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은 사물 안에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다!
햇살처럼 가족방/금연의 추억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풍요로운추석 여유로운마음과 넉넉한 마음으로 정도나누고 사랑도 나누는 추석입니다.... 어릴적에는 추석이 그렇게 기다려졌었건만 그다지 반갑지 않고 부담으로 다가옴은 아마도 늙었다는 의미는 아닐런지요? 며칠전 밤 늦은 시각에 홀로 공원을 산책하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했습니다. 집에와서 제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집에도 한번 들르고 친구어머님과 몇분 어르신들을 꼭 찾아 뵙자구요. 그제는 큰처형집에 과일 한상자를 들고가서 기타 한개와 자전거 한대에 맛있는 토하젓 한병까지 얻어왔습니다. 이걸 횡재라고 해야하나요? 아님 되로주고 말로 받은 건가요? 어제 저녁에는집사람과 함께 20여년전에 교통사고로 먼저간 친구집을 찾았습니다. 사회에서 만나 5년정도 함께했지만 내 가슴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영원한 나의 벗 산소는 가끔씩 찾으면서도 집을 찾은 건 거의 10여년이 되었습니다. 애들 대학 다닐때 등록금이라도 한번 내줘야겠다고 다짐하고 살았건만 자식 세명키우며 사는게 녹록치도 않고 능력도 부족해 아직도 실행을 못하고 삽니다. 혹여 그 동안 좋은 남자 만나 시집이나 갔나했더니 30대 초반에 홀로되어 여자 홀로 두 아들을 잘도 키우고 살고 있습니다. 부부가 함께해도 만만치 않은 세상을 여자 홀로 애들 키우며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지............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어제 저녁 장성한 두 아들들과함쎄 삼겹살에 소주 대여섯병을 아주 기분 좋게 마셨습니다. 반가움에 혼자 어찌 말을 많이 했는지 우리 각시가 다음에도 그러면 안 데리고 살겠답니다.ㅜㅜ 그래도 담배피우는 큰 아들에게 금연교육은 확실하게 했으니 분명 금연을 할거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너무 오랫만에 찾았지만 너무나 기쁜 해후였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어른들 몇분을 찾아뵐려고 합니다. 찾아 뵈면 죽은 자식 살아온 것처럼 반가워 하시련만 이런저런 핑게로 너무 오래 찾아뵙질 못했습니다.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나를 못알아 보시기 전에 꼭 찾아뵈야겠다는 마음입니다. 이번에 아버님의 병환이 깊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내가 뭔가를 하고자 할때 그 분들이 마냥 기다려 주지는 않을 것이기에.... 사설이 너무 길었나요? 이번 추석에는 일기가 불순하다고 합니다. 고향가시는 길 운전 조심하시고 고생보다는 기쁨과 보람이 많은 한가위되시길 기원합니다. 저는 오늘은 무등산에 오르고 내일 일찍 무안으로 갑니다. 모두들 즐거운 추석되소서!!! happy choo-suck!!!
풍요로운추석 여유로운마음과 넉넉한 마음으로
정도나누고 사랑도 나누는 추석입니다....
어릴적에는 추석이 그렇게 기다려졌었건만
그다지 반갑지 않고 부담으로 다가옴은
아마도 늙었다는 의미는 아닐런지요?
며칠전 밤 늦은 시각에 홀로 공원을 산책하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했습니다.
집에와서 제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집에도 한번 들르고
친구어머님과 몇분 어르신들을 꼭
찾아 뵙자구요.
그제는 큰처형집에 과일 한상자를 들고가서
기타 한개와 자전거 한대에 맛있는 토하젓 한병까지
얻어왔습니다.
이걸 횡재라고 해야하나요?
아님 되로주고 말로 받은 건가요?
어제 저녁에는집사람과 함께 20여년전에 교통사고로 먼저간
친구집을 찾았습니다.
사회에서 만나 5년정도 함께했지만
내 가슴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영원한 나의 벗
산소는 가끔씩 찾으면서도 집을 찾은 건 거의
10여년이 되었습니다.
애들 대학 다닐때 등록금이라도 한번 내줘야겠다고
다짐하고 살았건만 자식 세명키우며 사는게
녹록치도 않고 능력도 부족해 아직도 실행을 못하고 삽니다.
