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정오경 남해의 독일마을을 향해 차를 몰았다.
독일마을 입구에서 마주친건 사람과 차의 행렬이었다.
이 마을도 사람들 때문에 생활에 지장이 많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독일마을과 원예예술촌을 한바퀴 둘러 보며 아름다운 경관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겼는지 구경을 마치고 나니 6시가 되어간다.
금산 보리암도 구경해야 하는데 시간이 짧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남해처럼 거리도 멀고 볼 것도 많은 곳은
아침 일찍 와야 한다고 했더니, 하룻밤 자고 가면 안 되겠냐고 한다.
준비없이 왔지만, 하룻밤 정도야 못 잘 것도 없잖은가?
집사람은 내일 거제를 가자는데 나는 봉하마을을 가자고 했고 선선히 응한다.
금산으로 가는 길목에 상주해수욕장이 있어 잠시 들러 은모래 해변에 발만 담가보고,
보리암 주차장에 도착하니, 요금소에서 오늘은 너무 늧었으니,
내일아침에 다시 오라는 걸 그냥 오르겠다고 했다.
내일 오르면 최소한 한나절은 잡아먹을 터인데,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
다시 윗 주차장까지 이동하여 1키로 정도를 걸어 보리암에 도착하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지만, 아름다운 경관이며 볼 건 다보고 할 건다 한다.
마지막으로 어둠을 뚫고 태조 이성계가 기도해서 발복했다는 곳을 홀로 다녀오고 나니
거의 한 밤중이다.
하산하여 저녁에 묵을 곳을 찾아 보는 데,
비수기임에도 팬션은 빈방이 없고,
시각이 너무 늧어 숙박할 곳이 많은 상주해수욕장으로 가서 민박집을 잡았는데,
대학생들이 MT를 왔는지 10여명이 부산을 떨고 있다.
오늘 밤도 편히 잠들기는 틀렸구나 싶었는데, 아닌게 아니라 새벽까지 계속 떠들어 댄다.
밖도 환하고 해서 눈을 뜨니 다섯시가 넘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대충 씻고 여섯시 경에 길을 나서는데,
대학생들은 지금까지 술판을 벌이고 있다.
하기야 그 나이에 해보지 않으면 언제 해 보겠는가?
남해를 빠져나가는 빠른 길도 있지만 해안도로를 따라가며 해돋이를 보려했건만, 가다보니 이미 해가 솟아 올라 있다.
이렇게 해가 빨리 뜨는 줄 알았다면 좀 더 서두를 걸 그랬다는 아쉬움을 감출 길이 없지만,
다도해국립공원답게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며 바라보는 경관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휴게소에 들려 간단히 요기를 하고 추모 2주기를 목전에 둔 봉하마을을 향해 간다.
독일마을 풍경
상주해수욕장의 은모래는 너무 곱다.
백사장의 폭이 넓어 좋으나, 길이가 짧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아쉬운 마음이다.
시간이 있다면 둘이서 오토바이를 타면 좋겠는데, 시간이 없다. ㅜㅜㅜ
보리암은 이렇답니다
남해 최고의 명산으로 일컬어 지는 금산의 정상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명찰. 양양 낙산의 홍련암, 강화 석모도의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처로 이름 높은 곳이다. 더불어 보리암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주변 경관이 뛰어난 사찰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금산의 비경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보리암 주변에는 거대한 바위봉우들이 뒤를 막아서고 눈앞으로는 한려해상공원의 망망대해가, 산 밑에는 초승달 모양의 상주해수욕장과 미조항이 펼쳐진 그림같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 바라다 보는 일출은 금산 38경중 마지막 절경으로 일컬어 지는 장관.보리암으로 오르는 길은 두갈래다. 복곡저수지에서 셔틀버스나 승용차를 이용해 단숨에 보리암까지 오리는 길이고 또 하나는 금산의 절경을 두루 살피면서 한시간여를 걸어서 오르는 길이다. 산행의 묘미와 보리암의 신비경을 맛보기 위해서는 후자를 택하는 게 좋을 성 싶다.상주해수욕장쪽의 매표소를 통해서 산길을 오르면 금산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롭다는 쌍홍문을 볼 수 있다. 연이어 용굴과 음성굴을 지나면 거대한 절벽위에 서 있는 보리암의 신비경을 한눈에 보게된다. 