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실명(陋室銘)
누추한 집에 부쳐
유우석(劉禹錫)
山不在高 有仙則名(산불재고 유선즉명)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있으면 이름난 산이요.
水不在深 有龍則靈(수불재심 유용즉영)
물이 깊지 않아도 용이 있으면 신령한 물이라지.
斯是陋室 惟吾德馨(사시누실 유오덕형)
이곳은 비록 누추한 집이나 오직 나의 덕으로도 향기가 난다네.
苔痕上階綠 草色入簾靑 (태흔상계록 초색입렴청)
이끼 낀 계단은 푸르고 풀빛은 발을 통해 더욱 파랗고
談笑有鴻儒 往來無白丁(담소유홍유 왕래무백정)
담소하는 선비가 있을 뿐 왕래하는 백성은 없도다.
可以調素琴 閱金經(가이조소금 열금경)
거문고를 타고 불경 뒤적이며
無絲竹之亂耳 無案牘之勞形(무사죽지난이 무안독지노형)
음악은 귀를 어지럽히지 않고 관청의 서류로 몸을 수고롭게 하지 않아
南陽諸葛廬 西蜀子雲亭(남양제갈려 서촉자운정)
남양 제갈량의 초가집이나 서촉 양자운의 정자와 같으니
孔子云 何陋之有(공자운 하루지유)
공자께서도 "(군자가 거처함에)무슨 누추함이 있으리오." 라고 하셨다.
유우석(772~842): 중당(中唐)시 유명한 시인으로 자는 몽득(夢得)이고 낙양(洛陽: 지금의 河南省 洛陽)사람이다. 정원 9년(貞元 9년(793년))에 당송 8대가의 중 한사람인 유종원(柳宗元)과 함께 진시시에 합격하고 유종원과 대단히 절친한 사이를 유지하였고, 왕숙문(王叔文),유종원(柳宗元)등과 동당(同黨)하여 개혁운동에 참여, 신진 실세로 군림하다 구세력(환관세력)에 밀려 1년도 못돼 개혁운동은 좌절되고(806년 원화 원년), 주축 이였던 왕숙문은 죽임을 당하고 시인을 위시한 유종원등은 지방 하급 관리 사마(司馬)로 좌천 되였다 후에 풀려난 적이 있었고, 유종원 사후(819년)에는 백거이(白居易)와 친밀히 지내며 시작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특히 시인의 시는 그 풍격이 통속적이지만 청신하여 민요풍의 정조와 언어를 잘 이용한 시인으로 손꼽는다. 작품집으로 (劉夢得文集)이 있다.
주1)홍유: 학식이 높은 이름난 유학자를 말한다.
2)백정: 당시에는 일반 백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3)소금: 아무런 장식이 없는 소박한 거문고.
4)금경: 불교의 대승경전 중하나인 금광명경(金光明經)을 말한다.
5)사죽: 관현(管絃)악을 말하며 일반적으로 음악을 일컫는 말이다.
6)안독: 관청의 문서를 말한다.
7)제갈량: 삼국지의 바로 그 유명한 촉 유비의 책사 제갈공명을 말한다.
8)양자운: 전한 시대의 학자이자 문장가인 양웅(揚雄: BC 53~AD 18)을 말한다.
9)하루지유: 논어 자한편 제13장에 ‘공자께서 구이(九夷)에 살려고 하시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누추한 곳이니 어떻게 하시려고 하십니까?”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들이 살고 있으니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
(子欲居九夷 或曰陋 如之何 子曰君子居之 何陋之有)하였다.’
바로 이 구절을 인용하였다.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있으면 이름난 산이요.
물이 깊지 않아도 용이 있으면 신령한 물이라지.
이곳은 비록 누추한 집이나 오직 나의 덕으로도 향기가 난다네.” 로 시작하여
“공자께서도 "(군자가 거처함에)무슨 누추함이 있으리오." 라고 하셨다.” 로
끝을 맺는 몽득 유우석의 이 시!
참으로 대단한 기개의 선비인 시인의 자긍심과 자부심이
한껏 묻어 나오는 시구이다
이는 공자께서 수제자 안회를 대단히 칭찬한 논어 옹야편 제9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질도다. 안회여!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마실 것으로 누추한 곳에 있는 것을 남들은 그 근심을 견뎌내지 못하지만 안회는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아니하니 어질도다. 안회여!”
(子曰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라고
말한 경지를 자신은 이미 뛰어넘어 공자님 수준에 다다른 자신이라고 자못
그 기개가 넘치는 듯도 한 시인의 자긍심 가득한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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