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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보아요/가곡, 연주곡

[스크랩] 피아노가 그리는 물방울-리스트에 홀리다

서까래 2010. 1. 21. 19:43

 

 

S#1-피아노, 생명의 무늬를 그리다

 

공연을 앞둔 리허설 시간, 연주자를 만나러 갔습니다. 리허설을 앞둔 고요의 시간. 스타인웨이 피아노 한대가 정 중앙에 놓여있네요. 친구의 언니가 개인 독주회를 열었습니다.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제겐, 사실 정통 클래식은 쉽게 다가오는 대상은 아닙니다. 그건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독자분들도 마찬가지일겁니다. 사실 이런 바탕을 따지고 들어가면, 미술 공부도 마찬가지죠.

 

<서양미술사>책을 꼭 탐독해야만, 대형 미술관에서 열리는 기획 전시를 볼수 있을 것 같은 무거운 마음. 여기엔 클래식을 (미술을 포함하여) 너무 고답적으로 교육 받아온 우리 세대의 모습이 있습니다.

 

개별 미술작품을 보고, 그냥 느끼는 것 부터 배운게 아니라, 화가 이름 외우고, 미술사에서 규정한 내용을 답습하는 것으로 교육을 대체했기 때문이죠. 그렇게 배워온 사람들이 학부모가 되어 아이를 데리고 체험학습을 갑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딱히 설명할 말이 부족합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죠. 맨날 학교에서 음악의 아버지 바흐, 음악의 어머니 헨델 하는 식의 일본식 교과서 서술을 따라, 외우며 익혔던 음악이라, 정작 해당음악이 나오면 누구의 곡인지 모르는 세대, 여러분을 탓하는게 아니랍니다. 왜냐면 저도 그렇거든요. 그래서 나름대로 생각한 것이, 미술로 음악을 풀어보면 어떨가 하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미술을 처음 접하는 분들을 위한 책을 보면, 하나같이 공통된 충고가 인상주의 그림부터 보기 시작하라 입니다. 그만큼 그림이 예쁘고 보기에 편하죠. 르누아르 그림 얼마나 예쁘던가요. 이와같이 이 시대에 나온 음악부터 좀 듣기 시작하면 어떨가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프란츠 리스트를 좋아해선 그런가 봅니다.

 

 

어제 피아니스트 유수정님의 연주회를 간건 사실 리스트의 '에스테 별장의 분수'란

곡을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에스테 별장의 분수는 프란츠 리스트가 작곡한 최대의 소품집

<순례의 해>에 나오는 곡입니다. 작곡가 리스트가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자연 그대로의 풍광과 빛깔, 이탈리아 르네상스 거장들의 그림 앞에서

느낀 감성을 피아노로 표현한 것이죠.

 

저는 몰입의 순간 속에 있는 인간을 사랑합니다.

바로 그 순간에, 창조성이 나오기 때문이죠. 더구나 에스테 별장의 분수란 곡은

물의 움직임과 빛깔, 그 동세의 섬세한 형태들을 음으로 그려내야 하는

작품이라, 피아노란 매체로 그 음을 채색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리허설을 보기 위해 들어가는 무대는 적요함으로 가득합니다.

음악은 침묵이 있어야만 빛이 나는 존재입니다. 침묵을 깨뜨리는 아름다운 음은

바로 화가의 붓처럼, 작가의 펜처럼, 세상을 대면하고 대화를 꿈꾸는 이들의

무기이자 도구인 것입니다. 그러니 공연장에 갔을때, 연주회장의 고요함을 한번 우선 즐겨보시면

어떨가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적요함 속에 삶의 쉼표를 찍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좀 더 마음이 편해지실 것 같습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리스트> 1840년, 캔버스에 유채

 

피아노를 치는 리스트의 모습을 그림으로 담았습니다. 1840년, 파리의 한 살롱의 풍경입니다.

당시 그는 많은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었다고 하죠.(낭만주의 시대의 빅뱅이라고 할까요?)  특히 작가들과 다른 음악가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그림 속 왼쪽부터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 빅또르 위고, 조르주 상드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 작곡가 로시니의 모습이 보이네요.  

 

 

연주되는 <에스테 별장의 분수>를 듣고 있자니

예전에 여행했던 에스테 정원과 분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악보는 지도와 같다. 이정표, 도로, 교차로, 우회로 등이

음악적 형식의 청사진이 되고, 감각에 새겨진 음들의 토론장이 된다.

