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창밖에는 눈보라가 몰아칩니다.
계절은 꽃 피는 춘삼월의 하반기에 접어들었는데,
우리네 마음속의 한이 서려 눈이 되어 내리나 봅니다.
요즘 우리네 신세가 일제치하의 조선인들과 비슷한
처지가 아닌가 싶어 봉선화 가사를 읊어봅니다.
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어언간에 여름 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이 예 있나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정말 봄 같지 않은 봄입니다.
때로는 계절도 속세의 시국을 따르기도 하나 봅니다.
혹한의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눈 속에서 피어나는 설중매,
영산강변 산책길을 거닐며 어제 스마트폰에 담아두었던 매화꽃이
오늘은 설중매가 되어 있더군요.
사실 설중매는 눈 속에서 피어나는 매화를 일컫는 데
피어난 후에 눈에 덮였으니
엄밀히 말하면 눈 맞은 매화라는 표현이 맞겠지요.
다행히 이곳 남부지방은 기온이 그리 낮지 않아
꽃잎이 얼어붙을 정도는 아니지만
눈에 덮인 매화꽃이 안쓰러워 보이더군요.
제철에 피었다가 눈에 덮인 매화와
하수상한 시절이 맞물린 탓인지
문득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고사가 떠올라
다들 아시는 내용이지만 다시 한번
춘래불사춘의 유래에 대해 한번 올려봅니다.
아시는 내용이더라도 잠시 머리도 식히시고
심심풀이 삼아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때 늦은 봄눈이라서 내리는 시늉이나 하고 말겠지 싶었는데
제법 많은 눈이 몰아칩니다.
불순한 날씨에 건강에 각별히 유념하시고
오늘 하루도 밝은 꿈과 희망을 안고
활기차게 보내시길 빕니다.
(음표) 김천애의 “봉선화”
(음표) 주현미의 “산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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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중국 4대 미인은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초선(貂蟬), 양귀비(楊貴妃)라고
중국 사람들이 규정하고 있는데,
4대 미인을 한마디로 표현해서
沈漁落雁(침어낙안), 閉月羞花(폐월수화) 라고 한답니다.
물고기로 하여금 부끄러워 물밑으로 숨게 만들었다는
월나라 미인 서시의 미모는 沈魚(침어)이고,
거문고 타는 모습에 반한 기러기가 날갯짓을 멈춰 떨어졌다는
왕소군의 미모는落雁(낙안)이며,
고개 들어 달을 보자 달도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었다는
초선의 미모는 閉月(폐월)
그리고 꽃을 건드리자 꽃도 잎으로 가리며 부끄러워했다는
양귀비의 미모는 羞花(수화)라고 한다네요.
제가 뜬금없이 중국4대 미인을 들먹인 것은 춘래불사춘이라는 시귀(詩句)가
왕소군과 관련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왕소군은 漢나라 원제(元帝) 때의 궁녀로 절세의 미녀였지요.
원제는 후궁들이 많아 일일이 얼굴을 볼 수가 없어서,
모연수(毛延壽)라는 궁중화가에게 후궁들의 초상화를 그려 바치도록 하여
마음에 드는 후궁을 낙점하여 침소에 들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후궁들은 모연수에게 뇌물을 주면서 잘 그려주도록 간청하였는데,
왕소군만은 뇌물을 주지 않아
모연수는 그녀의 얼굴을 매우 추하게 그려 바쳤으므로,
황제는 왕소군을 곁에 두지 않았지요.
아니, 아예 왕소군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해야겠지요.
그러던 중 흉노족의 왕 호한야(胡韓耶)가 한나라의 미녀로 왕비를 삼기를 청하자,
황제는 추녀로 잘못 알고 있던 왕소군을 그에게 주기로 하지요.
왕소군이 흉노로 떠나는 날 처음으로 왕소군을 실제 보게 된 황제는
격노하여 모연수를 죽여 버립니다.
그리하여 절세의 미모를 지녔음에도 불행히도 왕과 마주할 기회를 얻지 못해,
오랑캐의 땅으로 떠나는 왕소군의 가련함과 슬픔을 읊은 이태백의 시가 있고
<昭君怨>(소군원) - 이백
昭君拂玉鞍 (소군불옥안) 소군이 옥안장 추어 올려
上馬涕紅頰 (상마체홍협) 말에 오르니, 붉은 두 뺨에는 눈물이 흐르네.
今日漢宮人 (금일한궁인) 오늘은 한나라 궁녀이지만,
明朝胡地妾 (명조호지첩) 내일 아침 이면 오랑캐 땅 첩이 되는구나.
그리고 春來不似春이라는 문구는
변방에 끌려가 외로움과 고향에 대한 애끓는 그리운 마음 때문에
시들어 가는 왕소군의 애끓는 모습을 묘사한
시인 동방규의 昭君怨(소군원)이라는 제목의 시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昭君怨>(소군원) - 동방규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自然衣帶緩 (자연의대완) 자연히 옷 띠가 헐렁해지니
非是爲腰身 (비시위요신) 이는 허리 몸매 위함이 아니었도다.
이처럼 졸지에 오랑캐 땅으로 끌려가 흉노족 왕의 첩이되어
고향산천을 그리워하며 말라 시들어 가는 천하절색 왕소군의
애절함을 표현한 시인데, 말도 통하지 않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봄이 온들 어찌 봄날의 흥취를 느낄 수 있었겠습니까?
현세의 우리처지나 왕소군의 그 때 처지나
봄이로되 봄을 느끼지 못하는 심정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이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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