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선사가 입적한 신륵사 일주문
名利禍門(명리화문)부귀공명은 재앙의 시작- 懶翁(나옹)
警世(경세) 사람들아 깨달아라
終世役役走紅塵
종세역역주홍진
白頭焉知老此身
백두언지노차신
名利禍門爲猛火
명리화문위맹화
古今燒盡幾千人
고금소진기천인
이세상 다하도록 분발하며 먼지 속을 살아왔네.
백발로 몸 늙는 줄도 어찌 알겠는가.
부귀공명은 작열하는 재앙을 부르도다.
예부터 수많은 사람이 재앙 속에 타버리지 않았는가.
나옹(懶翁).1320∼1376년. 고려말의 고승. 혜근(彗勤)이라고도 쓴다. 성은 아씨(牙氏). 호는 나옹(懶翁).21세때 공덕산 묘적암에 있는 요연선사(了然禪師)를 찾아가 출가하였다. 원나라로 건너가 법원사(法源寺)에서 머물기도 했고 공민왕의 청에 의해 신광사(神光寺)에 들어가 설법과 참선으로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그 뒤 송광사에 있다가 회암사 주지가 되어 절을 중수하였고 1376년에는 문수회(文殊會)를 열어 크게 법명을 떨쳤다. 그는 정도(正道)가 혼침된 고려말의 불교계에 습정균혜(習定均慧)와 근수(勤修) 지혜로써 성불의 가능성을 보여준 고승으로서 철저한 불이사상(不二)의 토대 위에서 선을 이해시키고자 하였다. 그는 전통적인 간화선(看話禪)의 입장을 취했고 종래의 구산선문(九山禪門)이나 조계종과는 다른 임제의 선풍을 도입하여 침체된 불교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겼다. 그는 고려말 보우(普愚)와 함께 조선시대 불교의 초석을 세운 위대한 고승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왕명으로 밀성 영원사(榮源寺)로 옮긴던 중 5월15일 나이 56세. 법랍 37세로 여주 신륵사(神勒寺)에서 입적했다.
신륵사에 모셔진 보제존자 나옹선사의 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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