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가 화천 감성마을에 자리를 잡은 지 1년이 조금 지나 에세이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를 완성했다.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그곳에서 속도감 있고, 기분 좋게 집필했다고 한다. 그를 만나기 위해 화천으로 향했다.
끝까지 믿어야 갈 수 있는 감성마을
강원도 화천 감성마을에 살고 있다는 이외수를 만나기 위해 아침부터 걸음을 재촉했다. 물론 다리 대신 차바퀴가 굴러가고 있었지만 구불구불한 외길을 지날 때면 차가 아닌 내가 몸을 이리저리로 흔들며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감성마을’로 가는 길은 갈림길이 거의 없는 외길이었다. 설명해준 대로 나 있는 길을 그대로 따라 오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나와 기사아저씨는 자꾸만 전화를 걸어 우리가 맞게 가고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전화기 너머 있는 누군가는 우리에게 ‘새의 방향으로 오시오’라는 알듯 모를 듯한 단서만 던져줄 뿐이었다. 우리가 너무 많이 간 것이 아닐까? 지나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때쯤 멀리 갈색 표지판이 보였다.
‘감성마을 150㎞, 새의 방향으로 오시오’ “와! 표지판이다!” 하는 동시에 차는 표지판 아래로 미끄러지듯 지나쳐 갔다. 그 순간 사진기자가 말했다. “새의 방향은 이쪽이 아닌데? 새는 분명 오른쪽을 보고 있었어요.” 다시 차를 돌려 표지판으로 돌아와 자세히 바라보니 새는 분명 앞쪽이 아닌 오른쪽을 보고 있었다. 새가 바라보고 있는 오른쪽에는 우리가 온 2차선 외길보다 조금 더 좁은 길이 나 있었다. 그 길에 접어들어 얼마쯤 가니 또 한 마리의 새가 그려진 표지판이 보였다. “와! 우리는 제대로 가고 있어!” 흥분 섞인 안도감과 함께 그렇게 한참을 더 갔다. 그런데 다시 난관에 부딪쳤다. 아스팔트길이 뚝 끊어지고 산의 진입로인 흙길이 나타난 것이다.
한쪽에는 계곡이 흐르고 나무가 우거진 전형적인 등산로였다. “뭐야, 길 잘못 들었잖아요. 다시 한번 전화해봐요.” 기사아저씨가 재촉했다. “이 길밖에 없으니 그냥 가보죠” 내가 말했다. 그렇게 옥신각신하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더 들어오시면 집 한 채 달랑 있으니 찾으시기 쉬울 겁니다.” 흙길에 바퀴가 빠질 것을 조심하며 더 들어갔다. 정말 숲 속 안에 거짓말처럼 집이 한 채 있었다. 아니 집이라고 인정하기까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상상했던 전원주택이 아닌, 공장 같기도 하고 갤러리 같기도 하고 짓다 만 것 같기도 한 1층짜리 시멘트 회색 집. 우리는 그 앞에서 서서 과연 집이 어디 있을까 한참을 더 고민했다.
꽃들과 강아지도 사람을 반기는 그곳
저 멀리 “어서 오세요”라는 여주인(이외수 부인)의 인사보다 우릴 먼저 반긴 것은 세 마리의 강아지였다. 낯을 전혀 가리지 않는 강아지들은 우리 일행에게 달려들어 코를 바짝 대고는 놀아달라고 졸랐다. 마당 화단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집 내부는 외부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따뜻한 목재로 아늑하고 세련되게 꾸민 산장 같았다. 산골짜기 산장처럼 조용할 것 같은 집 안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식사 안 하셨죠? 먹을 복이 있으시네요. 잠시만 이 빵 드시면서 기다리세요.”
여주인은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빵과 커피를 내놓고서는 서둘러 점심 준비를 했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서인지 하얀 크림이 든 빵은 꿀맛이었다. 정신없이 빵을 먹고 있는 동안 누군가가 주전자에 한아름의 카네이션을 꽂았다.
