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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지절(立春之節)에 즈음하여.../200205

서까래 2020. 2. 5. 18:39

입춘지절(立春之節)에 즈음하여...

 

어제가 봄이 들어선다는 입춘(立春)이었는데

봄다운 훈풍은 불지 않고

몰려오는 건 입춘한파와 신종코로나 공포다.

 

겨울이 겨울답지 않은 탓인지 봄이 온대도

봄답지가 않아 보인다.

 

그래선지 문득 떠오른 게

봄의 흥겨움을 노래한 정극인의 상춘곡과

이역 땅 멀리 끌려가 봄이 와도

봄을 느낄 수 없었던 왕소군의 애달팠던 삶을

표현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고사였다.

 

때는 바야흐로 입춘지절인데

얼어붙어야할 물은 얼지 않고

풀려야 할 것들은 모두 얼어붙는다.

 

그래도 봄은 봄,

일단은 봄을 노래해야 하지 않겠는가?

 

엊그제 겨울 지나 새 봄이 돌아오니

도화행화(桃花杏花)는 석양 속에 피어 있고

녹양방초(綠樣芳草)는 가랑비 속 푸르도다.

 

칼로 마름질했는가, 붓으로 그려 내었는가

조화신공이 물물(物物)마다 헌사롭다.

 

수풀에 우는 새는 춘기를 못내 겨워

소리마다 교태(嬌態)로다

물아일체이니 흥()인들 다르겠는가.

 

사립문에 걸어보고 정자(亭子)에 앉아 보니

소요음영하여, 산일(山日)이 적적한데

한중진미(閑中眞味)를 알 이 없이 혼자로다

 

이봐 이웃들아, 산수(山水) 구경 가자꾸나

답청(踏青)은 오늘 하고

욕기(浴沂)는 내일(來日) 하세

 

아침에 채산(採山)하고 저녁에 낚시하세

갓 괴어 익은 술을 갈건(葛巾)으로 걸러놓고

꽃나무 가지 꺾어 수놓고 먹으리라

 

- 정극인의 상춘곡(賞春曲) 중에서

 

그리고는 봄답지 않은 봄노래를 읊어봅니다.

요즘 신종코로나 때문에 중국을 떠올리고 싶지 않으시겠지만

이건 코로나바이러스가 없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春來不似春이라는 문구는

변방에 끌려가 외로움과

고향에 대한 애끓는 그리운 마음 때문에

시들어 가는 왕소군의 애끓는 모습을 묘사한

시인 동방규의 昭君怨(소군원)이라는 시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自然衣帶緩 (자연의대완) 자연히 옷 띠가 헐렁해지니

非是爲腰身 (비시위요신) 이는 허리 몸매 위함이 아니었도다.

 

- 동방규의 소군원(昭君怨) 중에서

 

그 유래를 간략히 살펴 볼 테니

바쁘신 분들은 여기서 그만 돌아들 가시지요..

 

중국 4대 미인은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초선(貂蟬), 양귀비(楊貴妃)라고

중국 사람들이 규정하고 있는데,

 

4대 미인을 한마디로 표현해서

沈漁落雁(침어낙안), 閉月羞花(폐월수화) 라고 한답니다.

 

물고기로 하여금 부끄러워 물밑으로 숨게 만들었다는

월나라 미인 서시의 미모는 沈魚(침어)이고,

거문고 타는 모습에 반한 기러기가 날갯짓을 멈춰 떨어졌다는

왕소군의 미모는落雁(낙안)이며,

 

고개 들어 달을 보자 달도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었다는

초선의 미모는 閉月(폐월)

그리고 꽃을 건드리자 꽃도 잎으로 가리며 부끄러워했다는

양귀비의 미모는 羞花(수화)라고 한다네요.

 

제가 뜬금없이 중국4대 미인을 들먹인 것은

춘래불사춘이라는 시귀(詩句)

왕소군과 관련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왕소군은 나라 원제(元帝) 때의 궁녀로 절세의 미녀였지요.

