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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더디게 봄이 오는 강원도 홍천 산속 마을. 내공 있게 봄을 기다리는 그녀가 말한다. 행복, 별것 아니라고. 긴 계절의 끝자락, 햇볕 한 올의 온기에서 사는 재미를 느끼는 행복한 사람. 자연과 호흡하며 삶을 느리게 여행하는 최병랑씨의 시골살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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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흙집은 전통과 모던, 코리언과 재패니즈, 유러피언 스타일이 절묘하게 믹스매치되어 시골집이라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시크하다. 가족들이 사는 미국과 싱가포르, 페이버릿 여행지인 일본과 발리의 주거 양식과 문화에서 좋아하고 편리하다고 느낀 것들을 그녀 삶의 뿌리인 한국적인 것과 접목한 것이다. 서까래 천장과 대들보로 한옥 느낌을 살린 공간은 아파트로 치면 오픈형 주방과 연결된 거실 같은 역할을 한다. 다도 마니아인 그녀는 응접 테이블 대신 차를 마실 수 있는 다실로 꾸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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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그녀는 이곳 홍천에 터를 잡았다. 프랑스에서 건축가로 활동하던 동생 부부가 한국에 돌아와 먼저 귀촌해 사는 집 옆에 아담한 흙집 한 채를 지으며 시골 생활이 시작되었다. 작지만 깊은 흙집은 북적거리고 흐느적거리는 서울 생활을 보듬어줄 휴식 같은 공간으로 그녀와 6년을 함께했다. 서울 생활을 병행하며 홍천을 오가던 최병랑씨는 지난해 모든 살림을 이곳으로 옮기고 시골 살림의 새로운 시즌을 맞았다. 그녀에게 새로운 시즌이란, 지금부터 평생을 함께할 시간을 의미했기에 조금 남다른 준비를 해야 했다. 게스트처럼 지내는 집 말고 ‘내 집’이라 여길 수 있는 진짜 나의 공간을 만들기로 하고, 먼저 지은 흙집 옆에 있던 폐가를 살림집으로 개조하는 공사에 들어갔다. 마감재 하나부터 벽과 바닥에 흙을 바르고 옻칠로 색을 입히는 것까지 꼼꼼하게 해낸 공사는 지난해 봄 시작해서 겨울이 되어서야 마무리될 정도로 길고 고된 작업이었다. 새집을 준비하면서 마당 한편 자투리땅에 9.91㎡(3평)씩 두 개 층이 있는 자그마한 다실도 마련했다. 그녀는 디자이너도 아니고, 비슷한 분야에서 일을 한 적도 없지만 설계부터 시공까지 모든 작업을 손수 해냈다. 주관이 뚜렷한 라이프스타일과 함께, 이 작고 스타일리시한 시골집이 더욱 흥미로워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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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삶에 단면이란 것이 있어 잘라서 본다면 지금은 깊고 잔잔하며 부드러운 곡선의 나이테가 생기는 시간. 시골 살림은 그녀에게 안정과 편안함을 주었다. 자연스럽게 책이 손에 잡히고, 수신 상태가 좋지 않아 지지직거리는 아날로그 소리를 즐기며 라디오를 듣고, 필요한 물건은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자연의 속도로 느리게 산 지 1년여째, 외로움은 고요함이 되고 적막함은 편안함이 되어 자유로움을 온전히 느끼고 있는 중이다. 2 다실과 키친이 연결되어 있는 메인 부실. 휴양지 리조트 스타일로 마련한 배스 룸이 공간에 재미를 준다. 3 집 안 가장 안쪽, 삼각형 모양의 작은 공간에 마련한 침실은 어른 손으로 한 뼘이 넘는 높이로 바닥을 돋우고 천장에 서까래를 올려 꾸며 아늑한 느낌을 살렸다. 외부와 연결되는 작은 문은 격자 창호문으로 만들어 전체적으로는 한옥 분위기지만 심플한 펜던트 조명, 재패니즈 스타일의 낮은 나무 침대 등과 어우러져 모던한 느낌이 난다. 흙벽에는 따뜻한 미색 한지를 붙였으며, 바닥은 흙으로 마감하고 찹쌀풀을 먹여 윤기를 냈다. 4 문밖으로 나서면 천지가 꽃이고 나무인 시골 생활. 긴 겨울 동안은 작은 야생초를 돌보며 초록과 함께한다. 곧 연둣빛 어린잎이 터져 나오면 나무와 풀들에는 금세 윤기가 돌 것이다. 이때가 가장 보기 좋은 시기로 시골 생활의 또 다른 재미가 시작된다. 5 벽을 마감하고 남은 흙으로 장식을 만들어 재미를 주었다. 