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내일아침 일찍 산에 갈지 모르는데, 아침에 뭘 먹을 거야? 돈까스 해 줄까?”
“그래”
"아빠 일찍 나갈거니까 핸드폰 알람 맞춰 놓고 자라.“
어젯밤 아들하고 주고 받은 대화다. 영락없는 홀아비 신세다.
아내가 화요일 날 집을 나갔으니 벌써 며칠 짼가?
멀리 서울에서 공부하는 딸들을 만나 살펴보기 위함이니 흔쾌히 받아들여야 할 일이지만,
남자들만 남겨두고, 특히 지 몸 하나도 움직이기 싫어하는 막둥이 아들에다
말썽꾸러기 고양이 케로까지 맡겨놓고 간 집사람이 기다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건 그렇고 불현듯 눈을 뜨니 한 밤중같다.
지금이 몇 시야 하고 눈을 부비며 시계를 보니 6시 40분이다. 이런 제기럴 늧잠을 잤구나,
그런데 왜 이렇게 어두운거야 하고 베란다 밖을 쳐다보니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다.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짙은 안개에다 바닥마저 축축하게 젖어 보이는 게 비까지 온 것 같다.
아! 백양사 단풍구경이고 뭐고 종 쳤구나. 안개에 비까지 내렸으면 단풍이고 산행이고
모두 글렀구나 싶어 다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우려다가......
문득 안개와 단풍이 어우러진 풍경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치면서
안개가 끼면 낀 대로 비가 오면 우산을 받고서라도 가는 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래, 까짓 거 이왕 맘먹은 거 한번 나서보자 라고 마음을 다잡고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일요일은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뵈야 하고, 딸들 만나러간 집사람이 토요일 아침차로
내려오겠다고 해서 토요일에는 새벽같이 일찍 일어나 단풍이 절정을 이룬다는
백양사 백암산을 산행하고 시간에 맞춰 집사람을 맞으러 갈려고 마음먹고 있던 터다.
그리고 토요일 산행을 하기 위해 이번주는 금요일 밤 늧도록까지 급한 업무들을
모두 처리해 두었는데 날씨가 안 좋다고 늧잠이나 자기엔 너무 아쉽지 않은가?
서둘러서 가스레인지를 켜고 돈가스를 구워 접시에 담아 놓고 씻는 둥 마는 둥
배낭을 메고 나서려는데, 아차차 보온병만 씻어 놓고 커피도 타놓지 않았다.
서둘러 물을 끓여 보온병에 붓고 커피를 탔는데 맛을 보니 완전 한약수준이어서
절반을 버리고 다시 물을 부었는데도 산에 가서 한잔만 마시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물도 챙기지 않았다. 물을 챙기고 배낭을 메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다 보니
이번엔 모자를 놔두고 왔다. 에휴 마음만 너무 급했나 보다.
그렇게 7시 20분에 아파트를 나서서 김밥만 사서 챙기고 백양사를 향해 차를 달리는데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으나, 안개가 도무지 걷힐 기세가 아니다.
그런데 한재골에 들어서니 안개가 다소 옅어지고 주변 풍광이 눈에 희미하게 들어오는데
잘하면 오늘 대박이 날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치고 지나간다.
사실 그동안 백양사를 수십번 다니면서도 백암산 정상에는 한번도 올라보지 못 했었다.
봄이면 벚꽃, 가을이면 단풍구경, 석탄일엔 백양사나 천진암까지, 그
리고 심심하면 백양사 입구까지 드라이브 등등 1년에도 몇 번씩 다니면서도 등정을 못해
금년에는 반드시 백암산에 오르리라 벼르고 있던 터에 마침 기회 아닌 기회가 찾아왔는데,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가 않았다.
물론 집사람과의 산행은 항상 즐겁지만 서로 보조를 맞추어야 하기에 욕심껏 산천을
누빌 수 없다는 한계는 어쩔 수가 없다. 날로 개선되고는 있지만.....
안개가 자욱해도 한재골에서 백양사까지의 드라이브는 사시사철 언제 하더라도
즐겁기가 그지없다.
백양사 입구에 도착하니, 날씨 탓인지 아직은 생각보다 차들이 많지 않고
곱게 물든 단풍과 함께 백학봉이 희미하게 눈앞으로 다가온다.
7시 20분에 집을 출발하여 8시에 백양사 입구에 도착하여 걸어들어가 백양사를 둘러보고
8시 56분에산행을 시작하여 9시 22분 약사암, 10시 14분 백학봉을 거쳐 11시 6분 상왕봉,
11시 27분 능선사거리, 11시 36분 사자봉을 지나 점심을 때우고, 청류암 삼거리에 도착하니
12시 55분, 가인마을에 들어서니 오후 1시 13분이고 주차장으로 돌아온 시각이 1시 30분인데,
마침 집사람이 늧게 출발하는 바람에 시간적 여유는 충분하다.
