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아니하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뜻하지 않게 먼곳에서 귀인이 이곳 남도까지 친히 왕림하시었다.
저녁을 넘어선 다소 늧은 시각에 담양 추월산 자락의 아담한 별장같은 팬션에서 만나뵈었다.
만남이 너무 기뻤던 탓인지, 아니면 너무 짧음을 한탄함이었는지,
정작 많은 얘기를 나누지도 못하고, 나머지는 모두 술로 대신하였다.
기쁨이 컸던만큼 아쉬움도 많았던 민님과의 행복했던 만남은 내일이 있기에....
다시 달랠 날이 멀지 않기를 바라며....
말이 길어지면 주옥같은 님의 후기에 누가 될게 뻔하므로 간략히 줄이고 민님의 후기를 올린다.
- 만남이 짧았으나 기쁨이 많았던 추월산자락의 팬션-
*** 민님의 남도 답사 후기
소쇄원을 보기 위해 토요일 오후를 달려 담양의 숙소에 도착한 밤 아홉시.
옆의 광주에 계시는 햇살님과 연락이 닿아 잠깐 뵙기로 했는데
친히 차를 몰고 사모님과 함께 왕림해주셨다.
사진을 몇 번 보아서일까.
오랜 벗처럼 친숙한 그의 모습과
곱고도 기품이 배어나오는 옆지기에게서
깊은 배려의 흔적을 느끼며 우리는 한껏 반가웠다.
그의 손에는 양주 한 병과 산삼을 능가한다는 귀한 가을낙지 한 접시가
가을과 겨울의 접경과 저녁과 밤의 교차로에서 흔들거리며
우리의 만남을 위한 향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웠던 정 넘치니
작은 잔은 번거로워
큰 잔에 콸콸 쏟으면
봉숭아 빛으로 곱게 번지는
연인보다 깊은 사내들의 우정.
너무 취한다며, 너무 시간이 오래라며 사모님이 옆구리를 쿡쿡 찌르지만
예의와 객관과 평범함을 벗어난 사내들의 흉금을 어찌 알겠는가.
술은 명치의 성냥골에 불을 붙여 가슴의 장작은 활활 타고
뇌의 주름에 자리한 지식과 이성은 풀죽처럼 풀어져
자연과 본성이라는 아름다운 혼돈의 탕 속에서
헤엄치는 열락(悅樂)의 물고기가 되었다.
다음날 새벽에 지리산을 오른다는 햇살님 부부이기에
무리를 말고 일어나 내일을 기약해야할 터이지만
세상사를 이성에 준한 이론과 공식대로 살기엔
우린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오늘 헤어지면 오래 보지 못할 것이니
애써 그리움이라는 단어로 포장해보지만
그리움의 알맹이는 안타까움과 쓸쓸함이어서
내일 고난이 온다 해도 오늘 회포를 풀어냄보다는 못하리라는 것을.
시간을 잊었다, 그대와 마주한 순간에 시간은 멈추었으므로.
공간도 잊었다, 우주는 그대와 나만을 위해 존재했으므로.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서서히 슬픔이 오는 까닭에
극치의 한 발작 앞 즈음의 어느 시간, 어느 공간에서
그대 떠난다 했고 나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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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로 인한 망각의 늪에서 빠져나온 시간이 아침 여덟시.
나를 뺀 동료 네 명은 아직 혼돈의 상태를 헤맨다.
현관을 나와 맑은 공기를 마시며 툴툴 머리를 털어내자
잠의 편린들이 햇살에 부딪쳐 눈발처럼 분분히 날린다.
산으로 연결된 뒷마당을 건너 숲으로 들자 새들의 언어가 분주하다.
어치가 크어억~ 저음으로 기침을 하자 나무가 깨어 기지개를 켠다.
쉬는 시간의 교실처럼 재잘거리는 녀석들은 검은 넥타이의 박새들이다.
작은 바위에 앉아 대금을 불어본다.
