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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버지의 눈물

서까래 2010. 1. 20. 21:31

 
                   아버지의 눈물                                     산돌배 조성구
                       날씨가 제법 추워졌다.
                       두툼한 옷, 목 움츠린 행인들의 모습에서 세모가 점점 다가옴을 본다
                       겨울 석양은 다른 계절과 또 다른 풍경이다.
                       해가 엇 뉘이면 유독 석양이 붉다. 
                       해가 붉은 이유를 사람들은 마다 아름답게도 서글프게도 표현들이 각양이다.
                       기실은 대기중 먼지 농도가 짙을때 가시광이 두터워 그렇다 던가.
                       운전을 많이 하는 그런 날, 얼굴을 만져보면 푸석 까끌하니 먼지라는 말이 맞지 싶다.
                       하여, 모처럼 목욕탕을 찾는다.
                       요즘 목욕탕 가보면, 시설이 예삿일 아니다. 각종 편의시설, 먹거리, 이 미용, 맛사지, 
                       피씨시설, 심지어 간단히 공연 프로그램까지 곁들이니 말이 목욕탕이지 
                       휴식처라 해야 걸 맞다.  
                       대충 준비하여 탕엘 들어간다.
                       사람들 목물하는 듬성듬성 까르르 소리가 공명타고 부자지간 도손한 모습이 정겹다.
                       제법 살 통통 오른 아들과 대견한 듯 
                       조심조심 아들의 등을 밀어주는 광경에 자믓 작고하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막내인 돌배는 아버지와 나이 격차가 많아 아버지의 벗은 모습이라곤 
                       한 여름 들 일 끝내고 목물하던 모습 몇 번이 모두 였다. 
                       그렇다고 지금과 달리 부자지간이 다감하여 아버지가 내게 목물 해 주던 기억도 없다.
                       먼저 간 맏형과의 나이도 엄청나서 겨우 윗형과 엎치락 뒤치락하던 내 유년기 시절.
                       갯가에 헤엄치러 가도,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기 보다 엉아 친구들과 더 잘 어울렸다.
                       아버지는 내 성격과는 판이하여 모든게 좋고 좋다는 유한 형이었다.
                       그러니 친구도 많아 아버지 함자를 부르면 딱이 큰 면 소재지는 아니었으나 
                       나이 어지간 드신 분이라면 거개 다 알고 있었다. 
                       약주를 좋아해, 늘 거나한 모습이면 세상 걱정거리란 아버지에겐 있을 수 없었다.
                       가세가 기울었어도 걱정하시는 모습을 통 볼 수가 없었다.
                       많지는 않지만 당신이 만들어 놓은 땅떵이  스스로 팔아 다 소진하고야 돌배를 찾았다.
                       장형, 둘째, 셋째 다 있으나 어머니가 막내하고 살기를 고집하니 어쩔 수 있으랴.
                       천운이 내린 것인지, 두 분 아흔 다섯에 돌아가시기 까지 모신걸 보면 
                       아내의 천성은 말대로 하늘이 내린 복이었지 생각 든다. 
                       돌배 신혼 접방살이 시절, 아랫묵은 어머니 윗 목이 신방이었으니... 
                       이제와 생각하면 아내에게 천 만 번 절해도 당연해야 하는데, 
                       어찌 돌배 심성이 마가 끼었는지 
                       시시때때 노인들에게 조금이라도 섭한 모습이 보일량이면 가차없는 소릴 쏘아 댔으니...
                       아내 왈,
                       시부모 한 삼십년 모시다 보면, 외려 몇 일 자리 비우신 것이 그리 커 보일 수가 없다란다.
                       언제인가  집안 소사로 서울 셋째 형집에 몇 일 기거 하시게 되었다.
                       한 칠일 계시고는 어찌 불편했던지 다녀 오셔선 이내,
                       아이구 이제 살겠구나 하고 토하셨으니 막내 며느리가 편케 해드린 것 만은 틀림없나 보다.
                       그리고 또 집안 일로 온 형수가 바람도 좀 쐬일겸, 구경도 시켜 드릴겸 모시고 가겠단다. 
