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여행의 시작

기쁨은 사물 안에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다!

金剛山도 息後景 - 풀잎처럼 눕자

읽어보아요/좋은 글과 시

[스크랩] 시인 류시화 시 모음

서까래 2010. 3. 2. 00:35

 

 

빵                                                             

 

내 앞에 이 하나 있다

잘 구워진

적당한 불길을 받아

앞뒤로 골고루 익혀진

그것이 어린 밀이었을 때부터

태양의 열기에 머리가 단단해지고

덜 여문 감정은

바람이 불어와 뒤채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또 제분기가 그것의

아집을 낱낱이 깨뜨려 놓았다

나는 너무 한쪽에만 치우쳐 살았다

저 자신만 생각하느라고

제대로 익을 겨를이 없었다

 

내 앞에 이 하나 있다

속까지

잘 구워진 빵

 

 

 

 

굴뚝 속에는 더 이상 굴뚝새가 살지 않는다     


입을 벌리고 잠을 자는 것은
인간뿐
삶이 그만큼 피곤하기 때문이다
굴뚝 속에는 더 이상
굴뚝새가 살지 않는다
보라, 삶을
굴뚝새가 사라진 삶을
모든 것이 사라진 다음에
오직 인간만이 남으리라
대지 위에
입을 벌리고 잠든 인간만이 
 

 

 

 

첫사랑                                                     

 

이마에 난 흉터를 묻자 넌
지붕에 올라갔다가
별에 부딪친 상처라고 했다

 

어떤 날은 내가 사다리를 타고
그 별로 올라가곤 했다
내가 시인의 사고방식으로 사랑을 한다고
넌 불평을 했다
희망 없는 날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난 다만 말하고 싶었다

 

어떤 날은 그리움이 너무 커서
신문처럼 접을 수도 없었다

 

누가 그걸 옛 수첩에다 적어 놓은 걸까
그 지붕 위의
별들처럼
어떤 것이 그리울수록 그리운 만큼
거리를 갖고 그냥 바라봐야 한다는 걸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시를 쓴다는 것이
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
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다
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
내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새에 대해
나는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안개 속에 숨다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감을 두려워 한다

    

안개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 
그 고독을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

    

안개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 여럿인 것도 없다

    

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곁에 머무를 수는 없는것
시간이 지나면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면서 
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속에 숨는 것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너였구나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것이
인기척에 부스럭거려서 여우처럼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슬픔, 너였구나
나는 이 길을 조용히 지나가려 했었다
날이 저물기 전에
서둘러 이 겨울숲을 떠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를 깨우고 말았구나
내가 탄 말도 놀라서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숲 사이 작은 강물도 울음을 죽이고
잎들은 낮은 곳으로 모인다
여기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잇다
한때 이곳에 울려퍼지던 메아리의 주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무들 사이를 오가는 흰새의 날개들 같던
그 눈부심은
박수치며 날아오르던 그 세월들은
너였구나
이길 처름부터 나를 따라오던 것이
서리 묻은 나뭇가지를 흔들어 까마귀처럼 놀라게 하는 것이
너였구나
나는 그냥 지나가려 했었다
서둘러 말을 타고 이 겨울숲과 작별하려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에게 들키고 말았구나
슬픔, 너였구나

 

 

 

물안개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사랑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안개처럼

몇 겁의 인연이라는 것도

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전화를 걸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당신은 마치 외로운 새 같다

긴 말을 늘어놓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당신은 한겨울의 저수지에 가 보았는가

그곳에는 침묵이 있다.

억새풀 줄기에

마지막 집을 짓는 곤충의 눈에도 침묵이 있다.

그러나 당신의 침묵은 다르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누구도

말할 수 없는 법

누구도 요구할 수 없는 삶

그렇다, 나 또한 갑자기 어떤

깨달음을 얻곤 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정작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생각해 보라, 당신도 한때 사랑을 했었다.

그때 당신은 머리 속에 불이 났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은 외롭다

당신은 생의 저편에 서 있다.

