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비
겨우내 딱딱하게 굳은 대지의 귓가에
조심스레 내려앉는 하늘의 속삭임입니다.
먼지 묻은 나뭇가지의 어깨를 씻어내고
깊은 잠에 취했던 뿌리를 흔들어 깨우며
투명한 손가락으로 연둣빛 음표를 그려냅니다.
차가운 바람 끝에 묻어온 온기 한 자락이
빗줄기를 타고 마당 구석구석에 스미면
메말랐던 마음의 골짜기마다
어느덧 따스한 그리움이 고여 오릅니다.
지붕 낮은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낙수 소리는
오래전 잊고 지낸 봄날의 약속처럼
토닥토닥 가슴을 두드려 깨우고
적시는 곳마다 꽃눈이 터지는 소리,
세상은 이제 막 한 권의 수채화 화첩을
설레는 마음으로 펼쳐 들고 있습니다.
- 김영훈
봄비가 내립니다.
색시 발걸음처럼 사뿐사뿐 조용히 내려와
메마른 대지를 촉촉히 적셔 잠들어 있는
봄의 정령들을 깨워냅니다.
어제는 자정이 다 되어가는 야심한 밤에
아내 몰래 집을 나와 잠들어 있는 미선이를 만났습니다.
집 앞 공원에 사는 미선이네 집은 가난합니다.
햇빛도 들지 않는 반지하 같은 오두막에서 삽니다.
그래도 예전에는 햇볕도 들고 세력도 괜찮았는데
빌딩 숲에 둘러싸인 단독주택처럼 햇빛도 들지 않는
음지에 있는 데다가 매년 싹둑싹둑 잘라버리는 바람에
꽃을 피울 가지도 없어 매년 가난한 꽃을 피웁니다.
원래 미선나무는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다는데
짠할 정도로 빈약하게 겨우 꽃송이 몇개를 매달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같은 사람이나 한번씩 다가가 아는 척을 하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길 한번 주지 않습니다.
물론 길가에 있어도 눈에 잘 띄지도 않지만요.
개나리꽃을 닮은 봄의 전령들이 있습니다.
봄을 맞이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노란 꽃을 피우는 영춘화(迎春花)와
하얀 꽃을 피우는 미선나무꽃입니다.
두 꽃 모두 개나리보다 훨씬 빠른 이른 봄에 개화를 하고,
개나리꽃은 꽃잎이 네개인데 비해 영춘화는 꽃잎이 대여섯개이며
미선나무 꽃은 색상이 하얗고
개나리꽃에 비해 훨씬 가녀리게 피어납니다.
영춘화의 꽃말은 “희망”,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미선(尾扇)나무 꽃은 열매의 모양이 둥근부채를 닮아서 미선나무라 불렸다하고,
그 꽃말은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 하는데,
우리 집 앞의 미선나무꽃을 보면 괜스레 짠한 생각이 드는 건 무슨 연유일까요?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기에 한밤중에
가로등불에 비친 미선나무꽃을 담아보았습니다.
천사의 날개옷처럼 새하얀 목련이 개화를 시작했더군요.
하늘로 날아오를 듯이 화사하게 피어나
가인박명(佳人薄命)이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려는 듯이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떨어져 내리는
백목련의 꽃말은 “이루지 못한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입니다.
슬프고 애달픈 사랑은 왜 아름답게 느껴지는 걸까요.
이렇듯 봄꽃들이 하나둘 피어나며 봄이 왔습니다.
지금 내리는 봄비는 촉매제가 되고 자양분이 되어
푸르른 봄을 재촉할 겁니다.
봄이 왔음을 알리는 영춘화와 미선나무꽃,
그리고 목련꽃 사진 올려봅니다.
봄비를 맞아 생동하는 대지처럼
밝고 활력이 넘치는 하루 보내시길 빕니다.
(음표) 양희은의 “하얀 목련”
https://youtu.be/7220Gk_Q1Cs?list=RD7220Gk_Q1Cs
(음표) 마야의 “못다핀 꽃 한송이”
https://youtu.be/hYPmEvqSFU0?list=RDhYPmEvqSFU0














'카톡카톡 > 2026 보낸 카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레테의 강 칸 /260320 (0) | 2026.03.20 |
|---|---|
| 꽃은 바람에 흔들리면서 핀다/이근대/무각사의 비에 젖은 봄꽃/260319 (0) | 2026.03.19 |
| 길 위에서의 생각/류시화/광양 매화마을 풍경/260317 (0) | 2026.03.17 |
| 지금 이 순간이 우리의 봄입니다./260316 (0) | 2026.03.16 |
| 이른 봄/톨스토이/ 하얀민들레 등의 봄 풀꽃/260313 (0) | 2026.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