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의 생
절반만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말라.
절반만 친구인 사람과 벗하지 말라.
절반의 재능만 담긴 작품에 탐닉하지 말라.
절반의 인생을 살지 말고
절반의 죽음을 죽지 말라.
절반의 해답을 선택하지 말고
절반의 진리에 머물지 말라.
절반의 꿈을 꾸지 말고
절반의 희망에 환상을 갖지 말라.
침묵을 선택했다면 온전히 침묵하고
말을 할 때는 온전히 말하라.
말해야만 할 때 침묵하지 말고
침묵해야만 할 때 말하지 말라.
받아들인다면 솔직하게 받아들이라.
가장하지 말라.
거절한다면 분명히 하라.
절반의 거절은 나약한 받아들임일 뿐이므로.
절반의 삶은 그대가 살지 않는 삶이고
그대가 하지 않은 말이고
그대가 뒤로 미룬 미소이며
그대가 느끼지 않은 사랑이고
그대가 알지 못한 우정이다.
절반의 삶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대를 이방인으로 만들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그대에게 이방인으로 만든다.
절반의 삶은 도착했으나 결코 도착하지 못한 것이고
일했지만 결코 일하지 않은 것이고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그때 그대는 그대 자신이 아니다.
그대 자신을 결코 안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은 그대의 동반자가 아니다.
절반의 삶은 그대가 동시에 여러 장소에 있는 것이다.
절반의 물은 목마름을 해결하지 못하고
절반의 식사는 배고픔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절반만 간 길은 어디에도 이르지 못하며
절반의 생각은 어떤 결과도 만들지 못한다.
절반의 삶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지만
그대는 할 수 있다.
그대는 절반의 존재가 아니므로.
그대는 절반의 삶이 아닌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존재하는
온전한 사람이므로.
- 칼릴 지브란 -
어떤 책에서 이 시를 인용한 시인은 아래와 같은 해설을 달았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은 지금 이 순간과의 결혼이다.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고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영혼을 자유케 한다...
세계적인 작문 지도 교수 나탈리 골드버그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라’고 말했다.
그것은 모든 일에 해당된다. 뼛속까지 느끼고, 뼛속까지 사랑하고, 뼛속까지 경험하는 것.
이 지상에서 무엇인가에 온전히 마음을 쏟을 수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축복이다.
마음을 쏟아 어떤 일을 할 때 우리는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갖는 기쁨이다.
그 기쁨이 우리를 온전하게 만든다.“
석학들은 우리에게 요구한다.
“살려거든 온전하게 살라고...”
하지만 온전하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다지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온전히 사는 사람은 많이 행복하거나
안 그러면 많이 불행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어찌 할 것인가?
모두가 팔자소관이다.
그러니 설사 온전치 않더라도 살아야 한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온전히 살다 가면 될 일이다.
그대로 사는 게 행복하다면...
오늘도 행복하게 지내시길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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