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여행의 시작

기쁨은 사물 안에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다!

金剛山도 息後景 - 풀잎처럼 눕자

읽어보아요/느낌있는 글

'박대용' 봅 데 용의 스포츠맨십, 이승훈의 금만큼 빛났다 (펌글)

서까래 2010. 2. 28. 15:55
 
스포츠에는 모든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경기에서 이기면 기뻐하고 그간의 고생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때로는 패배에 슬퍼하고 아쉬워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경기에서는 그렇게 적과 같이 승부욕이 발동해도 승부의 세계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눈 녹듯 사라져 선수들끼리, 또 코칭스태프끼리 친구가 되는 장면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정정당당히 승부를 펼치고 바깥에서는 '뒤끝없이' 승리와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 그것이 바로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도 이같은 장면들이 수차례 나타났는데요. 특히, 24일 오전(한국시각)에 우리 선수단에 귀중한 금메달을 안겨준 이승훈(한국체대)이 출전한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1만m에서도 '스포츠 정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가슴뭉클한 장면이 나와 지켜본 사람들을 흐뭇하게 했습니다. 바로 이 종목에서 동메달을 따냈던 봅 데 용(네덜란드)이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이승훈을 들어 올린 스콥레프와 봅 데 용 (사진-Picapp)

 

대회 개막 둘째날에 열린 남자 5000m에서 이승훈과 맞대결을 펼쳐 우리 팬들에게 조금은 익숙해져 있던 봅 데 용. 그는 1만m 부문에서 이미 2개의 올림픽 메달을 갖고 있던 '베테랑 중의 베테랑' 선수입니다. 특히, 지난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는 금메달을 따내 이 부문 최강자로 오르기도 했고, 세계선수권에서도 4차례나 우승 기록이 있는 등 장거리 분야에서 꽤 이름이 있는 선수 가운데 한 명입니다. 그랬던 그가 이번 올림픽에서 국내팬들에게 주목받은 것은 그가 보여준 '뛰어난 스포츠맨십' 때문이었습니다.

 

이반 스콥레프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봅 데 용.

그 덕에 위와 같은 세레모니가 펼쳐졌다. (TV 화면 캡쳐)

 

3위로 시상대에 오른 봅 데 용은 1위를 차지한 이승훈까지 시상대에 오른 뒤 기념 촬영을 하는 과정에서 2위를 차지한 이반 스콥레프(러시아)에게 갑자기 말을 건넸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두 선수는 가운데에 있던 이승훈을 자신들의 어깨 위로 무등을 태우듯 번쩍 들어올리는 '훈훈한 세레모니'를 보였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1위를 차지한 이승훈 못지 않게 봅 데 용이나 스콥레프 모두 너무 자랑스럽다는 듯 한 미소를 보였다는 점입니다. 1위만큼 아름다운 2,3위로 깊은 인상을 남긴 데에는 봅 데 용이 제안한 세레모니가 아니었으면 크게 돋보이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봅 데 용은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도 깨끗하게 이승훈의 1위를 인정하며 새로운 챔피언의 탄생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인터뷰에서 봅 데 용은 "이승훈은 쇼트트랙에서 전향해 10,000m를 제대로 훈련하지 못했고 나는 18년이나 10,000m를 해왔다. 이승훈 같은 새 챔피언의 탄생은 굉장한 일이다."면서 쇼트트랙에서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계챔피언에 오른 이승훈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리며, 깨끗하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몇몇 선수들이 경기 결과에 불복해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인 것과는 '극과 극'의 인상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경기 레이스를 펼치면서도 봅 데 용은 꽤 눈에 띄었습니다. 34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스피드 스케이팅 장거리 종목에 출전한 봅 데 용은 중반에 체력이 떨어져 극한 상황에 치달은 가운데서도 막판에 이를 악물고 잇따라 기록을 단축시키며 이승훈 다음으로 중간 순위 2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1위 기록에 미치지 못해 일찌감치 경기를 포기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봅 데 용은 자신에게 마지막이 될 지 모르는 올림픽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각오로 끝까지 선전을 펼쳤고, 그 결실로 자신의 통산 세번째 올림픽 메달을 따내는 결과까지 내면서 진정한 스포츠 정신, 올림픽 정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줬습니다.

 

봅 데 용의 멋진 스포츠맨십을 지켜보며, 많은 사람들은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유도 경기에서 최민호의 맞상대였던 '훈남' 루드비히 파이셔(오스트리아)가 생각났을 것입니다. 당시 파이셔는 유도 60kg급 결승에서 최민호에 한판패를 당했음에도 깨끗하게 이를 인정한 모습으로 국내에서 '아름다운 2위'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간의 고생에 눈물을 흘리던 최민호에게 다가가 포옹하며 진심어린 축하를 건네고, 최민호의 손을 번쩍 들어올려 그가 '승리자'임을 재확인시킨 파이셔의 스포츠맨십은 챔피언에 대한 존중과 경의가 진심으로 묻어나 있었습니다. 그렇게 베이징올림픽에서 파이셔가 있었다면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는 봅 데 용이 그 바통을 이어가는 듯 보였습니다.

 

'봅 데 용'을 다소 빨리 발음하면 '박대용'이라는 이름처럼 들려서 헷갈렸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요. 그 때문에 탄생한 '박대용' 봅 데 용은 국내팬들 사이에서 한동안 큰 인기를 모을 것 같습니다. 이승훈의 금메달처럼 3위에 오른 것만으로도 크게 감사해하고 기뻐하며 '1등 지상주의'에 물들어있던 사람들에게 스포츠 정신이 무엇인지를 진심으로 일깨워준 '또 한 명의 진정한 승리자' 봅 데 용의 모습을 우리는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해야 할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Speed Skating

                            동메달을 목에 건 뒤 크게 기뻐하는 봅 데 용 (사진-Picapp)

출처: 김지한의 Sports Fever

김지한의 Sports F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