가사의한 차원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말한다.

 

황제  헌원씨의 우화등선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며

근년에 일본에서도 조길이란 선인이 백일승천했다는 `이문'의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에  경기도 양평 현감을 지낸 북창자 정렴이

불과 42세의 나이에 우화등선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밖에도 중국의 기록인 `신선전' `열선전'을 비롯한 선인전 가운데는

우화등선을 행한 사람들의 현장기록이 무수히 많이 기재되어 있다.

 

과연  정오가 되자 이제껏 굳게 닫혀 있던 상청궁(도교 사찰의 이름)의

은 대문이 좌우로 활짝 열리더니 학처럼 고고한 모습을 한 황원길 선인이

용히  빈터로 걸어나왔다.

그의 얼굴 표정이나 몸짓 걸음걸이 등은 평소와 조금도 다름없이

침착한 모습이었다.

 

그는 빈터 중앙에 당도하자 미소 띤 얼굴에 가만히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았다.

그순간 말없이 선인의 주위를 옹위하고 있던 제자들의 입에서

일제히 `황정경'(도교경전)을  봉독하는 비장한 읊조림이 터져나왔다.

사실 제자들은 스승과의  헤어짐을 못내 아쉬워해서

그동안 여러차례 승천을 연기해줄것을 간청해 왔던 터였다.

 

그러나 황원길의 결의는 철석같이 굳어서 도저히 번의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제자들은 마침내 헤어지는 슬픔을 가슴속 깊이 감추고

다만 스승이 마지막으로  몸소  보여주는 선도 최후의 깊은 뜻과

신비의 비법을 마음 속 깊이 새겨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뜬 채

`황정경'을 암송할 따름이었다.

황원길은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즐거운 표정으로

제자 한사람 한사람과 이별을 나눴다.

 

"이제 시간이 되었구나.일양야,뒷 일을 부탁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수제자인 일양에게 이별을 고하고는 눈을 감았다.

그  날은 아주 쾌청한 날씨였으나 황원길이 살고 있던 상청궁 지붕 위에는

이른 아침부터 가벼운 조각구름이 감돌고 있었다.

                       

그가 막 두 눈을 감는 순간 조각구름은 오색영롱한 서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빈터 주변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이 신성하고도

장엄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세상에..."

"이럴 수가..."

 

마을  사람들은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다만 두 눈을 부릅뜨고 우두커니

있을  뿐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황원길 선인의 모습은 서서히 허공을 향해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 놀라운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황원길 선인의 몸은 상청궁 지붕 위에 떠있는 조각구름 보다도

더 높은 공중으로  아스라이  멀어져 갔다.

그리고 끝내는 그 깨알같던 모습마저도 허공속에  녹아든듯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 뒤로 황원길 선인은 두번 다시 이 세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면 대체 황선인은 어디로 간 것일까?

교에서 말하는 천당이나 극락으로 간 것일까?

 

아니다. 선인의 자아는 개체로서의 의식과 기억 그리고 생전의 육신을

그대로 지닌 채 천지간에 융화되어 버린 것이다.

이를 기화라고 하는데 바로 이것이야  말로 내가 우주요,

우주가 바로 나 자신인 신인합일,환허합도의 궁극적 경지인 것이다.

 

물론 육체를 지닌 채 천지간에 융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육체란 우리 보통 인간들의 육체와 같은 것은 아니다.

대체로 신선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기'를 천번 만번이나 단련한 끝에

드디어 육체를 양신(^^)이라 불리는 특수한 상태로 변화시킨 사람들이다.

 

`기'는  모든  형태의 생명과 모든 우주 물질의 절대적인 근간이다.

`기'는 인체와 관련된 모든 생명기관을 지탱해 주므로

`기'를 적응시키는 능력을 익히면  이러한 기능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가 있다.

여기에 숙달이 되면 때로는 본인조차 깜짝 놀랄 정도의 초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신선이  부리는  기문둔갑이나 호풍환우(바람을 부르고 비를 내리게 함)의

조화는 말할 것도 없고 무술가들의 기공 괴력 등이 이에 속한다.

