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에게 부탁함 / 정호승
벗이여
이제 나를 욕하더라도
올 봄에는
저 새 같은 놈
저 나무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
봄비가 내리고
먼 산에 진달래가 만발하면
벗이여
이제 나를 욕하더라도
저 꽃 같은 놈
저 봄비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
나는 때때로 잎보다 먼저 피어나는
꽃 같은 놈이 되고 싶다
...........
봄비가 내린다.
한 이틀 기온이 오르면서
뿌옇게 변한 대기의 먼지들을 껴안고
낙엽처럼 추적추적 떨어져 내린다.
어제 밤에 쓰레기를 버리러 밖에 나서니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떨어지는 비에서 새금 내 같은 먼지 냄새가 났다.
아마도 물 반 먼지 반쯤 되는 독극물이 내리지 싶었다.
안 그래도 드문드문 남은 머리카락 더 빠질까봐
번개처럼 잽싸게 쓰레기를 버리고 집으로 내달렸다.
분명 봄비일 터이지만 봄비처럼 느껴지지가 않는다.
겨우내 눈다운 눈 한번 내리지 않고 봄비가 내릴리 없다.
어쩌면 지난 가을에 내렸어야할 가을비가
게으름을 피우다 이제 내리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그냥 내리기 쑥스러워서
미세먼지를 청소한다는 명분을 내세워서 말이다.
그리고 가을비가 내린 후에 내리려고
순서를 기다리던 눈은 기다림에 지쳐
필시 잠이 들어버렸을 터이다.
그리고 이제는 시기를 놓쳐버렸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날씨가 이렇게까지 급변할 리가 없다.
근데 이제야 비로소 원인을 알았다.
모두가 가을비의 게으름 탓이다.
하지만 이제와 가을비를 탓해 무얼 하겠는가?
이미 봄이 코앞으로 다가와 버린걸...
봄비가 됐건 가을비건 간에 이대로 날씨가 풀린다면
땅속에 잠들어있던 씨앗들을 건드려 태동시키고
나뭇가지에 새 움을 틔우고
산수유며 개나리 같은 때 이른 봄꽃들을 불러낼 것이다.
내리는 비는 봄을 재촉해 계절의 봄을 소환해 내겠지만
우리네 마음속의 봄은 어디쯤 오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봄비야 이왕 오려거든
미세먼지만 거두어 갈게 아니라
신종코로나 바이러스도 잡아가고
우리네 서민들의 근심걱정도 모두 쓸어가려무나.
봄이 오네, 봄이 와!
우리들의 마음에도....
봄비 내리는 수요일 저녁,
부디 즐겁고 평안하시길....
배따라기의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채은옥의 “빗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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