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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마지막 순간! 어록. 노래 독립 군가&오디

서까래 2010. 3. 1. 13:23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마지막 순간! 어록. 노래 독립 군가&오디

안중근(안응칠)의사- 독립운동.1879.9.2~1910.3.26.
이토 히로부미 초대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살해(1909),
대한의군 참모중장(1908), 남포돈의학교, 삼흥학교 설립(1907),
천주교 입교(1895).3남 1녀 중 장남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마지막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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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어록

志士仁人殺身成仁 
지사와 어진사람은 몸을 죽여 인을 이룩한다.

國家安危勞心焦思
국가와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

臥病人事絶 嗟君萬里行
河橋不相送 江樹遠含情 
 나는 병석에 누워 일지 못하고 그대는 만리 먼길을 떠나갔는가
다릿못에 같이나가 보내길업고 강언덕 나무숲에 정만 어렸네

爲國獻身軍人本分 
나라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日出露消兮 正合運理
日盈必○兮 不覺其兆
해가뜨면 이슬이 사라지나니 천지의 이치에 부합되도다.
해가차면 반드시 기우니 그 징조를 깨닫지 못하는도다.

五老奉爲筆 靑天一丈紙
三湘作硯池 寫我腹中詩 
오로봉으로 붓을 삼푸른 하늘 한 장 종이 삼아
삼상의 물로 먹을 갈아 뱃속에 담긴 시를 쓰련다.

見利思義見危授命 
위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人無遠慮難成大業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못하면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

白日莫虛渡靑春不再來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다.

百忍堂中有泰和
 백번 참는 집안에 태평과 화목이 있다.

歲寒然後知松柏之不彫 
 눈보라 친 연후에야 잣나무가 이울지 않음을 안다.

丈夫雖死心如鐵 義士臨危機似雲 
장부가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은 쇠와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이를지라도 기운이 구름같도다

庸工難用連抱奇材 
서투른 목수는 아름드리 큰 재목을 쓰기 어렵다.

金刀山刀水慘雲難息 
 검산과 칼끝에 처참한 구름조차 쉬기 어렵다

思君千里 以表寸誠
望眼欲穿 幸勿負情
 나라를 걱정하며 천리밖에 나와
당신을 향해 바라보니 눈이 뚫어질것 같으오
나의 이 작은 정성을 바치오니
행여나 이정을 버리지 마소서

黃金百萬而不如一敎子 
 황금 백만냥도 자식 하나 가르침만 못하다

恥惡衣惡食者不足與議 
 궂은 옷,궂은 밥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더불어 의논할 수 없다.

博學於文約之以禮 
 글공부를 널리 하고 예법으로 몸단속하라

喫蔬飮水藥在其中
나물 먹고 물마시니 그 속에 낙이 있네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言語無非菩薩手段擧皆虎狼 
 말은 보살 아닌 것이 없건마는
하는 짓은 모두가 사납고 간특하다.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
해마다 계절따라 같은 꽃이 피건만
해마다 사람들은 같지 않고 변하네

貧而無諂富而無驕 
가난하되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되 교만하지 않는다

弱肉强食風塵時代
약한자를 강한자가 잡아먹는 풍진시대다


年年點檢人間事惟有東風不世情         
해마다 세상일 헤아려보니
다만 봄바람만이 세태를 따르지 않네

孤莫孤於自恃
스스로 잘난체 하는것보다 더 외로운것은 없다

안중근의사유묵 (安重根義士遺墨) 모음

 

 
안중근의사유묵-극락 安重根義士遺墨-極樂
 
지정번호
:
보물 제569-19호
지정연월일
:
1972년 8월 16일
시 대
:
1910년(순종 융희 4) 3월
  규모·양식
:
1점, 33.3㎝×67㎝
재 료
:
종이에 먹
소 유 자
:
강석주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종 산1-86

 

1910년 3월 항일투사 안중근(1879∼1910) 의사가 만주의 여순(旅順) 감옥에서 남긴 글씨로

"극락(極樂)"을 쓴 것이다. 말미에 "庚戌三月 於旅順獄中大韓國人安重根書"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掌印)이 찍혀있다.

 

 

                                      

                                         박학어문약지이례

 

 
안중근의사유묵-박학어문약지이례 安重根義士遺墨-博學於文約之以禮

 
지정번호
:
보물 제569-13호
소 유 자
:
국유
소 재 지
: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

 

이 유묵은 항일투사 안중근 의사가 만주의 여순 감옥에서 남긴 글씨로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에 이등박문을 사살하고 여순감옥에서 순국할 때까지 옥중에서 많은

붓글씨를 남겼으며 이 글씨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 글은 박학어문 약지이례의 여덟 글자이며 가로 약 33cm,세로 약 138㎝ 크기의 족자로 되어

있다. 박학어문 약지이례란 글을 널리 배우고 예로써 요약하라는 것으로 배움의 폭을 넓히고

그것을 예로써 요약되게 실행해야 한다는 뜻이며,

그래야만 도(道)를 배반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글 왼쪽에는 '경술삼월어여순옥중 대한국인안중근서' 라쓰여 있어 1910년 3월에 여순감옥에서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에는 서명 부분에 낙관대신 대한국인 안중근서라고 쓰고 한 손마디가 없는

손도장을 찍은 점이 공통적인 특징인데 이러한 독특한 서명은 그의 기개와 충정을 잘 보여준다.

