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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의 뉴욕 '思父曲'

서까래 2010. 4. 1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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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의 뉴욕 '思父曲'

  철마  

         .가수 인순이는 16년 전 아기를 가졌을 때 "혹시 아이가

▶인순이는 돌아오자마자 이런 사연을 방송에서 숨김없이 알렸다.

 "마음껏 욕해 달라"고 했다.

그의 원정출산에 돌을 던지는 사람은 없었다.

 

3년 전 연예인 학력위조 파문 때는 중졸 학력을 고졸로

속여왔다는 게 드러났다. 그는 "가난해서 고등학교에 못 갔다.

나 자신과 팬들에게 정직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때도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지난 몇십년

우리 사회가 혼혈인을 어떻게 대해 왔는지 다들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인순이는 1957년 포천에서 태어났다.

주한미군이었던 아버지는 그가 뱃속에 있을 때 떠나

다시 오지 않았다. 열네살 때까지

가끔 편지를 주고받다 소식이 끊겼다.

 

그런 그에게 작년에 '아버지'라는 노래가 들어왔다.

'한 걸음도 다가갈 수 없었던/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얼마나 바라고 바라왔는지/

눈물이 말해준다….'

 

그는 이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를 단 한 번 본 적도 없으면서 아버지 심정을

노래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노래를 부르다

울컥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인순이는 1999년 뉴욕 카네기홀 공연을 앞두고

잔뜩 흥분해 신경성 장염과 위염으로

한 달을 고생했다.

> 

아버지의 나라에 가서 그가 어머니 힘만으로

얼마나 잘 자랐는지 보여줄 기회라고 별렀다.

 

지난주 다시 가진 카네기홀 공연에서 그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6·25 참전용사 100명을 모셔놓고 "여러분은 모두

제 아버지"라고 인사했다.

 

 

 

▶그는 작년에 '군인의 딸' 자격으로 공군대학에 특강을 나가

마지막 한마디로 강의실을 뒤집어놓았다. "외국에 파병 나가도

책임지지 못할 씨는 뿌리고 오지 마세요.

" 인순이니까 할 수 있는 얘기였다.

 

노래 '아버지'도 용기를 내 취입했다. 카네기홀 공연에선

"전쟁통에 나 같은 자식을 두고 떠난 뒤 평생 마음의 짐으로

안고 사는 참전용사들이 이제 짐을 내려놓으면 좋겠다"고 했다.

 

철마  

 

 

아버지를 극복하고 용서와 화해를 건네는

그녀가 당당하고 아름답다.

 

로버트 부라우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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