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정호승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빗자루로 쓸어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면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
서울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렸다지.
어쩐지 어둡다했더니
밖으로 나서려니 비가 내리고 있다.
늦은 시각이지만 산책이라도 하고 출근하려했더니
그마저도 날씨가 허락지 않는다.
비대신 눈이었다면
아마도 강아지처럼 눈밭을 뛰어다니진 않더라도
한참동안 눈을 맞으며 산책을 즐겼을 것이다.
모시고 사는 마님을 가게까지 모셔다 드리고
삼실에 왔는데
창밖의 빗소리 때문인지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너 같아도 일손이 잡히겠냐?”
컴퓨터를 켜고 유튜브로 들어가 음악부터 켠다.
커피 한잔을 마시며 듣는 음악소리에 괜시리
가슴 한켠이 시려오는 듯하다.
“라 라라라 라라라~~~~~”
괜한 감성에 젖어 냉장고에서
소주 한잔을 따라와 입술을 축여본다.
눈이 내리건
비가 내리건
무슨 상관이랴.
하지만 사무실에 쓸쓸히 홀로 앉아 바라보는
가을비에 젖은 앙상한 나무와
적막을 깨는 음악소리,
그리고 입술에서 목젖을 타고 흘러내리는
달콤하면서 씁쓸한 이슬 한 방울...
우산을 쓰고라도 잠시 산책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켜야할 모양이다.
어딘가에는 눈이 내리고
또 어딘가에는 비가 내리는 주말,
부디 행복하시길...
나나무스쿠리의 “La dame de coeur”
아다모의 “눈이 내리네”
이정석의 “첫눈이 온다구요”
“아뇨, 광주에는 눈이 안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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