안중근 의사가 남긴 글씨는 애국지사의 충혼과 강인한 의지가 힘차고 활달한 필체로 표현되어

있으며 서예적 가치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사 연구와 안중근 개인사연구에도

귀중한 자료이다.

 

 

                                    

                           오로봉위필청천일장지삼상작연지사아복중시

 

 
안중근의사유묵-오로봉위필청천일장지삼상작연지사아복중시

    安重根義士遺墨-五老峯爲筆靑天一丈紙三湘作硯池寫我腹中詩
 
지정번호
:
보물 제569-9호
지정연월일
:
1972년 8월 16일
  시 대
:
대한제국 순종 융희 4년(1910) 2월
  규모·양식
:
1점, 138.4㎝×31.8㎝
  재 료
:
종이에 먹
  소 유 자
:
홍익대학교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수동 72-1 홍익대학교 박물관

 

1910년 2월 항일투사 안중근(1879∼1910) 의사가 만주의 여순(旅順) 감옥에서 남긴 글씨로 자작시 오언절구(五言絶句) 한 수를 쓴 것이다

 

                                  

                                    동양대세사묘현유지남아기안안

                                    화국미성유강개정략불개신가련

 

 

 
안중근의사유묵-동양대세사묘현유지남아기안면화국미성유강개정략불개진가련

    安重根義士遺墨-東洋大勢思杳玄有志男兒豈安眠和局未成猶慷慨政略不改眞可憐
 
지정번호
:
보물 제569-5호
지정연월일
:
1972년 8월 16일
  시 대
:
대한제국 순종 융희 4년(1910) 3월
  규모·양식
:
1점
  재 료
:
종이에 먹
  소 유 자
:
숭실대학교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1-1 숭실대학교 박물관

 

1910년 3월 항일투사 안중근(1879∼1910) 의사가 만주의 여순(旅順) 감옥 에서 남긴 글씨로

칠언절구의 자작시를 쓴 것이다.

 

동양대세 생각하매 아득하고 캄캄하니 東洋大勢思杳玄
뜻 있는 사나이 어찌 편히 잠들겠는가 有志男兒豈安眠
평화시국 못 이룸이 아직도 북받치는데 和局未成猶慷慨
정략을 고치지 않으니 참으로 불쌍하다 政__不改眞可憐

 

암담한 동양의 대세를 생각해보니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자신에 대한

비탄이다. 또 아직 평화의 시국을 이루지 못한 것이 더욱 개탄스럽고, 게다가 정략

즉 침략정책을 버리지 못하는 일본이 불쌍하다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단국대학교 소장의

유묵(보물 제569-21호)에서 "欲保東洋 先改政  時過失機 追悔何及(동양을 보존하려 한다면

우선 정략을 고쳐야 하니 때가 지나 기회를 놓치면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랴)"라고 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이들 내용과 관련하여 안 의사는 옥중에서 ≪안응칠역사(安應七歷史)≫와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을 지었다.

그중 자서전인 ≪안응칠역사≫는 완성되었지만, 논설 ≪동양평화론≫은 서문과

<전감(前鑑) 1>만 지어졌고 나머지 <현상(現狀) 2> <복선(伏線) 3> <문답(問答) >」는

목차만 제시된 채 미완성으로 남았다. 당시 안 의사가 이를 집필하기 위해 사형집행 날짜를

한 달쯤 늦추도록 고등법원장 히라이시(平石)에게 청하여 그의 쾌락을 받았으나

결국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동양평화론≫의 서문에서 안 의사는 "若政略不改逼迫日甚則不得已寧亡於異族不忍受辱於

同種 議論湧出於韓淸兩國人之肺腑 上下一體 自爲白人之前驅 明若觀火之勢矣. 然則…

(만약 정략을 고치지 않고 핍박이 날로 심해지면, 차라리 다른 인종에게 망할지언정 차마

같은 인종[황인종]에게 욕을 당할 수는 없다는 의론이 한국·청국 두 나라 사람의 마음속에

용솟음쳐 위ㆍ아래가 한 몸이 되어 스스로 여러 사람 앞에 나설 수밖에 없음이 불을 보듯

뻔한 형세이다. 그렇게 되면…)"이라 하여 일제의 침략정책을 경고한 적이 있다.


한편 유묵 앞쪽에는 "贈仙境先生(증선경선생)"이라 쓰여있고, 말미에 "庚戌三月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應七 謹拜"라는 낙관과 장인(掌印)이 찍혀있다. 글씨를 증여받은 '선경'이

누구인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혹시 안 의사를 심문하던 통감부 경시(警視) 사카이(境喜明)가

아닐까 한다. 안 의사의 유묵 가운데 드물게 응칠이란 자(字)가 쓰였는데, ≪안응칠역사≫에

따르면 그의 가슴과 배에 일곱 개의 검은 점이 있어, 자를 응칠이라 하였다고 한다.

