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류시화/241011

나비

 

달이 지구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지구에 달맞이꽃이 피었기 때문이다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이제 막 동그라미를 그려낸

어린 해바라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상은

나비 한 마리로 내게 날아온다

내가 삶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너에 대한 그리움 때문

지구가 나비 한 마리를 감추고 있듯이

세상이 내게서

너를 감추고 있기 때문

 

파도가 바다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그 속에서 장난치는 어린 물고기 때문이다

바다가 육지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모래에 고개를 묻고 한 치 앞의 생을 꿈꾸는

늙은 해오라기 때문이다

 

아침에 너는 나비 한 마리로

내게 날아온다

달이 지구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나비의 그 날개짓 때문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너에 대한 내 그리움 때문

 

- 류시화

 

쉽게 뗄 수 없는 게 인과관계인가 봅니다.

불교에서 쓰는 시절인연이란 용어도 있습니다.

시절인연이라는 표현은 인생의 흐름과

사람들 간의 만남이 정해진

운명이나 인연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인생의 특정한 시기나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얽히고설킨 관계나 만남을 뜻하며

살아가며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단순히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각각의 시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일깨워 주는 말입니다.

 

우리는 어떤 시절인연을 타고난 걸까요.

시절인연이 소모품이라면 우리 또래의 사람들은

거의 다 소진해 버리고 남은 게 얼마 안 되지 싶습니다.

그래서 살아오면서 맺어진 인연들을

더욱 소중히 생각하며 살아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시 찾아온 금요일입니다.

중간중간 쉬는 날들이 있다 보니

한주가 더 빨리 가는 것 같습니다.

가로변의 느티나무들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더군요.

한주를 보내는 아쉬움은 한 켠에 묻어두고

짙어가는 가을빛과 함께 즐겁고 알찬 주말 보내시길 빕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그리고 행복하시길...

 

(음표) 김정호의 “하얀 나비”

https://youtu.be/7x3YHzZO6-M

 

(음표) 양현경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https://youtu.be/YaMuQe7hGB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