이 집은 메인 조명 없이 간접조명만 사용해 필요한 공간에 선택적으로 켜고 끌 수 있게 했다. 흙으로 재미를 준 공간은 벽등 하나로 갤러리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6 한지를 바른 침실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실은 황토로 벽을 마감했다. 홍천 황토는 불순물이 없고 건강한 성분을 발산하는 양질의 흙으로 유명한데, 거실에는 짚을 섞지 않고 미적으로 매끈하게 표면을 작업하고, 작업실은 짚을 섞어 강도를 높여 다른 질감으로 작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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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흙집 두 채 사이에는 하루 종일 굴뚝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작은 흙집이 있다. 한식 흙집이지만 2층으로 만들어 높다란 외관이 재미있는데, 독채 다실이다. 위, 아래 9.91㎡(3평)씩 사이좋게 나누어진 다실 문을 여니 상쾌한 솔잎 향이 따뜻한 온기와 함께 쏟아진다. 벽과 천장, 바닥에 마감재로 사용한 황토와 나무, 한지가 습도를 조절하고 공기를 정화해 작은 청정지역이나 다름없다. 차를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눈높이로 낸 창이 그림처럼 걸려 있어 정적이며 아늑한 분위기의 공간이다. 세 평 다실이 사치라 느껴지는가. 잠시라도 복잡한 생각과 일을 잊고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어디라도 다실이 될 수 있다. 바쁜 도시 사람들에게 최병랑씨는 5분이든, 10분이든 차를 마셔보라고 권한다. 물을 끓이고 차를 우리며 적당한 온도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찻잔을 정성스레 들고 마시는 동안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마음이 찰랑이며 맑아지는 경험을 하게 될 테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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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당과 뒷산에 있는 소나무에서 꺾어온 솔가지 몇 개는 천연 공기 정화제로, 방향제로, 음식을 놓을 때 데커레이션용으로 다양하게 활용한다. 고마운 자연은 이리도 쓸모가 많다. 지난 가을 계절이 바뀌며 떨어진 잎사귀들과 잔가지 등도 주워와 바구니에 담아두니 공간에 이로운 멋진 소품이 되었다. 2 다실 외관 모습.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더없이 시원한 것이 작지만 속이 꽉찬 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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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과 방송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요리연구가 메이와 최병랑씨가 다정하게 카메라 앞에 섰다. 두 사람은 사이좋은 이모와 조카 사이. 평소 예사롭지 않은 요리연구가 메이의 가족 구성원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자연스레 그녀의 집안이 궁금해졌다. 최병랑씨의 아버지이자 메이의 할아버지는 대한민국 초대 빙상협회장과 진명여고 이사장을 지낸 故 최재은 선생. 조흥은행 창설자의 딸이던 아내와 결혼해 딸 여섯, 아들 하나를 낳아 대가족을 이루었는데 두 사람의 첫째 딸이 최병랑씨이다. 문화와 예술, 스포츠에 조예가 깊던 부모님의 감각과 안목은 고스란히 자녀들에게 전해졌고, 건축과 사진, 요리 등 다양한 방면에서 자리 잡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재주 많은 이 가족들은 화목하기로도 둘째가라면 서러운데, 수시로 이곳에 모여 건강한 집에서 어머니 품처럼 포근한 휴식을 취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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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촬영하는 날 동행한 요리연구가 메이와 최병랑씨. 