 

 

 

 
안중근의사유묵-운재 安重根義士遺墨-雲齋
 
지정번호
:
보물 제569-20호
지정연월일
:
1972년 8월 16일
시 대
:
1910년(순종 융희 4) 3월
  규모·양식
:
1점, 32.8㎝×67.8㎝
재 료
:
종이에 먹
소 유 자
:
김용주(金龍周)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자동 172-1

 

1910년 3월 항일투사 안중근(1879∼1910) 의사가 만주의 여순(旅順) 감옥에서 남긴 글씨이다.

"운재(雲齋)"라는 재호(齋號)를 쓴 것이다. 말미에 "庚戌三月於旅順獄中大韓國人 安重根 書"

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掌印)이 찍혀있다.

 

 

                                      

                                             위국헌신군인본분

 

 
안중근의사유묵-위국헌신 군인본분 安重根義士遺墨-爲國獻身軍人本分
 
지정번호
:
보물 제569-23
지정연월일
:
1993년 1월 15일
시 대
:
1910년(순종 융희 4) 3월
  규모·양식
:
1점, 137㎝×32.8㎝
재 료
:
종이에 먹
소 유 자
:
안중근의사숭모회(安重根義士崇慕會)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5가 471 안중근의사기념관

 

안중근 의사가 공판정을 왕래할 때 경호를 맡았던 일본헌병 치바 도시치(千葉十七) 간수에게

써준 것으로 전한다.

 

치바는 안중근 의사가 처형된 뒤 자진하여 제대했는데, 그가 사망하자 안 의사의 유묵은 그의

부인과 조카딸 미후라에 의해 보관되었다가 1980년 8월 23일 토쿄 국제한국연구원 최서면

원장을 통해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되었다. 내용은 "나라를 위해 몸바침이 군인의 본분이다

(爲國獻身 軍人本分)"라는 뜻이다. 여덟 글자를 한 줄에 쓴 것으로 낙관·장인(掌印)은 앞의

것과 같고 다만 낙관 말미에 "삼가 올림(謹拜)"을 덧붙였을 뿐이다.


이 글은 각각 자신을 취조한 검찰관과 경호를 담당한 헌병에게 써준 것으로 일본인조차

안 의사의 충절과 의리에 감복하여 소중히 간직해왔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인무원여난성대업

 
안중근의사유묵-인무원여 난성대업 安重根義士遺墨-人無遠慮 難成大業
 
지정번호
:
보물 제569-8호
지정연월일
:
1972년 8월 16일
시 대
:
1910년(순종 융희 4) 2월
규모*양식
:
1점, 135.8㎝×33.5㎝
재 료
:
종이에 먹
소 유 자
:
숭실대학교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1-1 숭실대학교 박물관

 

1910년 2월 항일투사 안중근(1879∼1910) 의사가 만주의 여순(旅順) 감옥에서 남긴 글씨이다.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큰 일을 이루기 어렵다"는 것이다. 마치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편에서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필히 가까운 근심이 있게 된다

(人無遠慮 必有近憂)"는 구절을 응용한 듯하다. 즉, 먼 장래를 내다보는 원대한 계획이 없이

그저 눈앞의 것만을 생각하면 필히 아침저녁으로 급박한 걱정이 생길 것이며,

그러면 결코 대업을 이루기 어렵다는 뜻이다. 또 ≪좌씨전(左氏傳)≫ 양공(襄公) 편에

"군자는 멀리 생각하고 소인은 가까운 것을 좇는다(君子有遠慮, 小人從邇)"라는 구절도 있듯이

먼 장래를 생각하는 군자의 도리를 언급한 것이다. 말미에 "庚戌二月於旅順獄中大韓國人

安重根 書"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掌印)이 찍혀있다.

 

 

 
안중근의사유묵-제1강산 安重根義士遺墨-第一江山
 
 
 
 
지정번호
:
보물 제569-14호
지정연월일
:
1972년 8월 16일
시 대
:
1910년(순종 융희 4) 2월
  규모·양식
:
1점, 38.6㎝×96.6㎝
재 료
:
종이에 먹
소 유 자
:
숭실대학교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1-1 숭실대학교 박물관

 

1910년 2월 항일투사 안중근(1879∼1910) 의사가 만주의 여순(旅順) 감옥에서 남긴 글씨이다.

 "第一江山"을 쓴 것으로 가볼 수 없는 조국강산에 대한 그리운 심정이 나타나 있다.

 이 글씨는 평양 대동강 가의 연광정(練光亭)에 걸려있던 <第一江山 편액>을 기억하고

쓴 듯한 필치이다. 말미에는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라는 낙관이 쓰여있고

그 아래 장인(掌印)이 찍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