스승의 날이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과 통성명을 하다 보니 그 중 두 명은 그곳에 살고 있는 문하생이었고(처음에 아들과 며느리인 줄 알았다), 두 명의 남자들은 KBS-TV ‘인간극장’ 작가와 PD였으며, 또 수원에서 한아름 음식을 싸들고 온 이는 이외수의 오랜 제자였다. 지난 주말부터 그곳에 상주했다는 ‘인간극장’ 작가는 ‘이 집은 언제나 여러 팀의 사람들로 북적인다’고 귀띔했다. 어제만 해도 모 잡지의 취재팀과 그의 팬인 독자, 제자들… 세 팀으로 집이 가득 찼다 한다.
10명이 넘게 둘러앉아서 먹을 수 있는 큰 테이블에는 갖가지 무공해 채소와 나물로 채워진 음식이 먹음직스럽게 차려졌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이외수가 나타났다. 여주인은 이외수에게 장난스럽게 카네이션 한 송이를 건넨다. 꽃을 받은 그는 허허 웃으며 “스승의 날이라고 주는 거야? 나도 당신에게 배울 만큼 배웠으니 이건 다시 당신에게 주어야겠네” 라며 꽃을 다시 건넸다. 둘 사이의 유머러스한 교감이 흘렀다. 나는 “집이 참 좋아요”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의 감성마을에 대한 예찬론이 이어졌다.
“여긴 모든 것이 무공해예요. 하다못해 모기와 파리도 무공해지. 이곳에는 1급수라는 건 없어. 모두 특급수야. 달빛에 자기 그림자 본 사람 없을 거예요. 여기서는 볼 수가 있지.”
이런 산골짜기에 살면 답답하지 않냐는 질문은 우문이었다.
“며칠 전 도시에 나갔더니 정말 답답하더군요. 훨씬 답답해요. 결핵을 네 번 앓아서 오른쪽 폐가 기능을 상실해서 한쪽 폐만 갖고 사는데, 서울 진입한 순간부터 호흡이 곤란했어요. 게다가 사인회장은 지하더군요.”
몸에 좋다는 씀바귀를 씹었더니 너무 쓴 나머지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물은 어딨죠?”라고 물으며 냉장고를 기웃거리니, 누군가가 “그냥 수돗물을 받아먹으면 돼요”라고 일러주었다.
하나님도 모를 여자에 대해 쓰다
식사를 마치고 이외수는 버릇처럼 담배를 꺼내 물었다. 벽에 기대앉으며 “어찌나 진을 뺐던지 쉬어도, 쉬어도 몸이 풀리지 않네”라고 말한다.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가 서점에 선을 보인 지 불과 1주일도 되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가만 보면 나 하나 좋자고 글 쓰는 거 아니에요. 일단 책이 많이 팔리면 종이가 많이 필요하니까 지업사가 좋아하고, 제본소, 출판사, 서점 다 좋아하죠. 싫은 사람은 우리 마누라밖에 없어. 우리 마누라가 제일 힘들지.”
그의 신간은 일종의 화집과 같다. 야생화 전문 화가 정태련이 그림을 그렸고, 이외수는 ‘여자’라는 코드로 글을 썼다. 집필에서 편집까지 모두 두 사람의 손을 거쳤기 때문에 여백 하나에까지 이들의 생각이 담겨 있었다.
“누구나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서 지은 제목이에요. 남녀가 공히 공감할 수 있는 것, 여자도 여자를 모르는데 하물며 남자인들 알 수 있겠는가, 하는 거죠. 모두 여자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고, 여자라는 코드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예요.”
여자도 여자를 모르는데, 이외수는 어쩌자고 여자를 코드 삼아 글을 쓴 것일까.
“책에 정직하게 여자를 모른다고 썼어요. 여자에 대해 알려고 하지 말고 그냥 사랑해주어라, 사랑해라. 여자는 탐구의 대상이 아닌 사랑의 대상이에요. 지금도 난 도통 모르겠어요. 아마 여자를 만든 하나님도 잘 모르실 것 같아. 제작 당시와 너무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집에서 엄마는 콩나물 가격 1백원을 깎으려고 애를 쓰는데, 5천원이 넘는 커피를 마셔대는 이른바 ‘된장녀’들, 남자에게 마음과는 반대로 이야기하는 불친절한 여자들,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고 섹시하다는 말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면서도 음흉하게 쳐다보는 남자들을 혐오하는 모순된 여자들, 내면의 아름다움 따윈 관심이 없고 얼굴에만 관심이 있는 조화와 같은 여자들… 아무리,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여자들을 이외수는 그저 ‘사랑하라’라고 말한다.
