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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의 장진주(펌글)

서까래 2010. 3. 29. 13:27

 

 

이하(李賀) 의 장진주(將進酒)

 

시의 귀재 이하

27세에 요절한 천재 시인 이하, 그는 중국 문학사상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파격의 시인이다. 시 소재가 그러하고 시어가 그러하며, 또한 시 정신이 파격적이다. 지금으로부터 천 수백 년 전에 이미 그는 현대시 못지 않은 자유로운 시 정신을 구현하였다.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작품으로 고립된 세계에 살면서도 후일 세인들에 가장 주목 받는 시인이 되었다. 시인이 문학작품을 통해 구현할 수 있는 시 세계가 가히 이런 경지에도 이를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을 절로 자아내게 한다.

 

이하가 당나라 황실의 후예로 태어난 곳은 하남성 낙양에서 서쪽으로 약 오십 킬로 떨어진 복창현 창곡 이라는 곳이다. 그의 아버지는 변경의 관리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유년기부터 탁월한 시재를 보인 이하는 17세 되던 해 당시 국자박사인 대문장가 한유를 찾아갔으나 면담 요청을 거절 당한다. 그러나 하인이 들고 온 이하의 시 아문태수행(雁門太守行)의 첫 귀절을 읽은 한유는 황급히 이하를 맞이함으로써 이하는 한유와 첫 대면을 하게 된다. .

 

雁門太守行

黑雲壓城城欲摧 甲光向月金鱗開

角聲滿天秋色裏 塞上燕脂凝夜紫

半卷紅旗臨易水 霜重鼓寒聲不起

報君黃金臺上意 玉龍爲君死

 

아문태수행

검은 구름 성을 짓누르니 성이 무너질 듯

갑옷은 햇빛 받아 고기비늘처럼 반짝이네.

가을 빛 속에 호각소리 온 하늘에 울려 퍼지고

성채에 흘린 연지처럼 붉은 피 밤 기운에 보랏빛으로 엉겼구나.

붉은 깃발 반쯤 말아 들고 이수 가에 다다랐는데

서리 내린 추운 날씨라 북소리도 나지 않네.

황금대 차려놓은 임금님 뜻 보답하려네.

옥룡보검 가슴에 안고 나라를 위하여 죽으려네.

 

 

입신양명의 꿈이 좌절되다

이하의 재능을 인정한 한유는 810년 낙양지방의 과거 예선에 급제한 이하를 진사시험을 치르게 한다. 당대의 지식인은 과거에 급제하여 관리로 입신하는 것이 생계책이자 입신양명의 길이었다. 그렇지만 이하는 부친의 이름 이진숙 중의 진 진사의 진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진사시험에 응시조차 못하게 된다. 한유가 나서 휘변을 작성하여 옹호하였으나 결국 견고한 관습의 벽을 뚫지 못하고 이하는 입신에의 꿈이 좌절되고 만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봉례랑이라는 미관말직을 얻었으나 곧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하는 그때의 절망하는 심정을 다음과 같이 시로서 술회하고 있다.

 

贈陳商

長安有男兒 二十心已朽 楞伽堆案前 楚辭繫肘後 人生有窮拙 日暮聊飮酒

祗今道已塞 何必須白首 凄凄陳述聖 披褐鉏俎豆 學爲堯舜文 詩人責衰偶

柴門車轍凍 日下楡影瘦 黃昏訪我來 苦節靑陽皺 太華五千仞 劈地抽森水

旁苦無寸尋 一上牛斗 公卿縱不憐 寧能鎖吾口 李生師太華 大坐看白晝

逢霜作樸 得氣爲春柳 禮節乃祥去 憔顇如芻狗 風雪直齋壇 墨粗貫銅綬

臣妾氣態間 唯欲承箕帚 天眼何時開 古劍庸一吼

 

증진상

장안에 한 사내가 있는데

나이 스물에 이미 마음이 썩어버렸다네

책상 앞에는 능가경이 쌓여 있고

팔꿈치 뒤에는 초사가 매달려 있지

사람으로 태어나 삶이 궁핍하고 옹졸하니

해 저물면 그저 술이나 마시지

지금은 길이 이미 막혀 버렸는데

굳이 머리가 희어지도록 걸어본들 무엇하리?

