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님의 침묵
//한 용 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알 수 없어요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리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의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 못한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남은 재가 다시 시름이 됩니다
그칠 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오늘부터 장마가 시작된다던데,
내린다는 비는 아니 오고
아침부터 밀려온 짜증스러움은
낮술 한잔으로도 가시지 않는다.
차라리 비라도 시원스럽게 쏟아져 내린다면 좋으련만
온실처럼 하늘을 덮고 있는 구름의 형상이
마치 뭔가 말을 해야 할 사람이
침묵하고 있는 듯한 답답함을 안겨준다.
그래서인지 한용운님의 님의 침묵이란 시가 떠올라
좋아하는 한용운님의 시 두수 띄워봅니다.
다 아시는 시겠지만 한 번 더 감상하시고
맑고 좋은 기운을 받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비도 이왕 오려거든
시원스럽게 쏟아져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지인들과 며칠간 외유를 떠납니다.
소식이 없어도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여기셨으면 합니다.
고온다습한 장마철이지만
밝고 건강하게 지내시길 빕니다.
오누이의 “님의 기도”
채은옥의 “빗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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