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똑똑 문을 두드렸다
/에밀리 디킨슨
바람이 피곤한 나그네처럼 문을 똑똑 두드렸다.
주인처럼 나는 근엄하게 대답했다.
“들어오시오.”
그러자 발 없는 손님이 재빨리
집안으로 들어왔다.
손님에게 의자를 내주려 했으나
그것은 공기에게 소파를 내주는 것처럼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손님은 몸을 지탱시켜 줄 뼈가 없었다.
그가 말을 꺼내면
우거진 수풀에서 수많은 벌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가 지나갈 때는
소용돌이치는 얼굴과 손가락이
유리컵 안에서 떨며 도는 바람의 곡조처럼
음악소리를 냈다.
우리 집에 와서 경쾌하게 날아다니다가
소심한 사람처럼 그는
당황스러워하며 다시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나는 홀로 남겨졌다.
............
마지막 꽃샘추위려나?
바람결이 제법 세차다.
요즘 들어서 부쩍 계절을 가리지 않고 태풍급의 돌풍이 불어오곤 한다.
갈 봄 여름 가리지 않고 돌풍은 불어오고,
무더기로 피어났던 봄꽃들은 벌써 대부분 먼 길을 떠났다.
꽃이 진 자리를 새록새록 돋아나는 오색빛 새잎들이 대신한다.
산빛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다.
지난 일요일엔 모처럼 아들딸과 셋이서 무등을 만나러 갔다.
오후에 비가 예보되어 있어 나름 일찍이 산행을 나섰는데,
무등산 초입에서 바라본 산빛은 산벚꽃과 현란한 빛깔의
신록들이 조화를 이뤄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원효사에서 늦재삼거리를 지나 중터리길에
접어들자마자 아침부터 가는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덕산너덜길을 지나
백운암터에 이르러 잠시 휴식을 취하고
중머리재에 이르니 휘몰아치는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정상부 주상절리를 보고 싶어하는 딸의 뜻에 따라
일단 중봉까지 올라보기로 했는데,
그 길은 험난한 고난의 길이었다.
탁 트인 무등산 산등성이를 휘몰아치는 바람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태풍을 능가하는 역대급 바람이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배낭속의 우비 없이도 거닐만했는데,
얄미운 바람의 심술 때문에 비에 젖고
추위에 오돌오돌 떨며 하산을 서둘러야 했다.
오늘도 그날처럼 바람이 분다.
하지만 바람은 그냥 그의 길을 따라 지나갈 뿐이다.
바람이 지나가듯 오늘 하루도 가고
흘러가는 부운처럼 인생도 흘러간다.
차가운 꽃샘추위에 건강 유의하시고,
편안하고 오붓한 저녁시간 보내시길...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김범룡의 “바람 바람 바람”
https://youtu.be/0LlachmfyAE?list=TLPQMjEwNDIwMjAYrKXXd2w9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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