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봄 기운이 가득한 광화문 거리에 나섰습니다.
오늘은 오랜 친구의 피아노 두오 콘서트가 있는 날입니다.
우선 교보문고에 들러 예전부터 별렀던 한스 홀바인과
알브레히트 뒤러의 카탈로그 레조네를 샀습니다.
이것은 작가의 작품 연대기에 맞추어 전 작품의 정보를 담은 책이지요.
연주회 리허설 시간에 맞추어 서점을 나와
세종문화회관 체임버 홀로 향했습니다. 예전부터 연주 장면 한번 찍고
싶다고 그랬거든요. 친구도 한번 찍어서 담아 달라고 했고요.
연주회장 내 리허설에 몰입한 친구의 모습을 담습니다.
바깥은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퍼레이드로 한껏 시끄럽지만
홀안 적요의 시간 속에서 조용히 피아노에 몰입해 있는 친구의 모습
오른쪽 연청록 드레스를 입은 친구가 제 친구 수진입니다.
제 친구는 독일에서 마이스터 과정을 마쳤고 지금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지요. 인생에서 음대 나온 친구들이
지인으로 있지만, 이 친구를 유독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삶의 대한 태도와 음악에 대한 사랑이 일치하기 때문이고 음악 예술이 가진
치유적인 힘, 그 풍성한 따스함을 몸으로 보여주는 친구이기 때문이죠.
블로그에 한번 썼었을텐데, 예전에 목사님 소개로
신촌에 있는 모 여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분을 만났습니다.
두번째 만남에서 하는 이야기가 "아버지가 음악하는 걸 경제적으로
후원했기 때문에, 저랑 결혼하려면 이제부터 들어가는 돈을 저보고 대라"고 하더군요.
웃으면서 딱 한마디 했습니다. "아....이대시죠? 이대로 집에 가시면 되겠네요"
그 일이 있고난 후, 피아노과 사람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습니다.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의 폭도 있을진대, 그때는 그랬던것 같습니다.
이 친구를 만나고 나서 그 시각이 변해야 했습니다.
요즘 아이들 하는 말로 아주 쿨합니다. 시각장애인 모금 마련하려고
정기연주 할때 부터 반했고 교수가 되기 위해 모든 걸 바치느니
연주자로 성장하고 싶다고 말한 친구는......이 친구가 인생에서 처음입니다.
앞으로도 선한 일에 연주를 많이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친구 수진이는 항상 언니와 함께 연주를 합니다.
두오...연주를 하지요. 두 사람이 함께 하려면, 우선 호흡이 잘 맞아야 할텐데
한번도 두 사람의 호흡이 틀어지는 일이 없는 걸 보면, 사이가 아주 좋은 모양입니다.
솔직히 친구로서.....어떤 남자가 데려갈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건) 그 남자 참 복많이 받은 사람이다란 겁니다.
그러니 얼른얼른 제게 연락 주세요. 33번째 커플을 향하여 고고씽!
오늘은 생상과 라흐마니노프, 요한 슈트라우스, 라벨의 곡을
연주하네요. 그 중에서 가장 기대가 큰 것은 역시
라흐마니노프 모음곡 No.1 Op5 이었습니다.
이곡은 라흐마니노프가 평생의 우상으로 좋아했던
차이코프스키에게 헌정한 곡이기도 하죠. 간결한 4개의 악장.
그가 좋아한 4명의 시인들의 인용문이 곡 머리에 놓여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더구나 이번 러시아 여행가서 라흐마니노프 박물관이랑 미술관에서 본
초상화의 기억도 오버랩이 되었답니다.
콘스탄틴 소모프 <라흐마니노프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연주회 전에 친구가 영시 한편을 보냈습니다.
번역을 해달라고 해서요. 찾아보니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의
제가 그냥 부족하지만 번역으로 옮겼어요.
이 시가 모음곡 두번째를 장식합니다. '밤....사랑'이란 테마입니다.
나뭇가지에서 지빠귀의 높은 울음소리가 들리는 시간
사랑하는 연인들의 속삭임,
그 속에서 익어가는 달콤한 약속
오 고요한 파도소리가 미풍처럼 내 귀에 익숙한
음악이 되어 다가오네......
친구가 얼굴 나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제가 그냥 한컷 찍었어요.
르누아르 <피아노 앞에 있는 소녀들>
1892년,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 미술관, 파리
왼손은 청지기요, 집사요, 시종이요. 가정교사요,
유모요,완벽한 신사이다. 또한 왼손은 배의 선장이요, 심판이요,자선가이다.
오른손은 저돌적이며 변덕스럽고, 조울증적이고, 까다로우며, 자비의 천사이다.
이 둘은 공존하며, 때로는 사이좋게 지낸다.
러셀셔만의 <피아노 이야기> 중 '코다' 부분에서 인용
르누아르의 그림 속 소녀들처럼, 오늘 따라 피아노 앞에 앉은
친구의 모습이 그림 속 주인공을 닮았네요.
코다란 한 악곡이나 악장, 또는 악곡 가운데 큰 단락의 끝맺는 느낌이란 뜻입니다.
종결악구라고 하는데 음악 전체의 마무리및 확장 기능을 갖습니다.
친구의 연주가 인상깊은 건, 4개의 손으로 이루어진 연주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음악이란 선물을 포장해, 추억의 알사탕을 한 줌 쥐어주듯
우리에게 쥐어주는 사탕의 갯수가 4개라고 하면 쉬운 설명이 될까요.
그래서 더 풍성하고 듣고나면 푸근해집니다.
4개의 손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야만
낼수 있는 소리를 만든다는 것. 두오 콘서트의 매력이자
연주의 과정도 협력과 공존의 확장임을 말해줍니다.
두 사람의 연주가 곱습니다.
처음 연주회를 갔을때는 참 파워풀하다고 느꼈는데
이번 연주는 조화롭다고 할까요? 음악에는 대조적인 동기와
리듬과 구성이 다양하지만, 그 공생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건 변주 속에서 조화가
만들어 내는 생의 풍성함이란 결론......오랜 친구의 연주 속에
배우게 되는 작은 지혜입니다.
르누아르 <부비갈에서의 왈츠> 1883년
캔버스에 유채, 보스턴 파인아트 미술관, 매사추세츠
친구가 연주하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입니다. 동영상을 클릭하세요.
르누아르의 그림 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왈츠라도 추고 싶은 날입니다.
이제 한주가 시작되네요. 행복하게 보내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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