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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剛山도 息後景 - 풀잎처럼 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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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 오는 날 만나자 / 정호승/200217

서까래 2020. 2. 17. 14:09

첫 눈 오는 날 만나자 / 정호승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 빗자루로 쓸어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

 

눈이 내린다.

첫눈이다.

이제 드디어 겨울이 오려나 보다.

 

엊그제 때늦은 가을비가 내리기에

날씨가 미쳤는갑다그랬더니

가을비가 그치자마자 며칠 새에

눈이 내리는 걸 보니

내가 계절을 착각했었나보다.

 

그저께 아들딸과 셋이서 지리산 노고단을 찾았다.

눈이 없는 시절이니 설경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운이 좋으면

노고단 정상에서는 상고대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없지는 않았지만

혹시나는 역시나 였다.

 

그래도 제법 눈이 내렸었는지 등산로엔

두텁게 얼어붙은 눈길이 많았다.

하지만 정상부에는 아름다운 눈꽃도 서리꽃도 없었다.

노고단에서 바라본 천왕봉만이 하얗게 얼어있었을 뿐,

 

하지만 아무러면 어떤가?

눈이 있으면 더 좋았겠지만

눈이 없어도 즐겁고 아름다우면 됐지 않은가?

 

나름 무등산 상고대도 찾아가고

햇 눈은 아니었지만 지리산 바래봉의 눈도 즐겼다.

그리고는 눈에 대한 미련을 접었다.

 

그런데 어젠가 그젠가 저녁녘에 하늘에서

싸래기 같은 게 내리는가 싶더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눈은 내리지 않았다.

그냥 하늘에서만 수평으로 날아다녔다.

나는 무슨 하얀 새떼가 날아다니는 줄 알았다.

 

아니면 내 비문증이 심해져서

무수한 하얀 새들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비조증(飛鳥症)에 걸린 줄 알았다.

그렇게 눈들이 날아만 다닌 줄 알았는데

아침에는 차위에 10여 센티미터쯤 되는 눈이 쌓였다.

눈이 내려앉고 싶어서 내린 게 아니고

날아다니다 지쳐서 떨어져 앉았나보다.

출근 전에 눈을 쓸어내는 건 짜증스러운 일이지만

모처럼 내린 눈이 반가웠던지

눈을 쓸어내리는 와중에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눈이 내리네

~~ 우우우~~ 우우우~~ 우우우~~~”

 

눈도 오는데 누군가를 만나야 할 것 같다.

근데 만날 사람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2020년 첫눈 올 때 만날

첫사랑이라도 하나 만들어 둘 걸

에이구 못나고 짠한 인간 같으니...

 

눈도 내리고 해서 점심으로 홍어애국에 동동주 한잔을 걸쳤다.

싸비스 안주로 나오는 홍어애와

홍어껍질무침, 그리고 홍어초무침까지 걸기도 하다.

마시고 나니 알딸딸하니 좋기는 좋다.

 

지금도 창밖에는 눈이 내린다.

스르르 감기려던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 번쩍 뜨인다.

눈이야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이지만,

그래도 눈이 오니까 싫지는 않다.

최소한 겨울치레는 하고 지나가야

봄다운 봄이 오지 않겠는가?

 

그래 내일 아침까지 눈이 내린다니까

눈이 그친 뒤에는 봄이 온대도 괜찮아.

 

소월시인의 시 한수가 떠오른다.

제목이 왕십리라 했던가?

 

눈이 온다.

오누나

오는 눈은

올지라도 한 한 오미터쯤 쌓이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 눈이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랴거든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다고

눈 맞아 무거워서 별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겹겹이 눈에 덮여 늘어졌다네

눈이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눈보라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창밖으로 날리는 눈발이

자꾸만 눈길을 뺏어갑니다..

  

첫눈 내린 한주의 첫날,

첫눈처럼 밝고 깨끗한 마음으로

깔끔하게 열어가시게요^^

행복한 한주 보내세요~~~

 

이정석의 첫눈이 온다구요

https://youtu.be/ADHIFTFESQY

 

눈이 내리네” 10

https://youtu.be/xye66MixD7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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