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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剛山도 息後景 - 풀잎처럼 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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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록 - 윤동주/180302

서까래 2018. 3. 2. 12:49

참회록 -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 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윤동주와 창씨개명

 

윤동주의 시 '참회록'의 말미에는 이 시를 쓴 날짜가 1942124일로 적혀 있다. 물론 이 날짜는 그 이전부터 숱한 생각을 되풀이하며 써 오던 작품을 마침내 완성해서 최종적으로 적어 놓은 것이겠다. 윤동주는 '참회록'을 완성하기 한 달 전쯤 연희전문학교를 졸업(19411227)하고 고향에 돌아와 있었다. 1941128, 일제는 진주만을 기습하여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는데, 이러한 급박한 시국에 따른 학제 단축으로 졸업이 2~3개월 정도 앞당겨졌던 것이다. 그러니까 윤동주는 서울 유학을 마치고 고향인 북간도 용정으로 돌아와 겨울을 보내면서 '참회록'을 쓴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서울로 와서 모교인 연희전문학교에 '평소동주(平沼東柱)'로 창씨개명한 이름을 계출하였던 바, 연전 학적부에 그 계출한 날짜가 정확히 1942129일로 기록되어 있다.

 

윤동주가 창씨개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현해탄을 건너 일본에 가려면 도항 증명서를 발급받아야만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창씨 개명을 할 도리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윤동주가 동경에 있는 릿쿄(立敎) 대학 영문과에 입학한 것은 194242일이었다. '참회록'은 이러한 행적과 관련된 시인의 고뇌가 가득히 어려 있는 작품이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것은 창씨개명계를 제출하기 불과 닷새 전에 이 시를 완성해서 적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해 치욕스럽게도 창씨개명계를 내야 했던 그 즈음의 시인의 내면을 '참회록'에서 고백하고 있으리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 일본 유학을 결정하고 그를 위해 자신의 손으로 창씨개명계를 제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각오했을 때, 그 뼈아픈 욕됨으로 인해 쓰인 시가 곧 '참회록'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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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등(吾等)은 자()에 아() 조선(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하노라.

 

어제가 3.1절이었으니 삼월이 시작되었나 봅니다.

애국지사와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뜻과 희생정신에

그저 머리를 조아릴 뿐입니다.

 

반면,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나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이 정치하는 사람들 중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각계각층에 정말이지 가관도 아닌 것 같습니다.

 

힘을 가진 수구꼴통들의 갑질,

뻔뻔하고 추접스러운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참회가 아니라

우리들 눈앞에서 사라지는 걸 겁니다.

 

이왕 종기가 생겼으니 아주 푹 곪게 만들어서

시원하게 짜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희망사항입니다.

 

새해가 시작되는 건 1월이지만

진정한 시작은 삼월일 겁니다.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처럼

좋은 소식들만 새록새록 피어나고

우리네 마음속에 생기가 넘치는 3월이었으면 좋겠습니다.

3월 한달 내내 맑고 밝은 기운이 넘치시기를...

 

테너 엄정행의 선구자

https://youtu.be/Ywxkx2zpjJ8

 

양희은의 상록수

https://youtu.be/KjB5SQH6mg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