기자, 이외수에게 따져 묻다
여자들이 반대로 말한다는 건 남자들이 자신의 말만이 아닌 주어진 상황을 이해하기를 원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묻지 않고 스스로 알아줬으면. 정말 상대를 사랑한다면 그 정도 관심을 갖고 바라봐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 얼마나 이기적인 태도인가! 여자는 남자가 말을 안 하고 있으면 ‘왜 그렇게 말이 없어’ 하고 그래서 남자가 말을 하면 ‘왜 그렇게 경박스러워’라고 말해요. 일관성이 없죠. 지하철역 한 구간을 지나가면서도 생각이 열두 번도 더 바뀌니까. 주관이 없는 거지. 남녀 사이의 오해의 소지를 없애려면 자기 자신을 정직하고 순수하게 드러내고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화를 할 때도 진실이 담겨 있는 대화를 해야 하죠. 그렇다고 자존심, 수치심을 버릴 필요는 없지만 진실은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합니다.”
여자들이 종잡을 수 없다는 점은 인정하겠다. 그러나 진실한 여자가 아닌 내숭 떠는 여자들에게 넘어가는 남자들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자들의 행동이 내숭인 줄 알면 쥐어박고 싶지! 그리고 그것도 한두 번이면 애교로 봐주는데 허구한 날 내숭을 떤다면 아마 쥐어박고 싶을 것 같은데?”
여자들이 외모에 집착하는 것은 내면을 보지 않고 외모로 판단하는 세상과 남자들 때문이다. ‘예쁜 것이 착한 것’이라는 남자들도 문제가 있지 않나?
“그건 여자도 오해하고, 남자도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아름다움을 보는 눈에는 눈으로 보는 육안, 머리로 보는 뇌안, 마음으로 보는 심안, 영혼으로 보는 영안이 있지. 내면적인 아름다움은 육안이나 뇌안으로 보지 않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를 심안이나 영안으로 보게 되죠. 여자의 외모만 보는 남자는 육안이나 뇌안만을 가진 남자들이에요. 여자들이 만날 그런 남자들을 만나니 외모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심안이나 영안을 갖춘 남자들을 만나야 해요. 내면적인 아름다움은 보면 볼수록 정겹죠. 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도 가꾸라는 생각에서 이 책을 쓰게 된 거예요.”
작가는 의식의 유연성을 가져야
도인처럼 보이는 이외수는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기자도 모르는 인터넷 신조어들, 은어에 익숙하고, 그것을 아름다움이 흠씬 묻어나는 자신의 글 사이에 심어놓는다.
“인터넷을 자주 해요.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사이트는 다 갑니다. 글은 올리지 않고 보는 쪽이죠. 인터넷에서는 언어 파괴 현상이 많이 일어나지만 그걸 나쁘게만 받아들이지 않아요. 신조어로서 탄력 있고 생명력이 있는 것들은 갖다 쓰죠. 그런 면에서는 열려 있는 편이에요. 의식의 유연성이 있어야 교류와 소통이 불편해지지 않기 때문이에요. 작가는 만물의 안팎을 넘나들어야 하는데, 의식이 딱딱하게 굳어 있으면 불가능하잖아요. 가급적이면 유연성을 가지고 남의 글도 대하고 사람을 대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책에 실린 이야기 하나. 어떤 학생이 ‘옛날 젊은이들과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차이점을 한마디로 요약해서 말씀해주십시오’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는 즉시 답을 했다.
‘주경야독(옛날), 주경야동(요즘)’ 그의 센스 있는 유머에 찬사를 보내자 그가 답했다. “피시방 3년이면 스타를 해!”
그와의 즐거운 만남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 수수한 야생화와 아직 5개월밖에 안 되었다는 강아지들이 자꾸 눈에 밟혔다. 도시로 가는 길이 답답한 건 비단 그만이 아니었다.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원상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