쓸쓸하도다. 진상이여!

베옷 열어젖히고 옛날의 제사 의례를 공부했다지.

공부한 것은 요. 순의 문장인데

당시 사람들은 배우만 놓고 트집을 잡았지

사립문에 수레바퀴 자국이 얼어붙었고

해질녘 느릅나무 그림자가 가냘프구나.

황혼에 나를 찾아 왔는데

힘겹게 절개 지키다 젊은 나이에 주름이 가득했지

태화산 오천길 봉우리는

대지를 쪼개고 큰 나무처럼 치솟아 있는데

조금도 평탄할 곳 없이 험준하게

곧장 치솟아 하늘의 별자리를 찌른다.

높은 벼슬아치들이 불쌍히 여겨주지 않는다 해도

어찌 내입을 막을 수 있으랴

나도 태화산 같은 그대의 품격 스승 삼아

편안히 앉아 날이 지나는 모습 구경하리오.

서리 만나면 덤불이 되고

기운 얻으면 봄 버들 되리니

세속의 예절은 내게서 떠나가 버려

몰골도 추구마냥 초췌할 따름

눈보라 치면 제단을 지키면서

검은 실에 동수를 꿰차고 있다오

비천한 사람들의 기세 등등한 행동 속에서

그저 청소하는 일이나 도와야지

하늘의 눈은 언제나 뜨이려나?

낡은 검은 부질없이 울고 있구나.

 

 

자유로운 문학정신

시에 대한 천재성으로 시귀(詩鬼)라고도 불리는 이하는 그의 뛰어난 文才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부친의 휘를 빙자한 수구세력의 견제로 벼슬길로 나아가는데 좌절하였다. 그의 시는 좌절을 경험한 인생의 굴절된 절망감 때문인지 아니면 詩鬼 불리어질 만큼 뛰어난 천재성 때문인지는 모르나 전편에 흐르는 내용은 파격적이고 염세적 색채가 짙다. 시어는 화려한 색채어와 초자연적 재제를 사용하여 환상적이고 낭만적이며 기괴하기까지 하다. 마치 한국의 이상을 보는 듯 하다. 20대에 요절한 것이라든지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것도 흡사하지만 무엇보다 당대에선 이해하지 못하는 자유로운 문학세계를 추구한 점이 두 사람의 공통점을 느끼게 한다. 그의 작품으로는 안문태수행(雁門太守行)’ ‘소소소(蘇小小)의 노래’ ‘장평전두가(長平箭頭歌)’ ‘神弦(신현)’ ‘將進酒(장진주)’ 感諷五首(감풍오수) 등이 있고 저서로는 이하가시편(李賀歌詩篇)’(4), ‘외집(外集)’(1)이 전한다. 그는 문학으로서 그의 절망을 승화하고 현실을 극복하여 높은 시 세계를 보여주었다.

 

秋來

桐風驚心壯士苦  衰燈絡緯啼寒素 

誰看靑簡一編書  不遣花蟲粉空

思牽今夜腸應直  雨冷香魂弔書客 

秋墳鬼唱鮑家詩  恨血千年土中碧  

 

오동나무 바람에 놀라 남아의 마음 괴로운데

희미한 등잔불 비치는 속에

베짱이는 울면서 베를 짠다.

누구일까, 대쪽으로 엮은 이 시를 읽어 주어

좀벌레에게 먹혀 가루가 되게 하지 않을 이가

서글픈 생각에 얽히어 이 밤 창자가 뻣뻣이 경직할 때

차가운 빗속에서 아름다운 혼들이 찾아와 이 독서인을 위로한다.

