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보리암 범종 밑의 항아리
독 짓는 젊은이가 처음 만든 항아리는 썩 잘 만들어진 항아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아래위가 좁고 허리가 두둑한 항아리로 태어난 자기 자신을 대견스럽고 기쁘게 생각했다.
항아리는 그 누군가를 위해,
그 무엇을 위해 쓰여지는 존재가 되고 싶었지만
뒷간 마당가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가을 날, 젊은이가 삽을 가지고 와 항아리를 땅속에 묻었다.
항아리는 이제서야 남을 위해 쓰여질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항아리는 오줌 독이 되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은 오줌을 누고 갔고,
가슴께까지 오줌을 담고 살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해 봄,
페허가 된 가마터에 사람들이 절을 짓기 시작했다.
몇 해에 걸쳐 절을 짓고 종을 달았다.
그런데 종소리가 탁하고 공허하다고 주지스님은 고민을 하였다.
그러다가 주지스님에게 우연히 발견된 항아리는 종각 밑에 묻히게 되었다.
항아리를 종 밑에 묻고 종을 치자 참으로 맑고 고운 소리가 울려나왔다.
항아리는 자기가 종소리가 된 게 아닌가 하고 착각 할 정도였다.
오랜 세월을 참고 기다려 영혼의 소리를 내는 항아리가 된 것이다.
.............................
못난 모습으로 태어나 오줌독으로 살아왔지만 마침내 범종 소리를
담아내는 공명통이 될 수 있었던 항아리........
어쩌면 우리 인간의 삶, 한 단면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어렵고 힘든 자신의 처지를 묵묵히 참으며 견디어 온 그 댓가로
만민의 가슴에 평온을 담아주는 범종 소리를 내는데 일조를 하는
그 거룩함, 고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
같아 올려 보았습니다.
위의 글은 "정호승 시인,의 동화 <항아리>에 나오는 글로
현재도 남해 보리암 범종 밑에 묻혀있다 합니다.
모셔온 글
남해 보리암에 가기 전에 니 글을 읽었더라면
한번 자세히 살펴보았을 터인데...
다음에 보리암에 갈 기회가 있으면 한번 자세히 살펴보아야겠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봅니다.
물론 게 중에는 미처 제 역할을 하지도 못하고 간 사람도 있을 것이고
너무 늦은 시기에 제 역할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낙락장송이 아니라고 한탄할 필요는 없습니다.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죠?
대들보감이 아닌 나무로 대들보를 만들면
머잖아 그 집은 무너지고 말겁니다.
기둥이나 대들보가 되려면 더 장구한 세월동안 기다리며
모양도 가다듬고 몸집도 키워야 되지 않을까요.
기둥이나 대들보감이라면 언젠가는 그리될 것입니다.
하지만 산속의 나무들이 모두 대들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또 대들보만으로 집이 지어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하며 삽니다.
시원찮은 대들보가 될 바에는 차라리
튼튼한 서까래가 되거라.
이 사회에 기둥이나 대들보는 그리 많이 필요치 않습니다.
지붕의 무게를 받쳐주는 수많은 서까래들의 역할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대들보감이라면 대들보로 쓰여야 할 것이고
대들보감이 못되면 튼튼한 서까래로 쓰이는 것도 가하리라 생각됩니다.
간장 종지에 된장을 담글 수 없듯이...
지방선거가 끝나 당선의 기쁨을 누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또 많은 이들은 뜻을 이루기 위해 와신상담할 겁니다.
그릇이 되는 분들은 꿈을 이루었으면 좋겠고,
그릇이 안 되는 이들은 이쯤에서 족함을 알고
물러서는 것도 나라와 국민들을 위하는 길이 아닐까요?
월요일같은 목요일도 깊어갑니다.
편안한 밤 되시길....
바비킴의 “소나무”
엄정행의 “선구자”
'카톡카톡 > 2018 보낸카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상과 수상, 심상/180620 (0) | 2018.06.20 |
---|---|
새로운 나뭇가지 /180619 (0) | 2018.06.19 |
마음이 맑아지는 글/180613 (0) | 2018.06.13 |
바라기와 버리기 /180612 (0) | 2018.06.12 |
만약과 다음/180609 (0) | 2018.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