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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剛山도 息後景 - 풀잎처럼 눕자

읽어보아요/부담없는 글

[스크랩] 고치고 또 고치고 / 박재삼

서까래 2010. 1. 18. 22:56
나는 전에는 시의 초고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거기에는 언제나 새카맣게 고치고 또 고치고 하여 창피하여 남에게 보일 그런 처지가 아니었다. 그 글씨를 알아 볼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나만이었다. 그렇게 자꾸 이 말이 나올까, 저 말이 어떨까 혼자서 끙끙대었던 셈이다.

문득 推敲라는 말이 생각난다.『밀 推』가 나으냐,『두드릴 敲』가 나으냐, 그 한자의 선택에도 부지런히 공을 들이고 있었던 先人이 그렇게 우러러 보일 수가 없었다. 시원찮은 재주를 타고난 처지에서는,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늘 부지런히 닦는 길밖에는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이러 따지고 저리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일이었다.

詩는 누구나 생각하는 것은 엇비슷할 것이라고 본다. 나는 그 전부터 다음의 세 가지에 중점을 두었다고 하고 싶다. 그것은 첫째, 이 세상에서 누구도 생각한 일이 없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그것을 떠올리는 것을 뜻한다. 그런 것이 이른바 創意라는 것으로 요약되지 않을까 한다. 전에 이 비슷한 詩想으로 쓴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여기에서부터 낙제라고 본다.

그런 다음 둘째, 말과 말이 잘 어울릴 수 있도록 근사한 가락을 빚어야 한다는 것이 따른다. 이 말이 나을까, 저 말을 써서 어떨까. 거기에 늘 온 精力을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사실 이것이 따르기 때문에 몇자 안되는 詩를 잘 빚기가 어려운 것이라고 본다.

그런 다음 셋째는 그 詩를 읽는 사람에게 짜릿한 共感이 전달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무슨 말을 했는지 근본적으로 알 수 없는 그런 詩는 벌써 안 된다고 하겠다.

이 세 가지에 두루 합격한다는 것이 여간 애쓰지 않고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저 사람은 몇 십년 했으니까 어지간히 거기에는 道를 텄다고 볼는지 모른다. 그러나 해도 해도 이 길에는 완성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고, 그저 전에 한 것보다는 미완성에서 완성 쪽으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면 그것으로 괜찮은 편이라고 하겠다.

그러니 詩를 하는 길에는 어디 입학이 따로 없고 따라서 졸업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는 셈이다. 늘 그저 새로운 각오로 대들어야 하는 것이 부수적으로 따른다. 그러니 그저 이만하면 되었겠지 하는 安易한 마음이 따라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걸 생각하면 그저 죽자 살자 부지런히 밭을 가는 농부와 같이 말의 밭을 부드럽게 일구어가는 것이 따른다.

그러나 나의 경우, 솔직한 고백을 한다면, 그 전같이 功을 덜 들이게 되어 간다. 나이가 들어가니 웬만한 작품이 아직도 더 推敲를 거듭해야 되건만, 적당한 선에서 물러나고 만다. 원고청탁이 올 때는 언제까지 써 달라는 그 날짜가 있는데, 그때까지 물론 고치고 또 고치고 하건만, 그 전같이 달라붙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원고를 건널 때에는 속으로 다짐을 한다. 이것이 발표되고 나서 그 다음 詩集이라도 나올 때는 다시 손봐야지 하는 다짐을 하건만, 그 다음에는 또 딴 원고를 쓴다고 하는 구실이 들어, 그것을 손댈 겨를을 잃고 마는 것이다. 그러는 것은 나이 들어갈수록 어쩐지 시간이 모자란다고 할까. 그러니 그 전에 원고지가 새카매질때까지 고치고 또 고치고 하는 일을 못하게 되어 간다. 이것은 어쩌면 나이 들어가면 모든 것이 如意치 않게 되어 가는데 깊이 줄이 닿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전과 지금이 같은 것은 한 가지 있다. 즉 무슨 생각이 새로운 것에 이르렀을 때에는 무조건 메모를 해 두는 버릇이다. 하도 짤막짤막해서 그것 자체가 바로 詩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여간 그것을 적어 둔다. 그리하여 거기에 다시 말을 골라 다듬고, 이를테면 가락이라는 것을 부여하고 나서는 그것이 차츰 작품의 가까이로 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 전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처음에 적어 놓았던 것은 무슨 장난인가 싶겠지만, 그것이 화장을 하여 차츰 작품 쪽으로 나아간다고 하겠다. 그러는 것을 그 전에는 初稿가 새카매지도록까지 고치고 또 고치고를 거듭했는데, 이제는 차츰 게을러져서 그렇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많이 변한 것이다. 나이 든다는 것은 그만큼 熾熟性 같은 것이 어느새 달아나는지 모른다.

그저 적당한 선에서 妥協을 하고 나서 속으로는「이만하면 되었지」하고 물러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에 와서야 나이 든다는 것은, 차츰 물끼가 달아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메말라 간다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니 아직까지는 청탁이 오면 쓰기는 하지만, 그저 미적미근한 세계로 빠져 든다는 것을 느낀다.

이런 것을 보면, 세상사 모든 것은 젊었을 때가 제일 좋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여간 끝없는 追求라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으니까 그저 그만이라고 하겠다. 왜 그때처럼 안되어 있는지 나도 모르는 것이다. 나이 들면 細胞가 많이 죽어 간다고 한는데, 詩가 차츰 그런 것인지 모른다. 많이 게을러졌다는 것에 하염없이 悲哀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자꾸 詩라는 이름으로 쓰기는 쓴다마는 영 신통한 결과가 안나오는 것은 뻔한 이치라고 하겠다. 그러나 그런 것을 알면서도 늘 붓과 씨름을 하기는 한다. 이것은 어쩌면 떨칠 수 없는 나의 오랜 버릇에 말미암았다고 본다. 되든 안되든 무얼 끄적거리는 것이니까.

사실 推敲라는 것을 떠올리면 그것은 끝도 限도 없는 것이다. 평생을 한 작품에만 매달릴 수도 없으니, 적당한 선에서 물러나고, 또 새 작품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어릴 때 지독한 고생을 해서 그런지, 나의 초기作에는 비교적「슬픔」을 내세우는 詩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 와 느끼는 것은 뒤에 올수록「허무」를 노래한 詩가 차츰 늘어가는 추세라고 하겠다. 그것이 차츰 변해가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는 중에 나는 우리 말의 아름다운 가락을 빚어보자는 것에서 한시도 떠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나의 끝없는 바람인지 모른다고 하겠다.

출처 : 두꺼운 연습공책
글쓴이 : 퍼플캣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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