                       따라 나설때는 어린아이 소풍 가는것 마냥 즐거워 하시더니 이틑날 부터 괜한 전화다.
                       애비는 출근 했냐, 애들은 학교 갔냐, 장독 뚜껑은 잘 닫았냐, 시시 콜콜...
                       아내도 한 이틀은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민족인 양, 친구도 만나고 저쩌고 하더니 
                       나흘째인지 닷새째 쯤 일까? 저녁 이슥한 시간 내게 말 건넨다.
                       - 이 봐유, 아무래도 안되것슈.
                       - 뭘?
                       - 아무래도 내가 가서 엄니 모셔와야 되것슈.
                       - 엥? 왜?
                       - 허전해서 못살것슈.
                       - 왜애? 시어머니때매 허구 싶은거 못한다며?
                       아, 그러더니 그 길로 서울로 횡가서 엄니를 야밤에 택시 타고설랑 되 모시고 왔다. 
                       말은 핀잔조로 했지만 속으론 그리 고마울 수가 없었다. 물론 형수야 며칠 더 ... 어쩌고 ... 
                       반가와 하는 생색이 영력했음이다.
                       그리고 한편, 시골집 홀로 야금야금 가산을 드시던 아버지가 덜컥 병이 나셨다. 
                       별 수있나. 아무리 놀기 좋아 하시기로  삼시를 마누라가 해주지 않는 쉬원찮은 조반,  
                       쇠약해 질 수 뿐이. 내처 그 밤 고향길로 내려가 모시고 왔다.
                       소변에 조금이라도 이상있어 핏기가 보이면 아내는 열 일 제치고 병원을 찾았고, 
                       때마다 의사는 약주 좀 줄이라 채근하면서도 저 연세에 저리 건강하신 분은 
                       첨이란 소릴 멈추지 않았다. 간, 폐, 위 십이지장이 이십년 젊다고. 
                       그때마다 노인은 노익장 과시란 듯 외출과 약주는 그칠줄 몰랐다.
                       아버지의 약주 습관은 아주 일정했다. 
                       지금껏 술 드시고 큰 소리 나거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
                       약주가 든 날이면 세상은 모두 아버지 것으로 태평성대 구성진 타령, 창을 부르셨다.
                       돌배 나이 제법 지긋 들어 
                       사업도 기획하고 어쩌고 하려니 언감 아버지의 가산 탕진이 미워 질 때가 있었다
                       딱이 뭐라 하진 않았지만, 약주 거나 하시면 나 없을 때 몇 번 그말을 하시더라나.
                       - 나 말이다 아가, 아들 저 돌배 보다, 우리 막내 며느리가 더 좋아...
                       차암 나. 아들 없으면 며느리는 어디서 굴러 왔나? 하늘에서 떨어졌나.
                       암튼 돌아가시기 까지, 문 밖 나설때면 한 번도 어긴적 없다. 
                       양복이면 양복. 한복이면 한복.날 줄 서도록 다림질하여 출입하게 하였고, 
                       그 손질 어렵다는 한복 매무새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쨋거나 아버지는 장자에게 머물지 못하고 막내인 내게 얹히시게 된 자격지심인지 
                       돌배를 꽤 어려워(?) 했다.
                       출근하는 모습 보면, 이제 가냐? 퇴근하여 오면, 왔냐? 가 모두였다.
                       역시 어머닌 여자인지라 내가 숫가락 놓을때까지 지켜 보시는게 일상이고 
                       출근 할 때는 아들이 안보일 때까지 창에 매여 있었다. 손도 흔들고.
                       어느 해 인가.
                       지금 쯤 처럼 추위가 막 시작 되었을 때 인지 가을인지.
                       뒤 늦은 시간 얼근하여 퇴근하여 보니 아버지가 집안에서 안 뵈인다.
                       - 아버지는?
                       - 글쎄 늦도록 아버님이 안 오시네유, 동네 예 저기 찾아도 안 뵈이시고...
                       - 경로당도 가 봤어?
                       - 다 가 봤쥬.
