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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술, 그리고 똥과 된장/161221

서까래 2016. 12. 21. 12:00

물과 술, 그리고 똥과 된장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난 아내에게 물 한잔을 청했다.

아내는 생수병을 가져와서 탁자에 있는 글라스에 물을 따라서 건네주었다.

마셔보니 물은 물이로되 물맛이 아니었다.

 

어제 동창회 모임에 갔다가 2차에서 잠시 앉아있다 빠져나왔다.

주흥은 즐기되 유흥은 별로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 오래 있어봐야 도움이 안 되겠기에...

 

집에 와서 밥 생각이 없다며 저녁도 안 먹고 잠들어있는 아내에게

어묵국을 끓여 밥을 주고,

어묵국을 안주삼아 보드카로 입가심을 하였다.

짙은 색상의 프랑스 와인잔에 반 글라스 정도 따라서 마시고

한잔을 더 따라 마시다가 바닥에 조금 남겨두고 취기가 올라 잠을 청했다.

 

그리고 아침에 아내에게 물을 달랬더니 그 잔에 물을 따라주었다.

술도 술 나름이지만 소주나 보드카 같은 투명한 술들은 눈으로는 물과 구분이 안 된다.

냄새를 맡아보거나 맛을 봐야 구분이 된다.

 

하지만 똥과 된장은 대부분 확연히 구분이 돼서 웬만한 삼척동자도 똥맛을 보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요즘 똥을 처먹고도 똥을 된장이라고 주장하는 잡것들이 많아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바로 구역질이 나올텐데,

그 잡것들은 어찌나 비위가 좋은지 똥을 처먹고도 내색을 안 하니 언뜻 보면 진짜로 된장을 먹은 걸로 착각할 정도다.

 

똥과 된장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회,

이것이 나를 슬프게 하고,

우리 모두를 슬프게 하고, 분노케 한다.

 

그건 아마도 그들이 살아온 환경 탓일 것이다.

대가리에는 똥만 들어있고,

똥통같은 환경에서 똥과 함께 살아온 자들이 어찌 똥과 된장을 구분할 수 있겠는가?

 

요즘 AI가 창궐해 수천마리의 닭들이 살처분 됐다는데

대가리에 똥만 들어있는 도심에 사는 닭들은 그냥 놔둬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시중 잡배들이 똥 된장을 구분 못한다면야 그저 웃고 지나갈 일이지만,

소위 사회지도층에 있다는 잡것들이 그 지랄을 떨고 있다는 게 우리를 아프게 한다.

 

그러고 보면 감성적인 것들로 슬픔을 노래한 안톤 시나크는 행복한 사람이다.

안톤 시낙이 우리의 현실을 안다면 그는 어떤 노래를 불렀을까?

아마도 우리를 분노케 하는 것들이란 수필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아직도 머리가 맑지 않다.

아침 출근이 늦어진 건 오늘이 동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 동짓날 밤은 그리 길어서 지각을 하게 만드는 건지 모르겠다.

동짓날이니 동지죽이나 한 그릇 먹으며 고수레나 해야 할 모양이다.

에라이~~ 잡것들아 물러가라!!!”

 

신대철씨가 닭사모와 어버이연합같은 거지같은 것들이 불러서는 안 될 노래를 부른다고 분노했다고 한다.

노래도 한곡 들어보고 안톤 시낙의 글도 한번 되새겨보자.

 

슬퍼도, 분노가 치밀어 올라도,

행복한 하루되시길 빌며...

 

신중현과 뮤직파워의 아름다운 강산

https://youtu.be/SHa5DbsdC34

 

그리고 추억의 팝송 크레이지 러브

https://youtu.be/iy2qJQ-Sh9o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안톤 시나크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庭園) 한편 구석에서 발견(發見)된 작은 새의 시체(屍體)위에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가을날 비는 처량(?)히 내리고, 그리운 이의 인적(人跡)은 끊어져 거의 일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아무도 살지 않는 옛 궁성(宮城), 그래서, 벽은 헐어서 흙이 떨어지고,

어느 문설주의 삭은 나무 위에 거의 판독(判讀)하기 어려운 문자를 볼 때,

몇 해고 지난 후에,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가 발견 될 때,

 

그곳에 씌었으되,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여, 너의 소행(소행)이 내게 얼마나 많은 불면(불면)의 밤을 가져오게 했는가------.

대체로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 혹은 하나의 허언(虛言),

혹은 하나의 치희(稚戱), 이제는 벌써 그 많은 죄상(罪狀)을 기억(記憶)속에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때문에 애를 태우신 것이다.

