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가을이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시고.
들에는 더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 후로도 오래도록 그리 할 것입니다
잠을 못 이루고,
책을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흩날릴 때,
불안스럽게 가로수 길을
이리저리 헤맬 것입니다.
..................
주여, 벌써 가을이 가고 있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이란 시를
미처 읊조려 보지도 못하고
사랑스러운 가을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하고
이대로 보내야 하는 건지 정녕 모르겠습니다.
주여, 이번 가을은 너무도 짧습니다.
서산으로 지는 해를 잠시 붙들어두시고
따사로운 햇살과 더불어
가을날과 벗하며 가을과 더 친숙해질 여가를 주십시오.
곱게 물들어 가는 나무들,
그리고 대지를 장식해 가는 낙엽들
아직은 가을이지 싶은데
오늘 첫눈이 예보된 곳이 많더군요.
첫눈이 내린다고 겨울이 왔다고 얘기할 수도 없고,
가을이 가버렸다고 함부로 말해서도 안 되겠지만
겨울이 가까이 다가온 것만은
부정할 수 없을 현실인 것 같네요.
오늘도 중식 후에 잠시 가까운
가톨릭평생교육원을 잠시 산책했습니다.
교정의 플라타나스와 튤립나무잎들이 누렇게 물들고
더러는 땅에 떨어져 뒹굴며
깊어가는 가을의 운치를 더해 주더군요.
그런데 운동장을 바라보니 수녀님 네 분이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운동장을 오래도록
왔다 갔다 하시며 담소를 나누고 계시더군요.
평상시에도 수녀님들이 운동장 주변의 산책로를 거닐며
산책을 즐기는 경우는 많은데,
운동장을 거니는 것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습니다.
수능일인 어제 기온이 뚝 떨어졌다가
오늘은 예년기온을 되찾았다고는 하지만
낮에도 나무그늘을 거닐다보면
제법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운동장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벗 삼아
거니는 수녀님들을 바라보며
벌써 햇볕을 그리워하는 계절이 되었나 싶더군요.
세월의 빠름과 부질없음에
괜한 한숨이 새어 나오기도 하구요.
우리가 원하건 원치 않건 이렇게
계절은 흘러갑니다.
머잖아 북풍한설에 옷깃을 여미며
종종걸음 칠 날이 다가오겠지요.
하지만 아직은 만추(晩秋)일 뿐
겨울은 저만치 먼 곳에 있습니다.
허나 기다려주지 않는 게 계절의 속성인지라
이번 주말이 올가을의 단풍과 가을다운 정취를
만끽할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가을의 정취를 느낄 기간은 아직 남아있겠지만
가을 풍경의 정점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겁니다.
가는 가을 서러워 마시고
가을을 눈에 담고,
가을의 향기를 음미하며
가을을 끌어안고
가을의 품에 안겨
가을과 오롯이 주말을 즐기시며
가을이 주는 행복에 흠씬 젖는 휴일 보내시길 빕니다.
무엇보다도 변덕스러운 날씨에
건강부터 잘 챙기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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