                       대충 옷갈아 입고 부리나케 동리 이곳저곳 가실만 한 곳을 헤메도 찾을 수가 없다. 
                       겁이 덜컥 났다.
                       약주하시고 오시다 차에? 그래서 무연고인으로 어느 영안실? 에이 그럴리 없어.
                       집에 와설랑 파출소에 신고하고... 큰 병원 영안실 여기 저기도 연락해 보고
                       입이 마르고 눈이 캄캄해졌다. 원 세상 이 노인이 대체 어딜 가셨담?
                       다시 마지막으로 건너동네 공원 쪽을 향했다.
                       두런저런 소리가 들린다. 혹?
                       아이구 맙소사. 거기서 웬 중노년 사람들과 거나하여 화투 패를 잡고 계신 거다.
                       앞 자락엔 천원 짜리 몇 장이 바람에 너풀대고... 
                       - 아부지잇!!
                       - 엉? 너왔냐? 왜?
                       - 지금이 몇시인데 그러고 계셔유, 야?
                       - 허! 그렇게 됐나아?
                      아쉬움 영력한 분을 막 된 말로 어떻게 모셔왔는지 울그락 푸르락 했음이다.
                      얼마 후에 들은 얘기로 내가 노인에게 아주 서운 한 말을 했던 모양이다.
                      어린애가 다 된 연세 되고서도 그 얘길 몇 번 하시더라니...
                      세월이 많이 흐르고 
                      아흔 다섯 당신 생신을 달포 앞두고 그만 누우셨다.
                      아들 손잡는 부축임도 당신은 아직 건재함을 스스로 믿으려 뿌리치셨던 분이 
                      바깥 출입을 못하게 된다. 
                      천성이 어린아이처럼 집안에 평생을 머물지 못했던 아버지.
                      방 바닥에 등 댄지 보름만에 눈을 감게되셨는데, 돌아 가시기 이틀전인가 보다.
                      마지막 종부성사차 들린 신부님,
                      따로 불러 이른다. 
                      세상 뜨기전 아버지께 서운해 하셨던 것들 정리하여 화해 하라고 -
                      눈을 감고 누워 계신 아버지의 바짝 마른 손을 쥐었다.
                      혼을 놓지 않으셨는지 내 손을 미력하나마 꼭 잡는다. 아니 잡혔는지도.
                      - 아부지이 
                         ....................
                      - 아부지이 - 제 말 들려유우?
                         .........................
                      - 아부지이 저 많이 미웠지유우?
                        ..................
                      - 아부지이, 저번에 공원에서어 아부지한테 화냈덩거어 지가 잘못했어유...
                      - 수-우울 - 술 잡숫능거어, 매일 잡숫는다고 술 감춘거 아부지 잘못했어유...
                      - 아부지이 용서해 주세유. 아부지...
                      끝내 남은 말 다 못하고 나도 감당키 어려운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곁의 아내도, 신부님도 눈물을 훔치고 었었다.
                      아, 그때까지 미동도 않던 아버지의 손에서 힘이 느껴졌다. 
                      그리고 아버지의 눈에서, 아버지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지 않던가 -
                       .
                       .
                       .
                       .
                      그리고 이틀밤 곁 새워 지키던 내가 잠시 안방에서 눈 붙인 사이 
                      그만 아버지는 눈은 영영 뜨지 못하셨다. 
                      삼십분이란 시간이 그리 짧을 줄은 미쳐 몰랐다.
                      임종을 못지킨 영원한 불효가 되고 말았다.
                      영면하고 얼마간 곡하지 말라던 신부님의 당부도 뒷전으로 밀려났다.
                      아직은 따듯한 이마, 
                      굳어가는 손을 부여잡고 동리가 떠나도록 울고 울었다..
                       .
                       .
                       .
                      지금,
                      목욕탕의 저 어린 아들과 아직은 젊은 아버지의 등밀이 모습을 보며,
                      오늘 왜 아버지 생각이 나는지 - !
                       .
                       .
                       .
                      밤이 깊다.

                      2009.12.06 밤에
 
출처 : 시인의 파라다이스
글쓴이 : 산돌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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