감각까지 고스란히 닮아 있는 보기 좋은 가족이다. 공간은 살림집의 작업실. 2 구들바닥이 얼마나 난방에 효과적인지는 다실 한편 바닥의 찢어진 한지가 말해준다. 따끈따끈한 아랫목에 앉아 차를 마시고, 책을 읽다 보면 잠이 절로 쏟아진다고. 메밀에 손수 마름하고 자연 재료로 물들인 광목천으로 방석과 베개도 만들어두었다. 다실은 서울에서 가족들이 내려오면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3 화학 성분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천연 마감재와 수작업으로 마친 집 꾸밈, 전기 대신 간접조명으로 사용하는 호롱불 등 친환경적인 생활을 보여주는 다실의 한 공간. 4 평소 생활을 짐작하게 하는 살림살이들. 땔감으로 사용하고 남은 나무를 선반 삼아 주물 받침대로 흙벽에 지지해 설치했다. 손때 묻은 재봉틀, 나무로 만든 항아리, 쓸모 있는 살림살이를 만들 때 꼭 필요한 천과 실 등 다양한 소품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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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급 손맛과 몸에 익은 감각으로 차려낸 근사한 시골 밥상을 보니 주부로만 살아왔다는 그녀의 재주가 새삼 놀랍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타고나는 재능이 있는데 최병랑씨에게는 그것이 안목과 감각인 듯하다. 시골 살림에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 바로 먹을거리이다. 평소에도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또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과 지인들 덕에 평생 즐겁게 해온 일이 결과적으로는 나이 예순이 넘어서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고마운 비결이 되었다. 돈만 있으면 별난 음식도 구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그녀는 건강한 재료들을 자연 숙성시키거나 최소한의 천연 재료만을 넣어 맛을 내어 먹는다. 냉장고에도 이렇게 만든 저장 반찬이 가득하고, 땅에는 김치 등 발효식품들이 건강하게 익어가고 있다. 몸에 이로운 것을 먹되, 소식하고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는 땅에 주어 거름으로 활용해 내 몸은 물론 환경까지 생각한다. 생선도 숯불에 굽고, 조리할 때도 기름을 자주 사용하지 않으니 물만으로도 설거지가 잘 되어 오염을 줄일 수 있다. 비닐이나 플라스틱 대신 직접 만든 질그릇과 나무 소품 등을 활용해 자연스레 녹색 살림을 실천한다. 실천하는 방법은 다르겠지만 누구나 선택할 수 있다. 느리지만 건강한 삶, 고요하지만 평화로운 삶을 누릴 기회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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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메인 요리 없이도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게 만드는 귀한 시골 반찬들. 제철 재료와 말린 오가리들로 만든 저장 반찬, 손수 만든 장류 등은 최병랑씨 밥상의 단골 먹을거리들이다. 2 질그릇, 막사발부터 항아리, 나무까지 모두 그릇의 소재가 된 친환경 살림살이. 3 손맛도 타고난 그녀가 ‘점심 먹자’ 하더니 뚝딱 차려낸 밥상. 비싼 재료는 하나 없고 모두 시골에서 난 것들로 간도 천일염과 된장, 집간장으로만 해서 만들었는데 이렇게 근사하고 푸짐하다. 제철에 갈무리해놨다가 천일염만 살짝 넣어 무친 참나물, 시래기나물과 김장하고 남은 재료로 만든 무청나물. 시장에 나가 한 봉지 구입한 버섯으로 볶음도 하고, 브로콜리와 두부, 미역, 새우를 찹스테이크처럼 만든 쇠고기에 차갑게 버무려 냉채도 만들었다. 손자가 좋아해 가끔 이용하는 돼지고기는 파프리카와 함께 볶았다. 땅속에서 깊은 맛을 우려내며 시원하게 익은 동치미와 김장김치, 이웃들에게 배운 강원도식 무김치 모두 최병랑표 먹을거리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