파란음, 회색 음, 단단하거나 말랑말랑한 음, 빛나거나 매끄러운 음, 오목하거나 볼록한 음,

파릇파릇하거나 향기로운 음, 그리하여 음악적 상상력이 음들의 지도에

풍경의 특징들을 투영한다" -러셀 셔만의 피아노 이야기 중에서-

 

Image:One.hundred.fountain.at.villa.d'este.arp.jpg

 

100개의 분수를 보며,

초록정원과 어우러진 분수들은 하나같이 독특한

물방울의 형상들을 토해냅니다. 다양한 형태의 분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고 있자면, 찬연한 힘같은 것이 마구 솟아날 것 같은 기분에 빠집니다.

 

로마 근처의 티볼리에 이 분수가 있는데요.

로마 가시면 근교 여행 코스로 항상 들어가는 유명한 곳이에요.

당시 최고의 건축가들과 정원기술자들이 유럽형식의 정원미학을 구현한 곳이기도 합니다.

 

Image:Fountain.of.rometta.villa.d'este.arp.jpg

 

피아노로 연주하는 에스테 별장의 분수를 들으며

지난 세월의 여정이 떠올랐고, 시원한 풍광 속에서 맞았던 미풍의 기억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올림바장조로 작곡된 곡들이 물의 느낌을 표현하기에

적절하다고 해요. 사실 그 이유야 캐묻고 따지면 저는 설명할 능력은 없어요.

스크랴뱅이 이 장조를 가리켜 밝은 푸른색깔을 가졌다고 말했다더군요.

연주를 듣다보면 보라와 감청색이 혼합된 느낌이 나요.

 

하지만 어제 연주회 후반에 들었던 리스트와 쇼팽의 뱃노래,

스크랴뱅의 곡들은 하나같이 물의 형상과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곡들이었습니다.

피아노를 들을때, 청음의 과정에서 내 머리 위로 환하게

쏟아지는 햇살과 분수의 형상을 그려본다는 건

참 신나는 일일 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피아니스트도 결국 화가와 다를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으로 그림을 그려야 할테니까요. 저는 물의 이미지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틀전 소개한 <카모메 식당>에서 결국 끝장면에서 요리를 통해 치유한 사람들이 풀장에 모두 모여있는 씬이 나오는데요.

 

그 영화에서의 물은 치유를 의미한다면, 어제 연주회에서 들었던 <에스테 별장의 분수>에서의 물은 생명력과 화려한 물방울의 동세를 떠올리게 했답니다.

더불어 사진작가 루스 캐플란의 <온천사진> 연작을 한번 클릭해보세요.  아픈 기억과 싸우며 현재를 충실하게 채워가는 인간의 힘과 그걸 가능하게 하는 물의 힘을 느끼게 되실거에요.

 

이렇게 물은 다양한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흑백의 음표로만 가득한 악보 속, 피아니스트의 손을 통해 잉태될 순간을 기다리는 물의 힘찬 기운이 느껴지는 연주였습니다. 마음에 드는 연주를 듣는 날은 기분이 편하고 마음 한구석의 짐을 내려놓는 것 같아 좋습니다.

 

한 번 떠난 목숨은 돌아오지 않는다.
한 번 떠난 사람도 돌아오지 않을 때가 있다.
소중한 건 지금의 한 사람
소중한 건한 귀절 지금의 노래
소중한 건 나를 지켜 주는 한 가닥 지금의 목숨.
찰랑이는 밤하늘 무수한 눈동자 속으로
언 바람이 시린 소리로 비껴가고 있다.
대지를 박차고 치솟는 물줄기 속으로
지금 막 잊어버린 얼굴이 하얗게 부서져
떨어지고 있다.

 

                                                                                     서은숙의 <분수> 전편

 

떨어지는 물방울에서 옛사랑의 기억을 더듬어도 좋고, 힘차게 일어나 세상을 대면할 용기와 힘을 얻어도 좋습니다. 결국 모든 건 여러분 마음 속의 풍경과 음이 어떻게 만나는가가 중요할테니까요. 행복한 주말 되세요. <에스테 별장의 분수> 올립니다. 들으면서 말씀드렸던 부분들 꼭 체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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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김홍기의 문화의 제국
글쓴이 : 김홍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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