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마이카상 / 김태정 이젠 너를 갈아치울 때가 되었나보다네가 낡아서가 아니야이십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해온네가 이젠 무서워졌다무서워졌다 나의 무표정함까지도 거뜬히읽어낼 줄 아는 네가,반질반질 닳아버린 모퉁이 만큼 노련해진 네가너를 펼쳐놓은 순간부터시를 쓸지 책을 읽을지아니면 밥을 차려 먹을지내 행동을 점칠 줄 아는 네가 무서워졌다네 앞에서 시를 쓴다는 것이네 앞에선 거짓말을 못한다는 것이 무서워졌다이십년 전이나 이십년 후나변함없이 궁핍한 끼니를 네게 보여야 한다는 것이불편해졌다책상도 되고 밥상도 되는 네 앞에서시도 되지 못하고 밥도 되지 못하는나의 현재가 문득 초라해졌다시가 밥을 속이는지밥이 시를 속이는지죽도 밥도 아닌 세월이 문득 쓸쓸해졌다이 초라함이,이 쓸쓸함이 무서워졌다네 앞에서 발바닥이 되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