혹여 그 동안 좋은 남자 만나 시집이나 갔나했더니
30대 초반에 홀로되어 여자 홀로 두 아들을 잘도 키우고 살고 있습니다.
부부가 함께해도 만만치 않은 세상을
여자 홀로 애들 키우며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지............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어제 저녁 장성한 두 아들들과함쎄
삼겹살에 소주 대여섯병을 아주 기분 좋게 마셨습니다.
반가움에 혼자 어찌 말을 많이 했는지
우리 각시가 다음에도 그러면 안 데리고 살겠답니다.ㅜㅜ
그래도 담배피우는 큰 아들에게 금연교육은 확실하게 했으니
분명 금연을 할거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너무 오랫만에 찾았지만 너무나 기쁜 해후였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어른들 몇분을 찾아뵐려고 합니다.
찾아 뵈면 죽은 자식 살아온 것처럼 반가워 하시련만
이런저런 핑게로 너무 오래 찾아뵙질 못했습니다.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나를 못알아 보시기 전에
꼭 찾아뵈야겠다는 마음입니다.
이번에 아버님의 병환이 깊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내가 뭔가를 하고자 할때 그 분들이 마냥 기다려 주지는 않을 것이기에....
사설이 너무 길었나요?
이번 추석에는 일기가 불순하다고 합니다.
고향가시는 길 운전 조심하시고
고생보다는 기쁨과 보람이 많은 한가위되시길 기원합니다.
저는 오늘은 무등산에 오르고 내일 일찍 무안으로 갑니다.
모두들 즐거운 추석되소서!!!
happy choo-suck!!!
아련한 옛 고향풍경 보시며 향수를 달래보시죠!(펌글) 예전엔 집에서 탈곡을 하였기 때문에 집주위가 엉망이었죠~
어릴적 탈곡한 짚단을 날랐었죠~소먹이(여물)로사용 하였답니다.
보리타작 콩타작은 도리깨로 하였지요.
콩타작을 하나 봅니다. 잔일들이 많았죠~
바람을 일으키는 풍로가 있엇는데 안보이는것 보면 60년대 이전인가 봅니다.
전형적인 초가마을
마을 주변에 버드나무들이 많았어요~
여유있는 가족들의 모습..(사립문 밖에서)
손으로 하루종일 모내기 하고나면 눈이 퉁퉁 붓지요.
예전에는 천수답이 많았죠~
이맘때면 초벌 논매기 하였죠~손톱이 없으면 힘이들죠.. 동네 아이들의 모습..
여름이면 매미잡고 구슬치기하고 놀았는데.. 먼~ 시장길(신작로) 산중시골이라 오리나 십리길을 가야한답니다.
당시 까만 비누도 많았는데..
풀베기 운동(퇴비용)ㅡ4H 구락부기도 보이네요
70년대엔 새마을운동이 대세였죠!!!
남녀노소 불문하고 산과 들에서 풀을 베어 지게에 지고 새마을기를 든
마을 이장이나 작업 반장의 뒤를 따라 긴 행렬을 이루며
집합장소로 이동하던 그때...높은 분들이 지나가면
잘 보이도록 도로 옆 가장자리에 산더미처럼 최대한 높게 쌓아
실적에 따라 마을별로 시상도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초가집 이을때 이엉과 용마루를 엮고 있네요~
초가지붕 이을때면 굼벵이들이 정말 많앗죠~
그땐 징그러워 먹지도 못햇는데..요즘에는 고단백으로 당뇨에 좋다죠..
내년에 심을 씨앗들 처마에 매달아 보관하였죠~
도리깨로 콩타작 하는 모습
당시 농촌에는 잔일들이 항시 많았지요.
노오란 옥수수가 먹음직 스럽네요~
감나무 사이로 벼 탈곡하는 모습..
등목이라하여 예전에 많이들 하였죠~
ㅁ>
집집마다 장독대가 있었죠~
예전의 부엌모습
고부지간 맷돌에 메밀을 가는 모습이 다정해 보입니다.
짚신을 만들어 장날에 나가 팔기도 하고.
소는 재산목록 1호에 소가없으면 농사를 못 지었지요~
쟁기질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가을걷이에 새참을 나르고 있나봅니다.(막걸리에 국수..)
배가 고프면 허리가 더 아팠어요~어찌나 기둘렸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