여유롭게 출발할려고 차문을 열고 시동을 켜는 순간, 아차 싶었다.
짙은 새벽안개 때문에 미등을 켜놓고 깜빡했던 것이다.
서둘러서 보험 출동서비스에 연락을 하고 입구쪽으로 걸어가 보는데 차량행렬은
끝을 모르게 이어져 있고 주차공간이 부족해 차들이 움직일 줄을 모른다.
밖에서 들어오는 시간만해도 한두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은 분위기다.
걱정하며 한참을 걸어나가고 있는데 정비하시는 분에게서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전화가 왔다.
차에 와 있다고 빨리 오란다. 한참을 *빠지게 달려가 보니 차옆에 아저씨가 서 계신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올 수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다른 차 때문에 많은 시간을 소모해
백양사에 들어와서 일을 보고 나가려는 순간, 보험회사에서 연락이 왔다고
나에게 정말 운이 좋다고 하신다.
그래 오늘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이다.
쾌재를 부르며 집으로 향하는데, 차량행렬이 면소재지까지 이어져 있다.
성수기때는 일찍 서두르는 것이 하루의 안락과 즐거움을 준다는 사실을 아셔야지,
이 좋은 날씨에 도로에서 스트레스 받으며 아까운 시간들을 허비하다니 심히 안타깝소이다!
집에 오는 길에도 백양사에서 집에 이르는 주행코스를 조심스레 카메라에 담으며
집에 도착한시각이 오후 3시이고, 샤워를 끝내고 잠시 앉았다가 집사람 마중을 나갔다.
집에서 출발하여 백양사 가는 길과 백양사 풍경 및 백암산 산행로,
그리고 다시 귀가까지의 과정을 찍은 사진이 300매가 넘는다.
편집을 하기도 그렇고 한꺼번에 올리면 용량이 너무 많을 것 같아 상하 두개로 나누어 올린다.
사진을 간추리면 되겠지만 아마추어 답게 있는 그대로의 풍광을 느껴보길 바라는
마음임을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베란다에서 바라본 공원은 안개에 묻혀 있고 바닥마저 젖어 보인다
내려와 보니 다행이도 비는 안내렸고 안개도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 담양 한재골을 지나 백양사로 향하는 도로는 희미한 파스텔화 같은 분위기이다.
백양사 입구에 들어서니 단풍축제를 알리는 입간판이 서 있다
입구에서 주차장 가는 길
입구에서 산행코스를 정한다. 약사암을 거쳐 정상을 지나 가인마을로 내려오는 코스인데 주차장에서 부터
실제 거리는 9-10키로쯤 될 것이다. 대충 산행시간은 3-4시간쯤 걸리리라 예상하고 출발한다.
일주문을 지나 한참을 걸어들어가야 사찰이 나온다.
안내석 뒤로 백학봉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자 벌써 가슴이 뛴다
우리나라 최고령 갈참나무인데, 수령이 자그만치 700년 이란다
사찰입구의 연못
주변은 온통 찍사들로 가득하다
각진대사께서 지팡이를 꽂아놓은 자리에서 자랐다는 백양사 입구 연못가에 있는 이팝나무는
봄이면 새하얀 꽃으로 단장했다가 꽃눈을 뿌려 연못을 하얗게 물들인다
백양사 입구에서 천진암 가는 길
대웅전 뒤로는 하얗게 깍아지른 백학봉이 자태를 뽑내고,
마당에는 산사음악회 행사를 위해 쌓아 놓은 의자들이 조금 거시기 하다.
높은 산위로 늧은 일출이 있어 한컷 눌러 본다
이제 약사암을 향해 산행시작
백양사에서 약사암쪽으로 이백여 미터 쯤 올라가면 요사체같은 건물이 있는 데 설명이 없어 용도는 알 수가 없다.
이 곳에서 부터 약사암까지의 400미터 구간은 찻길이 없고, 가파른 돌길이 이어진다
약사암입구에서 바라본 전경
영천굴에서는 예불을 드리는 분들이 보이고...
굴아랫쪽에는 약수터가 있어 목을 적시고 백학봉을 향해 올라간다.
나무뿌리가 마치 바위를 감싸듯 안고 있다
위에도 계단, 아래도 계단, 약사암에서 백학봉까지는 대부분이 계단으로 구성된 급경사지다.
막상 백학봉에 오르면 아래서 바라보는 것과 달리 아스라한 절벽이 보이지 않는다.
백학봉에서 상왕봉을 거쳐 하산하는 과정은 다음 글로 이어 집니다.
DANA WI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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