 

동물원(動物園)에 잡힌 범의 불안(不安), 초조(焦燥)가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철책(鐵柵) 가를 그는 언제 보아도 왔다갔다 한다. 그의 빛나는 눈,

그의 무서운 분노(憤怒), 그의 괴로운 부르짖음, 그의 앞발의 한없는 절망(絶望),

그의 미친 듯한 순환(循環), 이것이 우리를 말할 수 없이 슬프게 한다.

 

휠데를린의 시장(詩章), 아이헨도르프의 가곡(歌曲),

고구(故舊)를 만날 때, 학창 시대(學窓時代)의 동무 집을 심방(尋訪)하였을 때,

그리하여 그가 이제는 돈이 많은 공장주(工場主)의 몸으로서,

우리가 몽롱(朦朧)하고 우울(憂鬱)한 언어(言語)를 조종(操縱)하는

한 시인(詩人)밖에 못 되었다는 이유(理由)에서, 우리에게 손을 주기는 하나,

그러나 벌써 우리를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態度)를 취하는 것같이 보일 때,

 

포수(砲手)의 총부리 앞에 죽어 가는 사슴의 눈초리. 재스민의 향기(香氣),

이것은 항상(恒常) 나에게 집 앞에 한 그루의 늙은 나무가 선 내 고향(故鄕)

생각하게 한다.

공원(公園)에서 들려오는 고요한 음악(音樂).

그것은 꿈같이 아름다운 여름 밤에, 모래 자갈을 고요히 밟고 지나가는 사람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한 곡절(曲折)의 쾌활(快活)한 소성(笑聲)은 귀를 간질이는데, 그러나 당신은 벌써 근 열흘이나 침울(沈鬱)한 병실(病室)에 누워있는 몸이 되었을 때.

달아나는 기차가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것은 황혼(黃昏)의 밤이 되려 하는 즈음에, 불을 밝힌 창들이 유령(幽靈)

무리같이 시끄럽게 지나가고, 어떤 예쁜 여자의 얼굴이 창가에 은은히 웃고 있을 때, 찬란(燦爛)하고도 은성(殷盛)한 가면 무도회(假面舞蹈會)에서 돌아왔을 때,

 

대의원(代議員) 제씨(諸氏)의 강연집(講演集)을 읽을 때,

부드러운 아침 공기(空氣)가 가늘고 소리 없는 비를 희롱(戱弄)할 때,

공동묘지(共同墓地)를 지나갈 때, 그리하여 문득, “여기 십 오세의 약년(弱年)으로 세상을 떠난 소녀 클라라는 누워있음.”이라 쓴 묘표(墓標)를 읽을 때,

 

, 그는 어렸을 적의 단짝 동무의 한 사람.

 

날이면 날마다 언제나 도회(都會)의 집과 집의 흥미(興味) 없는 등걸만 보고

사는 시꺼먼 냇물.

철길인 어느 촌 주막(村酒寞)에서의 외로운 하룻밤. 시냇물의 쫄쫄거리는 소리.

곁방 문이 열리고 속살거리는 음성(音聲)이 들리며,

낡아빠진 헌 시계가 새벽 한 시를 둔탁(鈍濁)하게 칠 때,

그 때 당신은 난데없는 애수(哀愁)를 느낄 것이다.

 

날아가는 한 마리의 창로(蒼鷺).

추수(秋收) 후의 텅 빈 밭과 밭.

어렸을 적에 산 일이 있던 조그만 지방(地方),

많은 세월(歲月)을 경과(經過)한 후에 다시 들렀을 때.

아무도 이제는 당신을 아는 이 없고, 일찍이 놀던 자리에는

붉고 거만(倨慢)한 옥사(屋舍)들이 늘어서 있으며,

당신의 본가(本家)이던 집 속에는 알 수 없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는데,

왕자(王者)같이 놀랍던 아카시아 수풀은 베어지고 말았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그러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어찌 이뿐이랴?

오뉴월의 장의 행렬(葬儀行列), 가난한 노파(老婆)의 눈물. 거만한 인간.

보랏빛과 흑색(黑色)과 회색(灰色)의 빛깔들.

()한 종 소리. 동라(?). 바이올린 지이 현(G ).

가을 밭에 보이는 연기. 산길에 흩어진 비둘기의 털.

자동차에 앉은 출세(出世)한 부녀자(婦女子)의 좁은 어깨.

흘러다니는 가극단(歌劇團)의 여배우(女俳優).

줄에서 세 번째 떨어진 광대(廣大).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

 

휴가(休暇)의 마지막 날.사무실(事務室)에서 처녀의 가는 손가락이

때 묻은 서류(書類)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만월(滿月)의 밤 개 짖는 소리. 크누트 함순의 이삼 절(二三節).

어린아이의 배고픈 모양. 철창(鐵窓) 안에 보이는 죄수(罪囚)의 창백(蒼白)한 얼굴.

무성(茂盛)한 나무 위에 떨어지는 백설(白雪) -----

 

이 모든 것이 또한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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