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거주 98세 안노길 할머니, 안 의사 공적 알리다 40년 옥살이
姓도 車씨에서 安씨로..잇단 위문 행렬에 "행복하다"
(선양=연합뉴스) 박종국 특파원 = "뜨거운 애정과 관심이 고마워요. 조국의 품을 느낄 수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오는 26일 순국 100주년을 맞는 안중근 의사의 5촌 조카며느리인 안노길 할머니(98.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시 난강(南崗)구 안산(安山)가)의 요즘 하루 일과는 무척이나 바쁘다.
오전 8시께 잠에서 깨어 아침 식사를 한 뒤 손수 방 청소를 하고 이것저것 바느질을 하며 소소한 일거리를 직접 챙긴 뒤에는 어김없이 기도 책을 잡는다.
17살 나던 해 시집 오면서 챙겨온 뒤 평생 손에서 놓은 적이 없는, 닳고 닳은 그 기도 책을 잡고 안 의사의 구원을 갈구하는 기도를 한다.
평소에도 기도를 게을리하는 일이 없었지만 순국일이 다가오면서 안 의사를 기리는 할머니의 기도도 더욱 간절해졌다.
순국 100주년에 즈음해 쏟아지는 안 의사 관련 기사를 꼼꼼히 챙겨 읽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가 됐다.
요즘 연방 "행복하다"는 말을 되뇌지만 사실 그녀의 삶은 굴곡진 우리의 근현대사만큼이나 기구하고도 파란만장했다.
17살 나이에 안 의사의 사촌 동생 홍근(洪根)씨의 3남 무생(武生)씨와 결혼했지만 가정을 이룬 지 14년 만에 일제의 앞잡이에 의해 남편이 사망하면서 안 할머니의 삶은 뒤틀리기 시작했다.
안 의사 가문의 며느리라는 자긍심으로 충만했던 안 할머니의 일제에 대한 적개심은 남편의 사망을 계기로 극에 달했다.
이때부터 바느질 삯으로 겨우 끼니를 연명하면서 안 의사 공적을 세상에 알리는데만 매달렸다.
2천여명의 신자들이 모여 살던 북만주 최대 한인 천주교 마을이었던 헤이룽장성 하이룬현 하이베이전 쉬안무촌에 살다 하얼빈으로 이주한 그녀는 전쟁에 패한 일제가 물러간 뒤에도 '안 의사 추모 사업'을 계속 이어갔다.
안 의사 후손임을 내세우기 위해 차(車)씨였던 원래의 성도 안(安)씨로 바꾼 그녀는 손수 태극기를 만들어 방안에 걸어 놓고 독립군을 상징하는 군복과 별을 수놓은 모자만 착용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되고 이어 터진 6.25 전쟁으로 좌우 이념대립이 극심했던 냉전체제에서도 안 할머니의 안 의사 공적 알리기는 계속됐지만 곧 중국 당국에 의해 '이적 행위'로 낙인 찍혔다.
1958년 하얼빈 역 광장에서 태극기와 안 의사 초상화를 들고 안 의사 공적 인정과 종교 자유 등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다 공안 당국에 체포되기도 했다.
당시 적대국이었던 대한민국의 국기를 흔들고 당국의 허가 없이 시위를 벌인 안 할머니의 행위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정치적 범죄 행위였다.
반혁명죄로 무기형을 선고받아 옥살이를 하면서도 안 할머니는 치마 실오라기를 풀어 태극기를 만들어 감옥에 걸고 독립군복과 모자를 만들어 입고 쓰기를 고집했다.
개조 불능의 불순분자로 낙인 찍힌 그녀는 결국 1972년 오지인 네이멍구(內蒙古) 전라이 노동교화 감옥농장으로 이감돼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중국 내 개혁 개방 바람이 불고 한국과 수교가 이뤄지면서 1998년에야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꼬박 40년을 세상과 단절된 채 옥살이와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그녀는 풀려난 뒤 하얼빈의 성당을 전전하다 2000년 우연히 알게 된 최선옥(73.전 성모자애병원(현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원장) 수녀를 만나면서 비로소 안식처를 찾을 수 있었다.
지난해 안 의사 100주년을 맞아 연합뉴스의 보도로 사연이 소개된 이후 안 할머니는 부쩍 바빠졌다. '무심하다'고 원망했던 조국에서 격려와 위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력도 부쩍 회복됐다. 매일 손수 세수를 하는 것은 물론 이틀에 한 번은 목욕을 하고 방 청소며 속옷 빨래, 바느질을 손수 할 만큼 온종일 부지런히 몸을 놀린다.
안 할머니와 함께 살며 돌보는 최 수녀는 "처음 만났을 때는 치매 증세가 심했고 혼자만 중얼거려 대화가 되지 않았다. 옥살이를 하면서 얼마나 맞았는지 걸핏하면 '때려라 때려'라는 말 밖에는 하지 못했다"고 회고한 뒤 "이제는 안 의사의 순국일을 기억하고 집안 족보를 외울 만큼 정신이 또렷하다"고 전했다.
지난해 안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중국 교민들과 한국에서 온 방문객들이 다녀간 뒤 생긴 변화다.
최 수녀는 "한때 위중한 상태까지 간 적도 있었는데 한국에서 온 방문객이 색소폰으로 애국가를 불러주고 대학생들이 하얼빈 역에 모시고 다녀온 뒤로는 완전히 달라졌다"며 "수십 년 만에 찾은 하얼빈 역에서 안 의사를 떠올리며 하염없이 우셨는데 그게 카타르시스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방문객들이 용돈으로 쓰라며 쥐여준 돈을 모아 마련한 5천 위안을 안 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사업에 쓰라고 기탁하고는 더없이 기뻐했단다.
안 할머니의 요즘 유일한 낙은 한국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일이다.
손님이 온다는 기별이 있는 날은 아침 일찍부터 몸단장을 하고 손수 만든 독립군복과 모자를 차려입고 손님 맞을 채비를 한다. 이때는 손수 담가 고이 간직했던 알로에 술이며 서랍 깊숙이 보관하던 과자와 사탕도 아낌없이 풀어놓는다.
최 수녀는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고 국가관도 투철해 중국인과는 일절 말을 섞지 않지만 한국에서 온 방문객들과는 몇 시간이고 대화하려 한다"며 "행복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신다"고 전했다.
안 할머니의 소원은 뭘까. 대뜸 "120살까지 살 거야"라고 말한다. 노욕이 아니다. "침략자들을 응징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 수녀는 "생전 한국에 가본 적도 없지만 할머니는 우리의 혼과 뿌리, 애국정신이 그 누구보다 투철하다"고 말했다.
pj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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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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