그들 귀혼들도 가을 무덤 속에서 포조의 시를 노래하며

원한에 가득 차서 피가 천년을 두고 푸르르겠지 

 

 

이하의 장진주

이하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장진주 때문일 것이다. 후일 원대에 이르러 시문선집인 고문진보에 수록되어 인구에 회자된다. 이것은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조선의 청자에까지 시문이 수록되었다. 경기도 용인시의 호암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보물 1389호 청자상감매죽유문 ‘장진주’ 명매병(靑磁象嵌梅竹柳文將進酒銘梅甁)의 청자 매병 가운데 시문(詩文) 장식이 상감되어 있다. 버드나무와 대나무와 매화를 두 군데에 각각 새긴 후, 그 사이 네 군데에 위패 형태의 창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그 안에 활달하고 기운 찬 필치로 시문을 새겨 넣고, 한쪽 버드나무 가지 사이 빈 공간에 ‘장진주(將進酒)’라는 시의 제목을 흑상감하였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이백의 장진주와 이하의 장진주

장진주는 중국의 시가의 단골 소재로, 화려한 연회 속에 인생의 무상함을 겹쳐 노래함으로 화려함과 무상함이 교차하는 극적인 요소로 한악부 이래 많은 작품들이 선보였다. 그 중에서도 이백의 장진주와 이하의 장진주가 가장 유명한데 이하의 장진주는 이태백의 장진주에 대비하여 색 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이태백의 장진주는 호탕하고 거침없는 기개를 보여 주는가 하면, 이하의 장진주는 색채감 있는 언어로 인생의 허망함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서로 대비해 볼 때 같은 사유의 방식도 또한 느낄 수 있다.

 

烹羔宰牛且爲樂 양을 삶고 소를 잡아 잠시 즐기려 하노니 / 이백

烹龍炮鳳玉脂泣 용을 볽고 봉황을 끓이니 옥 같은 흰 기름 녹아 흐르고 / 이하

이태백이 호방하게 양과 소를 안주로 하려 하는데 이하는 아예 한술 더 떠 신성시하는 용과 봉황으로 안주로 삼으려 한다.

 

朝如靑絲暮成雪 아침에 푸른 실 같던 머리가 저녁에 눈처럼 희었네 / 이백

況是靑春日將暮, 바야흐로 청춘의 해는 저물려 하는데 / 이하

백발을 보며 인생의 무상함을 대비법으로 이백이 노래했다면 청춘의 날들이 저물어가는 세월의 무심함과 인생의 안타까움을 이하는 절묘한 시어로 풀어내었다.

 

唯有飮者留其名 오직 술 마시는 자만이 그 이름 남기나니 / 이백

酒不到劉伶墳上土. 술이란 유령의 무덤에도 가져가지 못하는 것 / 이하

이백은 술을 예찬하며 술의 낭만성과 자유로운 정신세계에의 접근으로 글을 통해 이름을 남김을 노래했고, 이하는 술로 유명한 유령을 이야기하며 생과 사의 유별함과 살아있음의 자각을 술을 통해 말하고 있다.

 

이제 이하의 색채감 넘치는 화려하고도 현란한 연회의 모습과 복사꽃이 붉은 비처럼 내리는 가운데 인생의 유한함을 바라보는 장진주의 전편을 감상하려 한다.

 

將進酒

             -李賀-

琉璃鐘 (유리종)

琥珀濃 (호박농)

小槽酒滴眞珠紅(소조주적진주홍)

烹龍炮鳳玉脂泣(팽룡포봉옥지읍)

羅屛繡幕圍香風(나병수막위향풍)

吹龍笛(취용적)

擊鼉鼓(격타고)

皓齒歌(호치가)

細腰舞(세요무)

況是靑春日將暮(황시청춘일장모)

桃花亂落如紅雨(도화난락여홍우)

君終日酩酊醉(권군종일명정취)

酒不到劉伶墳上土(주부도유령분상토)

 

술을 권하며

           -이하-

유리잔

호박빛 진한 술

작은통 술방울은 진주처럼 붉다.

용 볽고 봉황 끓이니 옥 같은 흰 기름 녹아 내리고

비단 병풍 수놓은 휘장, 향기로운 바람 감도는데

용피리 불고

악어북 치며

하얀 이 드러내어 노래하고

가는 허리 흔들며 춤을 춘다.

