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장마
/수필/ 이동우
창밖을 내다보니 오늘도 비가 내려
우산을 쓰고 가는 사람이 많다.
올해는 오히려 한여름에 내렸으면 하던 비는 내리질 않았다.
한반도가 아열대기후가 되었다는 보도도 접하게 된다.
여름철 비는 습하고 무덥다가 소나기가 쏟아지곤 해
마치 열대지방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스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기예보를 보고 다음 날의 일상을 계획하는 것도
이젠 모두의 습관이 되었다.
요즘 비가 간헐적이지 않고 계속 내려서 그런지
기상 캐스터의 입에서는 이런 현상을
가을장마라 부르며 특정시킨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가을장마가 도대체 요즘에 나타나는
이상기후 때문인가를 확인하고자 찾아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가을장마가 세종 때에 쓰인 『고려사에 등장하고 있다.
대략 천 년 전, 고려 시대인 서기 1026년(현종 17년)에
가을장마 때문에 민가 80여 호가 떠내려갔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가을장마로 역사책에 기록할 만큼 큰 손해를 입은 것이다.
이런 기록을 보면 한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며 비가 내리게 되는데
이를 가을장마(秋霖)라 칭하는 것 같다.
사전에는 "8월 말에서 10월경에 중국쪽으로 올라간
장마전선이 시베리아 고기압과 부딪쳐 한반도를 지날 때
비를 동반하는 기상현상"이라 해놓았다.
요즈음 유난히 빈번하게 매스컴으로부터 듣게 된
'가을장마'란 용어를 이리저리 검색하다 보니
고려 말 조선 초에 활약이 대단했던 정도전이 지은
추림秋霖이란 제목의 한시(汉诗)를 접하게 되었다.
추림秋霖은 추신秋汛이라고도 한다.
가을에 내리는 '궂은 비'라는 뜻으로
중국어 사전에는 추계음우秋季淫雨라고도 해놓았다.
가을장마는 수확을 앞둔 농부에게는 애써 재배한 작물에
막대한 피해를 주기 때문에 절대 반갑지가 않은 비임에 틀림없다.
사정은 이렇더라도 시인이며 정치가요
경세가, 혁명가로 이름을 떨친 정도전의
가을장마를 소재로 쓴 추림秋霖이란 제목의
시 한편을 감상해보고자 한다.
그제부터 계속해서 내리는 비에
나도 덩달아 감상적이게 되어 그런지
정도전의 추림이란 시는 시공을 넘어 내게 딱 와 닿는다.
秋霖 추림
诗/郑道传 정도전
秋霖人自绝 추림인자절
柴户不曾开 시호불증개
离落堆红叶 이락퇴홍엽
庭除长绿苔 정제장록태
鸟寒相并宿 조한상병숙
雁湿远飞来 안습원비래
寂寞悲吾道 적막비오도
惟应泥酒杯 유응니주배
가을장마
시/ 정도전
가을장마로 사람 절로 끊기니
사립문을 일찍 열 필요가 없네
울타리엔 단풍잎이 떨어져 쌓이고
정원 계단 밑에는 푸른 이끼가 웃 자랐다
새들은 추워 서로 맞대고 잠을 자는데
기러기는 비에 젖어 멀리서 날아온다
나는 쓸쓸하고 슬프게만 느껴져
응당 싸구려 술이라도 들이킬 수밖에...
(번역: 이동우)
어려운 옛 한자로 지은 정도전의 추림秋霖을
국문으로 번역해 놓고 흠상한다.
'가을장마'가 이 시인에게 외롭고 쓸쓸하며
슬픔마저 느끼게 하는 시상을 떠오르게 한 것 같다.
어찌 보면 싸구려 술이라 고급 자기 술병에 담기지 못하고
진흙으로 싸게 구워낸 술병에 담긴 술이나 먹어야 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는 당대의 개혁파, 혁명가로 조선 개국의 일등 공신이었지 않은가.
하지만 정치적으로 자신의 삼봉철학(재상의 나라: 현대적 의미로 입헌군주제)을
펼쳐보려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피살당했다.
그의 드라마틱한 생애도 돌아보며 가을장마를 맞이한다.
(글: 이동우)
오늘도 날씨는 흐리지만
지겹게 이어지던 가을장마는 이제 끝났지 싶습니다.
풍요롭고 아름다운 계절 가을에는
모두의 마음이 넉넉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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