보리암 앞에는 하얀색의 관음보살상이 서 있고 그 옆으로 작은 삼층석탑이 빛 바랜 모습으로 천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보리암에서 가장 눈여겨 보아야 할 곳이 바로 이 삼층석탑이다. 이 석탑은 신라 김수로왕비 허태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파사석이란 돌로 세웠다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불가사의 현상이 일어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신기하게도 이 탑 앞에서는 나침반이 제구실을 못한다는 사실이다. 석탑의 첫 번째 기단에 나침반이 놓여져 있는데 이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나침반의 바늘이 제 멋대로 움직임을 알 수 있다. 석탑만 벗어나면 제대로 작동하던 나침반이 석탑밑에만 가면 방향성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이다. 거짓말 같지만 그곳에 가면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보리암 삼층석탑 앞은 금산의 제1전망대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암자 전체의 풍광을 조망할 수 있고,상주해수욕장에서 시작되는 푸른 바다와 신새벽의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이기도 하다.보리암에서 10여분만 오르면 금산의 정상인 망대에 닿을 수 있다. 보리암은 원효대사가 창건했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보광사의 부속암자였던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그럼에도 보리암에는 두 가지 연기설화가 전해진다.하나는 가락국의 김수로왕이 왕비로 맞아들인 인도 중부 아유타국의 허황옥 공주와 함께 배를 타고 온 장유선사가 세웠다고 하는 설화다. 김수로왕과 허황옥 공주 사이에서 열 왕자를 낳았는데 그중 일곱 왕자를 장유선사가 데리고 출가를 했다는 것이다. 일곱 왕자를 데리고 출가한 장유선사가 거쳐간 곳은 영남일대에 많이 있는데 김해의 장유암은 그 확실한 사적지이고, 가야산과 지리산의 칠부처가 모두 장유선사의 유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그 장유선사가 처음 찾아든 곳이 가락국이 자리잡고 있는 김해에서 멀지 않은 이 금산 보리암이라는 것이다. 장유선사는 금산의 천태만상의 변화에 매혹되어 보리암에 터를 잡아 아유타국에서 모시고 온 관세음보살을 모셨는데 지금의 관세음보살이 바로 그때의 관세음보살이라는 것이다.두 번째는 원효대사 창건설이다. 의상과 함께 신라불교를 대표하는 원효대사가 강산을 유행하다가 이산의 승경에 끌려 들어 왔는데, 온 산이 마치 방광(防光)하는 듯 빛났다고 한다. 초옥을 짓고 수행을 하던 원효는 이곳에 보광사를 세웠다는 것이다. 이후 보광사에서 백일기도를 올렸던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후 감사의 뜻에서 사찰을 둘러싼 산의 이름을 금산이라 부르게 했으며 1660년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으면서 보리암이란 새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시각이 시각인 만큼 주차장은 한산하기 그지없다.
윗 주차장에 있는 보리암 매표소는 늧은 시각이라 입구를 개방해 놓았다.
이곳도 층층나무꽃이 활짝 피었다.
이곳에 올라서면 금산의 기암괴석과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운 경관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1박2일의 엄포스가 108배를 드린 관음상.
집사람은 먼저와서 참배를 마쳤고, 나는 108배를 대신하여 8배를 드린다.
어두워 아무도 가지 않는 태조 이성계가 기도한 곳을 홀로 내려가 본다.
거리는 200미터지만 가파른 길은 장난이 아니다.
어두운데 무 후레쉬로 촬영하니 영상이 ............
어두워서 보이지 않으나 이곳이 이태조가 기도한 곳인가 보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안으로 들어가 보기엔 분위기가 너무 으스스하다.
어둠을 뚫고 하산한다.
상주해수욕장의 이른 아침 주차장에서...
여섯시에 봉하마을로 출발하며 가는 길에 일출을 보려했는데,
이미 해가 중천에 떴다.ㅠㅠㅠㅠ
남해시 창선면 해안도로 변 바다풍경은 마치 그림같다.
남해에서 삼천포가기 직전의 초양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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