인도의 요가 수행자들은  때로 여러 날 동안 호흡과 심장박동을 멈춘 상태에서

땅속에 묻혔다가 거뜬히 소생하곤 한다.

이와같은 방법은 선도(기공)쪽이 더 월등하다.

구식지술이 바로 그것이다.

인체내부의 `기'를  고도로 단련하고 또 증폭해서 양신이라고 불리는

또하나의 자기 즉 분신을 만드는데 우화등선의 비밀이 숨어있다.

물론 `기'를 응축해서 만들어진 몸이라 하더라도 공기와 같이

무색무질의 허무한 존재가 아니고 평상시의 육체와 똑같은 힘과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 양신에 대해서 근세중국의 선인이었던 조피진은 다음과같이 설명하고있다.

 

"양신이란  것은  물질적인 형체를 지닌 자아이다.

흩어지면 `기'가 되지만 모이면  형체(육신)를 이룬다.

양신은 오안육통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보거나 먹거나 마시거나

얘기하거나 만지거나 하는일 등이 보통의 육체와 전혀 다름이 없다.

양신은 육체와 동시에 다른 공간에 존재할 수가 있기 때문에 분신이라고도한다"

 

이 양신에 반대되는 것으로서 음신이란 존재도 있다.

음신은 일종의 영기(영적인 기운)로서 명상따위에 깊이 몰입하다보면

저절로  생겨나게 된다.음신은 영적인 존재기 때문에

다른사람은 음신을 볼 수가없다.

물론  대화를  나누거나 음식을 먹고 마시는 일도 음신은 행할 수가 없다.

 

양신이 물질적인 동시에 초물리적인 성질을 갖는데 비해

음신은 다분히 영적일뿐  물리적이지가 못하다.

때문에 음신을 살아 있는 유령이라고 부르기도한다.

다시말해서 양신은 물질계와 영적인 세계의 양쪽 차원에 존속이 가능하지만

음신은 물질세계에서 전혀 물리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양신과  음신에 관해서는 재미있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다.

`전등록'에 기록된 내용이다.

송나라 제6대 신종황제 때의 일이다.당시 장자양이란 유명한 선인이 살고있었다.

장자양은 금액환단법이란  선도 비법을 수련해서 양신을 자유자재로

이탈시키는 출신법에 능해 있었다.

어느날 그에게 제자가 다가와 넌지시 아뢰었다.

 

"촉나라 땅에 신유관이란 도법에 능한 선승이 한분 살고있다 하더이다"

"신유관이라니?"

"눈을 감고앉아 정신을 집중하면 순식간에 천리밖의 일을 보고온다 합니다"

                          

"관투(투시)한다 말이냐?"

"그게 아니라 정신만 빠져나와 그곳을 다녀온다는 소문이던뎁쇼?"

 "그래?"

 

장자양은 피식 웃으며 행장을 꾸렸다.

 

"내 그 분을 직접 만나보고 오마"

 

그는  순식간에 이형환위하여 촉나를 갔다.

과연 선승의 명성은 촉 땅에 자자했다.

장자양은 선승을 만나 그와 마주 앉았다.

 

"빈도가  스님의 명성을 사모하여 이처럼 천리길을 한 달음에 찾아와 보니

과연 소문이 거짓이 아닙니다"

 

"빈승의 잡술을 가지고 어찌 선장의 신력을 감당할 수 있사오리까.

다만 천리길을  마다않고  찾아오신 귀한 손님이시니

소술말기나마 펼쳐보여 선장의 눈을 즐겁게 해드리겠습니다"

 

선승은 비록 겸손한듯 말했지만

내심 상당히 자신의 도력을 자부하고 있는듯 거만한 웃음을 입가에 흘리고 있었다.

 

"모쪼록 견식을 넓혀 주시길..."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도력 겨룸에 들어갔다.