바야흐로 청춘의 봄날은 저물어 가는데

복사꽃 흩날려 붉은 비 내리는 듯

그대 종일토록 취해나 보시게

유영도 무덤까진 술을 가져가지 못하였으니

 

이하의 장진주에서 우리는 목전에 펼쳐지는 현란하고도 화려한 연회의 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어느 봄날 날아갈 듯 어여쁜 무희들이 춤을 추고, 풍악을 울리고 흥이 도도한 한량들의 호탕하고 거침없는 술자리가 눈에 보이는 듯 선하다. 그러나 봄날의 그 화려한 연회도 청춘의 봄날이 저물어 유령의 무덤으로 반전되면서 인생의 허망함을 아울러 노래하고 있다. 복사꽃과 색채 현란한 연회에도 완전히 함몰되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연회의 이면에 청춘의 날이 저물고 복사꽃이 붉은 비처럼 떨어져 내려 모든 것이 덧없음을 아울러 노래하고 있는 허무주의적 색채를 보이고 있다. 그에 더하여 술 좋아하던 천하의 유령도 더 이상 술 마시지 못함을 말하면서 인생의 유한성을 비감스럽게 응시하는 천재 시인의 눈길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짧은 세월, 영원한 작품

병약해진 몸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하는 날로 쇠약해가는 그의 몸과는 달리 그의 문학정신은 자유로운 사유로서 더욱 명료해져 간다. 이하가 추구하는 세계는 무한대의 사유세계인 불교와 도교가 추구하는 무아와 영원의 세계이기도 한 것일까? 그는 능가경을 읽으며 불교의 세계에 탐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은 유한한 것, 그는 세월의 짧음을 슬퍼하며 시로 읊었다. 이윽고 그는 27세의 아까운 나이로 짧은 세월 동안 불꽃 같은 삶을 살고 갔지만 그의 작품은 지금도 감동을 주고 있으며, 영원히 읽혀질 것이다.

 

苦晝短

飛光飛光 勸爾一杯酒 吾不識靑天高 黃地厚 月寒日暖

來煎人壽 食熊則肥 食蛙則瘦神君下在 太一安有 天東有若木 下置啣燭龍

吾將斬龍足 嚼龍肉 使之朝不得迴 夜不得伏自然老自不死 少者不哭

何爲服黃金 呑白玉 誰是任公子 雲中騎白驢 劉徹茂陵多滯骨 嬴政梓棺費鮑魚

 

세월의 짧음을 슬퍼하며

날아가는 빛이여, 날아가는 빛이여,

그대에게 한 잔의 술을 권하노니

나는 푸른 하늘의 높음도, 누런 땅의 두터움도 모르고

그저 보이는 것이라곤 달의 차가움과 해의 따사로움이

번갈아 오가며 사람의 수명을 태우고 있다는 것

곰을 먹으면 살이 찌고, 개구리를 먹으면 마른다는데

수명을 관장 한다는 신군은 어디 계시고, 태일은 또 어디에 있으시나

하늘의 동쪽에 약목이란 나무가 있어,

그 아래에 등촉을 입에 문 용을 두었다지.

내 장차 용의 다리를 잘라 그 고기를 먹어

그 용으로 하여금 아침이 되어도 해를 몰아 돌아갈 수 없도록 하고

밤이 되어도 엎드려 휴식할 수 없도록 하면

자연히 늙은이들은 늙지 않고 젊은이들은 탄식하지 않을 터

무엇하러 황금을 먹고, 백옥을 삼키며 오래 살고자 기를 쓴다 하리?

임공자가 누구신데 구름 속에서 푸른 나귀를 타고

날아갔다고 말해지는가?

신선술을 동경하던 유철(한무제)은 무릉의 묘에서 썩은 뼈로 엉겨있고

불로약을 구하던 영정(진시황)은 덧없이 죽어 관속의

시체 썩은 내음을 없애려

건어를 열 말이나 채워두었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