멍하고 입이 마르고 손가락이 둔하니
소리가 잘 날 리가 없지만 인간이라 불리는 내가
새들의 노래에 화답을 안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소음일 수밖에 없는 산조 한 가락 내 지르자
세상의 평화가 깨어지며 차들이 비명을 지르고
인간들이 불안정한 음정으로 소란을 펴고 있다.
슬그머니 일어나 냇가로 내려가 물고기를 보지만
이 녀석들도 떼로 몰려다니는 것은 마찬가지여서
한가롭고 여유로운 풍경과는 거리가 먼 것을 보니
새나 물고기나 인간이나 까닭 없이 분주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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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쇄원 들어가는 길-
동료들이 일어나 밥을 짓고 부른다.
아침 먹고 소쇄원을 향해 떠난다, 열시 남짓.
소쇄원 오르는 길과 하늘은 대숲에 가리었다.
소쇄원 삽작에서 만난 대봉대(待鳳臺), 봉황을 맞이하는 곳.
참새 닮은 객인 나를 봉황이라 부르니 송구스러워 고개 숙인다.
산과 소쇄원을 담장을 쳐서 가리개병풍처럼 가리고는
앞쪽 담장을 애양단(愛陽壇)이라 이름 했으며
뒤쪽 담장을 오곡문(五曲門)이라 명하니,
애양단은 햇볕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말이어서
노부모에 대한 효도의 날이 짧은 것을 염려한 것이며.
오곡문은 다섯 번을 휘감아 내려오는 계곡물 위에 담을 지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고
주자가 무이九曲의 第五曲에 무이정사를 짓고 성리학을 연구하던 뜻을
본받고자 함일 수도 있겠다.
- 제 월 당-
계곡 에 걸쳐진 외나무다리를 건너 제월당에 잠시 오른다.
제월(霽月), 비 그친 뒤의 맑은 달.
주인이 머무는 집을 이리 이름하였으니
주인의 기품이 가을하늘 맑은 달처럼 고매했으리.
제월당을 내려오면
사면이 우물마루로 트인 정자에
가운데는 분합문을 달아 방으로 꾸민 광풍각이다.
광풍(光風), 비 개인 허공에 맑게 씻긴 햇살이 바람에 날리듯
와서 머무는 벗들의 기상 또한 햇살처럼 맑고 공명정대했으리라.
- 광 풍 각 -
산과 계곡을 마주한 제월당의 마루에 동행자 다섯이 앉았다.
나를 뺀 모두가 그림쟁이인지라 그림을 목적으로 온 것이니
모두가 화첩과 화지를 꺼내 풍광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나는 구멍 난 대나무를 꺼내 대금을 불기 시작했다.
조금은 서늘한 날씨이지만 햇살은 따스하고 바람은 멈추었는데
넷은 그림에 몰두하고 나는 젓대에 빠져 오후의 햇살을 낚으니
관람객마다 광풍각에 머물며 그림 그리는 솜씨에 감탄을 하고
부족한 대금소리를 탓하지 않고 귀 기울이다 떠나가고 있으니
이날 소쇄원을 방문한 이들은 원림에 어울리는 문사(文士)들의
붓놀림과 젓대소리에 과히 심심친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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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님이 일요일 오전 문자 주시며 지리산을 오르고 있다 했을 때
우리는 겨우 일어나 아침 먹고 소쇄원으로 이동하고 있었으니
모두가 술에 취해 늦잠을 잤기 때문입니다.
햇살님도 술을 많이 드셨는데 어찌 그리 빠른 시간에 지리산을 오르고 있는지...
양주에 귀한 낙지 마시고 먹으며 담소를 나누기엔 밤이 너무 짧았습니다만
아쉬움이 남아야 그립고, 그리워야 다시 만날 기약이 있는 법이라고
자위를 하면서 담양을, 햇살님 계시는 광주 근처를 지나왔습니다.
밤 열시 반 인천 도착, 서울 열한 시 남짓, 열두시쯤 잠들었습니다.
지금 상쾌합니다, 벗님의 사랑 담뿍 마시고 왔기 때문이겠지요.
님, 고맙습니다. 사모님께도 대신 안부 전해주십시오, 고마웠다고, 사랑한다고.
산으로 가야지 / 산사의 명상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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