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가을비 / 도종환
마음 무거워 무거운 마음 버리려고 산사까지 걸어갔었는데요
이끼 낀 탑 아래 물봉숭아 몇포기 피어 있는 걸 보았어요
여름내 비바람에 시달려 허리는 휘어지고
아름다운 제 꽃잎이 비 젖어 무거워 흙바닥에 닿을듯 힘겨운 모습이었어요
비안개 올리는 뒷산 숲처럼 촉촉한 비구니 스님 한 분
신발 끄는 소리도 없이 절을 돌아가시는데
가지고 온 번뇌는 버릴 곳이 없었어요.
사람으로 태어난 우리만 사랑하고 살아가며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만물은 제가 지고 선 세속의 제 무게가 있는가 봐요
내리는 비 한 천년쯤 그냥 맞아주며
힘에 겨운 제 무게 때문에 도리어 쓰러지지 않는
석탑도 있는 걸 생각하며
가지고 왔던 것 그대로 품어 안고 돌아왔어요.
절 지붕 위에 초 가을비 소리 없이 내리던 날.
...................................
가을비가 온다.
아직은 푸르른 잎 새 위로 소리 없이
조용히 내린다.
가끔씩 하늘거리던 나뭇가지가
바람소리에 놀라 날갯짓하면
잎 새에 머물던 빗물들이 후두둑거리며
땅바닥으로 한꺼번에 곤두박질을 치며 비명을 지른다.
비가 얌전하게 내리는 게 가을비는 맞는데
봄비 같은 분위기가 난다.
갈색으로 변해 땅바닥을 나뒹구는 낙엽위에
그리고 앙상하게 변한 가지를 적시며 내리는
황량한 가을비는 분명 아니다.
슬프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그저 평범한 가을비에
쓸쓸함과 울적함이 묻어나는 건
뜻 같지 않은 세상사 탓이리라.
하지만 어쩌랴?
흐린 날이 있으면 맑은 날도 있고
비 오는 날 우산도 없어 쫄딱 젖어
비 맞은 새앙쥐 꼴이 되는 날도 있나니...
때로는 쏟아지는 비에 흠씬 젖어보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비 탓이라고 할 수도 없는
괜한 울적함은 소주 한잔으로도 달래지지가 않는다.
마음속에 황량한 가을바람이 찾아온 걸까?
오는 비는 올지라도
비와는 무관하게 돌아가는 게 인생이다.
그렇게 그저 허허허 웃으며 또 하루를 보내야지.
소복 입은 여인처럼 조용히 찾아온 가을비에
그저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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