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시고.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들지 못하고, 책을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휘날릴 때, 불안스레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
오늘이 겨울로 들어선다는 입동이고,
그래서인지 날씨가 한결 차가워진 느낌이다.
이즈음이 되면 떠오르는 시가 릴케의 가을날이다.
파릇파릇 새싹이 움트는 봄이 오나 했더니...
어느덧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마저 떠나가려 한다.
지난 봄도, 지난 여름도,
이 가을도 너무나 짧기만 하다.
주여, 시간을 더디 가게 하소서!
부디 가을이 우리 곁에 오래 머물게 하시고,
집이 없는 사람에게 집 지을 시간을 허락해 주소서!
아니면 내가 죽을 힘을 다해 가을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겠나이다.
뭐라구요?
가을이 치마를 벗어 던지고 팬티바람으로라도 떠나 갈거라구요?
........
그렇다면 붙잡을 수도 없는 일.
가을이 감기라도 걸려 허무하게 죽어버리면 가을과도 영영 이별인게야.
가는 가을 잡을 수 없어 보내는 마음 허전하고,
꿈꾸던 청춘은 꿈을 잃은 반백의 중년이 되어 초라하게 늙어간다.
다 그렇게 사는 거지.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고 하지 않던가?
황금물결로 출렁이던 들판의 곡식들이 곳간에 쌓이면,
텅빈 들판엔 황량한 바람이 스쳐지나간다.
추수가 끝난 들판의 한가운데 서본 적이 있는가?
이 가을, 왠지 허전하지 아니한가?
그리고 이 가을을 의미없이 그냥 보내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남녘의 산야는 붉게 물들어 타들어 간다.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만추의 주말,
가을을 배웅하러가지 않으려는가?
일상에 지친 그대,
떠나라.
잠시 무거운 짐을 벗어두고
배낭에 김밥 몇 줄 짊어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가을속으로 들어가 보시라.
하루쯤 가을빛으로 붉게 물들어 볼 일이다.
누가 아는가?
가을이 이별의 선물로 그대에게 청춘을 되돌려 줄는지......
즐거운 주말되시길..........
찬바람이 불면/ 김지연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jXy15NG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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