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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剛山도 息後景 - 풀잎처럼 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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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191231

서까래 2019. 12. 31. 17:06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만해 한용운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붙잡을 수 없는 세월이기에 떠나보내야 하지만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이

나이가 들수록 야속하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보낸 해보다

맞이할 해가 갈수록 줄어듬을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만해 한용운님의 님은 누구였을까요?

조국의 해방, 부처님, 민족, 희망, 자연 등

무수한 가치들을 유추해 볼 수 있지만

부질없이 흘러가는 세월 또한

한용운님의 님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요?

 

말도 없이 오는 둥 마는 둥

왔다가 가는 세월,

계절은 돌고 돌아 다시 온다지만

한번 간 세월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고

이별도 사람의 일입니다.

세월을 떠나보내야 하는 것도 사람의 일이고

세월 따라 떠나야 하는 것도 사람의 일일 겁니다.

 

이제 2019년과의 동거를 마쳐야할 시기입니다.

한해를 보내는 건 언제나 아쉽습니다.

아쉽지만 붙들어둘 수 없다면 쿨하게 보내야겠지요.

 

님은 아직 가지 않았지만,

밤이 깊으면 또 하나의 님이 떠나갑니다.

떠나가는 님이 말이 없는데,

보내는 이들에게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가는 해 미련 없이 보내고

밝아오는 해 꿈과 희망을 안고 맞이하기를...

그리고 모두가 행복한 새해이기를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