겨룸의  과제는  수천리 떨어진 양자강 하류의 양주에 각각 양신과 음신을보내

꽃 한가지씩을 꺾어오는 일이었다.

두사람은 즉시 가부좌를 틀고 정신을 집중하여 양신과 음신을 양주에 띄웠다.

잠시후 두 사람은 동시에 눈을 떴다.

 

"어떻소이까?"

 

장자양은 빙긋 웃으며 손에 든 꽃 한송이를 들어보였다.

그 순간 선승은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분명 양주 땅에 가서 꽃 한송이를 꺾어왔건만 자신의 손에는 꽃은 커녕

잎사귀 하나 들려있지 않은게 아닌가.

 

"으음... 졌소이다"

 

선승은 비지땀을 흘리며 패배를 자인했다.

선도의  취지는  성명쌍수(정신과 육체적 능력을 동시에 수행함)에 있지만

참선의 그것은 오로지 정신적 깨달음에만 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생겨났던 것이다.

 

`성'이란 깨달음이며 `명'이란 목숨 즉 육신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선도의 수행은  영적인 것과 물리적인 것이 동시에 이뤄지는데 비해

참선은 `명'은 무시하고 오로지 `성'만을편향적으로 수행하므로

형 즉 물질적 형체와 물리적 힘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선도 수행에 의해 나타난 분신은 양신이지만

정신적인 면에만 치중하는 명상에 의해 출현하는 것은 음신에 불과하다.

선도 경전에는 바로 이 양신을 만드는 방법이 상세히 기재되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조피진 선인의 명저인 `성명법결명지'다.

 

양신을 만들어 몸 밖으로 내보내는 방법을 출신법이라고 하는데

`기'가 충분한 사람의 경우에는 양신에 의해 출신이 가능하지만

`기'가 부족한 경우엔음신만이 나오게 된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충분히 `기'를 키워놓지 않으면 안된다.

 

일단  출신에 성공하게 되면

그 다음엔 다시 육체까지도 양신화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언젠가는 없어질 이 깨지기 쉬운 육체를 양신과 같은 불멸의 상태로

변화시킨다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에 성공하면 양신과 육체는 완전히 하나가 되어

명실공히 신선의 경지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신선이  들어가는 궁극적이고도 또 본질적인 세상은

우리들의 의식이나 감각의 범위를 훨씬 초월하는 것이어서

지금의 우리로서는 다만 도라는 한글자로 표현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이야 말로 모든 것을 생산하는 모태이며 모든것

다시 거기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현대적으로 해석하자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4차원의 세계라고할 수 밖에 없다.

현대지만 실상 도는 그 이상의 본질적인 것으로서 시간과 공간을 성립시키는

허와 공 그 자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황원길 선인이 백일승천해서 사라져간 허공이 바로 여기인 것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기화선에 관해서  얘기했지만

이와는 반대로 선인들 가운데는 보통 사람과 조금도 다름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일단 이 세상에 시체를 남기기는 하지만 얼마 뒤 관을 열어보면

시체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경우가 바로 이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을 시해라고 부른다.

기화건  시해건  일단 한 번 이승을 떠난 선인들은 황원길의 예와 같이

번  다시  이 세상에 되돌아오지 않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이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낼수가 있는 것이다.

유명한 예가 바로 당나라 측천무후 시대의 여동빈 선인이다.

                              

여동빈 선인은 당시 5백살의 신선인 종리권으로부터 선도의 비법을 전수받았는데

그는 일단 우화등선한 다음에도 수천 수백 년이 경과하는 송 원 명의

각 시대에 걸쳐 출몰을 반복하면서 무수한 제자들을 길러냈다.

또한 태극권을 창시하고 무술로도 유명한 선인인 장삼봉은 그 출몰이

확실히 기록되어 있고 현재도 그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다.

