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때문에 삶엔 향기가 있다
바람이 부는 것은
누군가를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에게,
혹은 네가 나에게 보내는 바람엔
향기가 묻어 있다.
삶이란 게 그렇습니다.
기쁨보단 슬픔이 더 많지요.
또한 사람이란 것도 그렇습니다.
같은 양이라 할지라도
기쁨보단 슬픔을 더욱 깊게 느끼지요.
뿐만 아니라 기쁨은 순간적이지만
슬픔은 그렇지 않습니다.
슬픔의 여운은 기쁨의 그것보다
훨씬 오래인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전 그 해답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 이제는
그 까닭을 알 수 있게 되었지요.
비바람을 겪은 나무가 더욱 의연하듯
사람도 슬픔 속에서
더욱 단련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랑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헤세가 얘기했듯이
사랑이라는 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고뇌와 인내에서
얼마만큼 견딜 수 있는가를
보이기 위해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나 극한 상황이었습니다.
언제나 다만 스치고 지나간 뒤에야
그것이 내 삶의 한 부분이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차 재밌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글쎄 재밌다니
눈살을 찌푸릴 분도 있겠지만
삶이란, 전 한번
살아 볼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극한 상황이었고
언제나 최악이었지만 삶이란
어차피 곡예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그만큼 진지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그리하여 그는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늘 혼자임을 알고 있었기에
모두들 스치고 지나간 뒤에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러길 바랍니다.
- 이정하
삶의 무게를 느끼지 않고
사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 무게는 분명 다릅니다.
가뿐가뿐 배낭에 물병하나 넣고 다니는 것처럼
가벼운 사람도 있고,
산만한 돌덩이를 지는 듯
감당하기에 너무나 버거운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겹지만
그래도 감당할 만한 짐들을 지고 살아갑니다.
흔히들 고생 고생하다가 먹고 살만하니까
큰 병 걸려서 죽는다고 안타까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짐이란 건 지고 다니기에 무겁고 부담스럽지만
짐에서 벗어나는 순간 허깨비가 될 지도 모릅니다.
삶에서 적당한 짐과 적당한 긴장은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하고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합니다.
내 등에 짐이 있다는 건
어쩌면 아직은 내가 쓸모가 있다는 의미인지도 모릅니다.
월요일 같은 금요일,
또 한주가 가고
맨날 세월이 왜 이리 빠르게 가냐고
투덜거리며 살아가는 삶이지만
그래도 사는 날까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사랑하고,
즐길 수 있는 건 즐기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지요.
기온이 하루하루 조금씩 올라가는 게 느껴집니다.
여름이니까 더워야 맞는 거겠지요.
날씨가 무더워도, 사는 게 버거워도
어차피 내 인생입니다.
오늘도 힘내서 파이팅하시고
주말은 일을 하더라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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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표) 정미조의 “휘파람을 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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