그 그림자가 지평선을 넘어 전화선을 타고

내 집 지붕 위에 길게 드리워진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 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사랑과 슬픔의 만다라                           

 

너는 내 최초의 현주소

늙은 우편 배달부가 두들기는

첫번째 집

시작 노트의 첫장에

시의 첫문장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나의 시는 너를 위한 것

다른 사람들은 너를 너라고 부른다

그러나 나는 너를 너라고 부르지 않는다

너는 내 마음

너는 내 입 안에서 밤을 지샌 혀

너는 내 안의 수많은 나

정오의 슬픔 위에

새들이 찧어대는 입방아 위에

너의 손을 얹어다오

물고기처럼 달아나기만 하는 생 위에

고독한 내 눈썹 위에

너의 손을 얹어다오

나는 너에게로 가서 죽으리라

내가 그걸 원하니까

나는 늙음으로 생을 마치고 싶지는 않으니까

바닷새처럼 해변의 모래 구멍에서

고뇌의 생각들을 파먹고 싶지는 않으니까

아니다

그것이 아니다

내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내가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넌 알몸으로 내 앞에 서 있다

내게 말해다오

네가 알고 있는 비밀을

어린 바닷게들의 눈속임을

순간의 삶을 버린 빈 조개가 모래 속에

감추고 있는 비밀을

그러면 나는 너에게로 가서 죽으리라

나의 시는 너를 위한 것

다만 너를 위한 것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                                

 

넌 알겠지

바닷게가 그 딱딱한 겁질 속에

감춰 놓은 고독을

모래사장에 흰 장갑을 벗어 놓는

갈매기들의 무한 허무를

넌 알겠지

시간이 시계의 태엽을 녹슬게 하고

꿈이 인간의 머리카락을 희게 만든다는 것을

내 마음은 바다와도 같이

그렇게 쉴새없이 너에게로 갔다가

다시 뒷걸음질친다

생의 두려움을 입에 문 한 마리 바닷게처럼

나는 너를 내게 달라고

물 속의 물풀처럼 졸라댄다

내 마음은 왜

일요일 오후에

모래사장에서 생을 관찰하고 있는 물새처럼

그렇게 먼 발치서 너를 바라보지 못할까

넌 알겠지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을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는

무한 고독을

넌 알겠지

그냥 계속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이라는 것을

 

 

 

 

저편언덕                                                
 
슬픔이 그대를 부를때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라.
 

세상의 어떤것에도 의지할수 없을때
그 슬픔에 기대라.
 

저편언덕처럼
슬픔이 그대를 손짓할때
그곳으로 걸어가라.
 

세상의 어떤의미에도 기댈수 없을때
저편언덕으로 가서
그대 자신에게 기대라.
 

슬픔에 의지하되
다만 슬픔의 소유가 되지말라.

 

 

 

 

비로 만든 집                                            

비로 만든 집에서
나는 살았네
안개로 만든 집
구월의 오솔길로 만든 집
구름비나무로 만든 집

비로 만든 집에는 언제나
비가 내리지
비를 내리는 나무
비를 내리는 길
비를 내리는 염소들

세상이 슬픔으로 다가올 때마다 나는
그곳으로 가서 비를 맞았네
비의 새가 세상의 지붕 위를 날고
비를 내리는 오솔길이
비의 나무를 감추고 있는 곳

비로 만든 집에서
나는 살았네
비의 새가 저의 부리로
비를 물어 나르는 곳
세상 어디로도 갈 곳이 없을 때 나는
그곳으로 가서 비를 맞았네

비로 만든 집에는
언제나 비가 내리지
비를 내리는 나무
비를 내리는 길
비를 내리는 염소들

 

 

 

 

소금별                                                   

소금별에 사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릴 수 없네

눈물을 흘리면

소금별이 녹아 버리기 때문

소금별 사람들은

눈물을 감추려고 자꾸만

눈을 깜박이네

소금별이 더 많이 반짝이는 건

그 때문이지

 

 

 

 

별에 못을 박다                                           
 
어렸을 때 나는

별들이 누군가 못을 박았던

흔적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별들이 못구멍이라면

그건 누군가

아픔을 걸었던

자리겠지

 

 

 

 

잊었는가 우리가                                       

잊었는가 우리가 손잡고

나무들 사이를 걸어간 그 저녁의 일을

우리 등 뒤에서 한숨지며 스러지던

그 황혼의 일을

나무에서 나무에게로 우리 사랑의 말 전하던

그 저녁새들의 일을

잊었는가 우리가 숨죽이고

앉아서 은자처럼 바라보던 그 강의 일을

그 강에 저물던 세상의 불빛들을

잊지 않았겠지 밤에 우리를 내려다보던

큰곰별자리의 일을, 그 약속들을

별에서 별에게로 은밀한 말 전하던

그 별똥별의 일을

곧 추운 날들이 시작되리라

사랑은 끝나고 사랑의 말이 유행하리라

곧 추운 날들이 와서

별들이 떨어지리라

별들이 떨어져 심장에 박히리라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세상을 잊기 위해 나는

산으로 가는데

물은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간다

버릴 것이 있다는 듯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듯

나만 홀로 산으로 가는데

채울 것이 있다는 듯

채워야 할 빈 자리가 있다는 듯

물은 자꾸만

산 아래 세상으로 흘러간다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눈을 감고

내 안에 앉아

빈 자리에 그 반짝이는 물 출렁이는 걸

바라봐야 할 시간

 

