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늦게부터 내린 비가 아침까지 이어진다.
출근길에 연꽃이 만개했을 운천지를 돌아보려했는데
내리는 비가 싫지만은 않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은
우산을 받쳐 들고 비에 젖은 연꽃을 감상하는 것도
나름 운치가 있을 것이다.
마님을 가게까지 모셔다 드리고
운천저수지에 도착하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비가 그친다.
비가 그치니 산책하긴 편하겠지만 약간의 아쉬움 또한 남는다.
못 믿을 날씨이기에 우산을 챙기고 운천지 산책에 나선다.
한여름에 쏟아지는 폭우는 아마도 꽃들에겐 재앙일 것이다.
가지런해야할 연꽃들이 품위고 기품이고 모두 내려놓고
정신 줄을 놓고 있는 모양새다.
마치 비에 젖어 머리를 산발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처럼...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속설을 따르기라도 하려는 듯
겨울잠에서 가장 늦게 깨어나
한여름에 화사하게 피어난 배롱나무꽃도
꽃잎에 매달린 빗물방울이 버거운 듯
고개를 떨구고 처량한 눈길로 나를 바라본다.
화장실 주변에 갓 피어난 능소화만이
빗물로 말끔하게 세수하고 밝은 표정으로 웃고 있다.
아니다, 그러고 보니 앙징맞게 핀 수련꽃들도
젖어있을 뿐 흐트러짐이 없었다.
작다는 게 약함을 뜻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힘겨워하는 꽃들이나 씩씩하게 밝게 웃고 있는 꽃이나
아름다워 보이는 건 그 본질이 곱기 때문이리라.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지듯 그냥 피어나는 꽃이 어디 있으며
아픔 없이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꽃들이 어디 있겠는가?
어쩌면 나도 저 꽃들처럼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리고
세파에 찌들리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365일 피는 꽃이 없듯이
365일 비바람 치는 경우도 없다.
이 비가 그치면 연꽃도 배롱나무 꽃도
더 곱고 우아한 모습으로 밝게 미소 지으리라.
빗물(雨水)에 젖고, 시름(憂愁)에 잠긴 듯한
너희들 모습이 어쩌면 우리 인간들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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