 

송대에 태어난 장삼봉은 선도를 깊이 수행한 뒤 원나라 말기에 한 번 죽었다가 

 명나라 말기로부터 청나라 초기에 걸쳐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 이함허라는

유명한 선인에게 선도를 가르쳤다.

정삼봉의 경우 첫번째와 두번째 출현 사이에는 약 2백년이란 시간적 간격이 있다.

 

허공에  사라지거나 다시 나타나기도 하는 선인 이외에도 불로불사의 비법을 

터득해서 이 세상에 아예 장기간 머물러 사는 선인도 많다.

선도의 한 유파인 청성파의 조사인 이팔백 선인은 지금도 8백살의 나이로

중국에 건재하고 있다 한다.

 

우리 나라에도 그 좋은 예가 있다.

위암 장지연이 쓴 `일사유사'에 보면 조생이라는 선인 얘기가 나온다.

조생은 조선 시대의 인물로서 주위 사람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세대교체를 하도록 어찌된 셈인지 조금도 늙지않은 채

상 변함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호산 조희룡 같은 이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며 조생이라는 인물을

신기하게 여겼다.

 

"조 신선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인물이다.

지금 70세 된 어떤 노인이 어린아이  시절에 조생을 만나 나이를 물어보니

60살이라고 했는데 지금에 와서 다시 나이를 물어도 역시 60살이라고 하며

조금도 늙지않고 있다"

 

의학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도 백살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모든 생물은 그 발육성장 기간의 5~6배를 살 수가 있다.

이 계산에 의할것 같으면 인간의 성장기간은 25년이므로

최소한 125살에서 150살까지는 살아야정상이다.

 

근세의 인물인 영국의 토머스 바는 152세, 소련의 살리미스티노프는 168세,

중국의  남석 노인이  190세

역시 중국의 이청운 도사는 258세의 장수를 누렸다.                    

인간장수의 기록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엄청나서

자하선인이 1천1백세, 팽조가 780세의 수명을 누렸다고하는데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인물들의 수명 역시 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선도에서 거침없이 주장하는 몇백살의 수명이란 과연 가능한 것일까.

거기서 주장하는 불로장생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즉 사람의 몸에는 모태로부터 가져온 소위 원양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삶의 고유한 생존원소로서 외계의 어떤 물질로도 이를 대체하거나

보충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바로 이 원양이 소진되는 날 인간의 생명은 다하게 되는 것이다.

원양은  인간이 생존해 나가는 동안 차츰 소모되며 결국에 가서

이것이 완전히 고갈되어  버리면 인간은 더 살고 싶어도 살 수가 없게 된다.

이게 바로 천수라는 것이다.

 

그런데  선도에는 반환지법이라고 해서 고갈된 원양을 인위적으로

다시 보충하는 방법이 있다.

이를 반로환동이라고 하며 여기에 성공하면 원기가 왕성해져서

능히 열여섯살 한창 때의 순양지체로 돌아가게 된다.

원양이 계속적으로 재생되는 한 인간은 얼마든지

이 세상에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노래한 옛 시가 있다.

오래전 한달음에 백리씩을 날아가는 도력을 지닌 정령위란 인물이 있었다.

때문에  그의 별명은 `새'였다. 정령위에게는 함박우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박우는  정령위의 도력을 몹시 부러워 해서 그 길로 산에 들어가

천년동안이나 선도를 수행한 끝에 드디어 신선이 되어 세상에 내려왔다.

 

그러나 그때 이미 정령위는 죽고 이 세상에 없었다.

함박우는  정식으로  선도를 수련하여 원양을 보충하는 장생불사의 비법을

터득했으나  정령위는 그렇지가 않았다.

그는 단지 마술적인 초능력 기공에만 집착했던 것이다.

그래서 함박우는 이를 탄식하며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새야 새야 정령위야,

  출가한지 천년만에 신선이 되어 돌아왔다.

  성곽은 예와 다름이 없건만 사람은 그렇지 않으니,

  어찌 선도와 기공을 아니 배워 무덤만 첩첩하단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