 

 

 

여섯줄의 시                                            

 

너의 눈에 나의 눈을 묻고

너의 입술에 나의 입술을 묻고

너의 얼굴에 나의 얼굴을 묻고

말하렴, 오랫동안 망설여왔던 말을

말하렴, 네 숨 속에 숨은 진실을

말하렴, 침묵의 언어로 말하렴

 

 

 

 

지상에서 잠시 류시화라고 불리웠던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올리고

별들이 가득 내린 강을 건너다가

그만 별에 발을 찔렸습니다

지금은 집에 돌아와

그 옛날 내가 떠나온 별에게

긴 편지를 씁니다 어떤 영혼은

별에서 왔다는

별에서 와서 고독하다는

그 말을 내 집 지붕에 얹어둡니다

이 짧은 지상의 삶과는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나는 잊지 않았습니다

내가 띄운 편지가 그 별에 가 닿았는지

내 집 지붕 위에서 별 하나가 흔들립니다

 


 

 

생활(生活)                                       

-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당시는 '안재찬'이라는 본명으로 응모하여 입상하였다)


窓을 닦다 보면
마치 세상의 한 끝을 닦는 것 같다.
어둠의 門을 열고
맨 처음 세상으로 나온 아이의
맑은 눈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아침은 소리없이 움직임만으로 와서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힘
四方에서 입술을 부비며 스며든다.
손바닥 위에 놓인 生의 조각들을 쪼아먹는
소망의 뜰에 내린 새 몇마리
앉아있다 날아간 자리
버리고 남은,
버릴 수 없이 슬픈 이야기들은 모두
지난 밤의 꿈으로 문질러두고
지금 窓을 닦고 있는 내 손길 아래
세상의 어느 한 곳이 닦여지고 있다.


톱밥처럼 흩어지는 日常의 책장들
良識은 굳은어깨뼈처럼 튼튼하지 못하고
길모퉁이에 잠복해 있는
먼지의 덫, 보이지 않는 손들의 굴레
一部分씩 닦여져 나간다.
빈 접시에 채우는 하루분의 양심과
빵 하나의 自由로 시작되는
이 아침, 햇빛은 하늘의 층계를 걸어내려와
無垢한 눈망울을 가진
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어디로 어디로 데려가는가.


아침의 門을 열고
맨 처음 밖으로 나온 아이의 두 눈
窓을 닦다 보면
마치 세상의 어느 한 끝을 닦는 것 같다.

 

 

 

 

 

비밀

 

비의 서를 나는 읽었네
글자 없이 종이 없이 씌어진
그 책을 나는 읽었다.

저 티벳 성자들의 낯선 세계 속으로
나는 가 보았다.

흰구름의 길을 헤치고
밀라레빠와 대머리 독수리들의 대화 속으로
그리고 절대의 음악을
나는 들었다.

연주하는 이도 없이 악기도 없이 울려 퍼지는
신비 시인 파비르의 시에 나는 취했다.
나는 술을 마실 줄 모르지만
그가 주는 술은 마실 수 있다.

술잔도 없이 건네주는 그 술을
입 대지도 않고 나는 마신다.

이 술취한 자의 말을 들으라

삶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다만 덧없는 시간의 화살 속에서
그 화살 쏘는 자를
나는 본다..



 

 

 

 

 





나는 여행이 좋았다.
삶이 좋았다.
여행 도중에 만나는 기차와 별과 모래 사막이 좋았다.
생은 어디에나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켜놓은
불빛이 보기 좋았다.
내 정신은 여행길위에서 망고열매처럼 익어갔다.

문맹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젊은 사두에게 더 늦기 전에 글을 배울
것을 강조하자, 그는 내게 들으라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글을 모르는 것보다 더심각한 것은 영적인 문맹이 되는 일이다.
세상에는 많은 학식을 자랑하지만 영적으로 문맹인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나무
노천 찻집에 앉아 있는데, 늙은 사두가 작은 북을 두들기며 노래를 불렀다.
\'벗이여, 내가 한가지 노래를 불러 주겠네.