원제는 후궁들이 많아 일일이 얼굴을 볼 수가 없어서,

모연수(毛延壽)라는 궁중화가에게 후궁들의 초상화를 그려 바치도록 하여

마음에 드는 후궁을 낙점하여 침소에 들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후궁들은 모연수에게 뇌물을 주면서 잘 그려주도록 간청하였는데,

 

왕소군만은 뇌물을 주지 않아

모연수는 그녀의 얼굴을 매우 추하게 그려 바쳤으므로,

황제는 왕소군을 곁에 두지 않았지요.

아니, 아예 왕소군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해야겠지요.

 

그러던 중 흉노족의 왕 호한야(胡韓耶)가 한나라의 미녀로 왕비를 삼기를 청하자,

황제는 추녀로 잘못 알고 있던 왕소군을 그에게 주기로 하지요.

왕소군이 흉노로 떠나는 날 처음으로 왕소군을 실제 보게 된 황제는

격노하여 모연수를 죽여 버립니다.

 

그리하여 절세의 미모를 지녔음에도 불행히도 왕과 마주할 기회를 얻지 못해,

오랑캐의 땅으로 떠나는 왕소군의 가련함과 슬픔을 읊은 이태백의 시가 있고

 

<昭君怨>(소군원) - 이백

 

昭君拂玉鞍 (소군불옥안) 소군이 옥 안장 추어 올려

上馬涕紅頰 (상마체홍협) 말에 오르니, 붉은 두뺨에는 눈물이 흐르네.

今日漢宮人 (금일한궁인) 오늘은 한나라 궁녀이지만,

明朝胡地妾 (명조호지첩) 내일 아침 이면 오랑캐 땅 첩이 되는구나.

 

그리고 春來不似春이라는 문구는

위에서 본 동방규의 昭君怨(소군원)이라는 시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졸지에 오랑캐 땅으로 끌려가 흉노족 왕의 첩이되어

고향산천을 그리워하며 말라 시들어 가는 천하절색 왕소군의

애절함을 표현한 시인데, 말도 통하지 않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봄이 온들 어찌 봄날의 흥취를 느낄 수 있었겠습니까?

 

입춘지절을 맞아 상춘곡을 노래하고 싶으나

우리의 처지가 이래저래 왕소군의 처지와

크게 다를 바가 없으니 이를 어찌하오리까?

 

그래도 봄은 봄인가 보더이다.

지난 일요일 마나님을 대동하고

잠시 강진 나들이를 다녀왔지요.

 

담양 소쇄원과 완도 부용동과 더불어

호남의 3대 정원으로 일컬어지는 강진 백운동 원림과

월출산 다원을 둘러보고

드라이브 겸 무위사와 백련사까지 다녀왔지요.

 

어쩌면 동백숲이 우거진 곳들을 찾아가

마님께 때 이른 동백꽃을 보여 드리고 싶었던 게지요.

 

백운동에도 무위사에도 그리고 백련사에도

3,4월에 핀다는 붉은 동백꽃들이 피어나고 있더군요.

아직 절정은 아니라지만 제법 볼만하게 피었더군요.

 

그리고 무위사를 둘러보던 중 저만치에 있는 나무에

붉은 빛이 감돌아 다가가 보았더니

벌써 홍매화가 만발했더라구요.

이른 봄꽃을 즐기는 것도 행복이기는 하나

이 철없는 계절들은 어찌하고

철딱서니 없는 이 시절은 어찌해야 할런지요?

 

눈 구경 한번 못해도 겨울은 지나가고

때가 됐다며 눈치도 없이 가까이 다가오는 봄,

 

철딱서니 없는 봄이라도 봄은 봄.

다가오는 올 봄에는 우리 모두

더 행복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름다운 봄을 그대에게 바칩니다^^

부디 받아주소서~~~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앤딩

https://youtu.be/tXV7dfvSefo

 

박인희의 봄이 오는 길

https://youtu.be/K1-xa4LAJh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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