인생에선 나무가 가장 중요하다네.
아이가 태여나면 엄마는 나무로 만든 요람에 아리를 눞히고 흔들어주네.
좀더 자라면 아이는 나무로 만든 장난감을 갖고 놀지.
학교에 들어가서는 나무로 만든 연필로, 나무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네.
공부를 게을리하면 선생이 나무 회초리로 혼을내지.
결혼해서 집을 지으려면 나무가 있어야 하고
명상이 필요하면 나무 아래 앉아야 하네.
그리고 늙어서는 나무 지팡이에 의지하고
결국에는 두 개의 대나무 막대기에 얹혀 화장터로 간다네.
벗이여, 그대는 지금 나무의 어느 단계에 와있는가.\'

신의안내
다음 행선지로 가기 위해 푸쉬카프의 노천 찻집에 앉아 여행가이드북을
뒤적이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두가 말했다.
\"힌두스탄을 여행하면서 그까짓 안내 책자에 의지하지 말라.
신으로 하여금 그대의 여행을 인도하게 하라.\"

어디서 왔는가
\"당신은 어디서 왔습니까?\"
내가 묻자, 남인도 케랄라에서 만난 사두가 말했다.
\"난 아무 데서도 안 왔소. 난 언제나 여기서 있었소. 그리고
난 아무 데로도 가지 않을 것이오.\"
그 말이 듣기 좋았다. 언제나 여기에 있었따는....., 늘 여기 저기
떠돌아다니는 나 같은 여행자에게 그것은 잠언과도 같은 말이었다.



인생 수업
\"내가 잊지 않아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북인도 심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내가 묻자, 히말라야 산중의
강고트리로 가는 중인 고행승 사두가 말했다.
\"우리 모두는 인생 수업을 받으러 온 학생들이라는 사실이지.
그것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하네.\"

 
 
 
 
 


류시화(본명 안재찬)                                                                               

1957년 출생, 경희대학교 국문과 졸업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분 당선
1980~1982년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
 
 
■ 작가 이야기 

 


 

대중을 흡입하는 몽상적 분위기.
80년대 대표적 동인 가운데 하나인 '시운동'의 일원으로 활동하던 안재찬은 80년대 중반 이후 <성자가 된 청소부> 등을 번역,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려놓으면서 돌연 번역가로 진로를 바꿔 적극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의 '류시화'란 필명으로 거듭난다. 그러던 그가 다시 시인의 길로 되돌아 온 때는 1991년,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의 출간과 더불어 많은 독자들로부터 선풍적인 사랑을 받는다. 번역을 통해 확보된 독자층을 시집으로 고스란히 이민을 오게 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그의 시가 이토록 강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그의 시가 갖는 몽상적인 분위기를 손꼽을 수 있을 터이다. 80년대 지나치게 경직되고 획일화되었던 민중 의식에 질식한 '포스트 키드' 세대들의 감수성, 즉 현실적 리얼리즘의 강박감에 거세당한 비현실적 ·초현실적 꿈과 환상의 성감대를 그의 시적 촉수가 적절히 자극하고 어루만져 주었던 셈이다. 내 밖에 있는 타자와의 관계가 아니라, 내 안의 나, 그 신비스러운 존재의 심연을 연가(戀歌)풍의 세련된 언어 조탁을 통해 육박해 들어갔던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이여/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이런 그에게 꿈이 현실보다 더 윗자리를 차지하?있음은 물론이다.

그는 삶의 현장인 육지로부터 소외된 섬을 꿈과 연관시켜 다음처럼 노래한다. "잠들면서 꿈을 꾸었고/꿈 속에서 다시 잠이 들었다 또 꿈꾸었다/꿈 속의 꿈 그리고 그 안의 더 많은 잠 더 많은/꿈들"('섬'). 이러한 시풍은 시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으로 가면서 더욱 돋을새김 된다. 고독과 우수, 낭만과 동경, 꿈과 사랑, 슬픔과 눈물, 신비주의와 명상주의의 축축한 분위기가 시집 전체에 흥건하다. 또한 그의 시는 종종 마술적 상상력 쪽으로도 가파르게 경사진다. "나는 보았다/그때 어떤 인도인 마술사가 내게 다가와/타고 남은 재 한 줌을 집어들어/순식간에 나비로 바꿔 버리는 것을/나는 보았다"('강으로 죽으러 오는 사람들을 나는 보았다'). 시의 '안개 지수'가 높아진 것이리라.

그러나 이 대목에서 이문재 ·박덕규 시인 등과 함께 힘겹게 일궈 왔던 '시운동' 시절, 그 시적 초발심이 그리워지는 연유는 무엇일까? 재가 나비로 둔갑하는 몽환적인 찰나보다는 재로 산화할 수밖에 없었던 그 '뜨거운 희생'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치열하게 탐색했던 '안재찬' 시인의 명민한 형안이 다시 보고 싶어진다. 몽매의 벽 안에 갇힌 문학이란 얼마나 왜소한가. (류신/문학평론가)

 

■ 대표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푸른숲  

               『지구별 여행자』 | 김영사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 열림원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 열림원 

 

 

 

 

 

http://www.shivaryu.co.kr/

(류시화 시인 공식 홈페이지)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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