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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지 않은 고요는 없다/배영순/250225

서까래 2025. 2. 25. 10:21

치열하지 않은 고요는 없다

 

적멸(寂滅)이란 개념은 불교에서는 아주 소중한 개념으로 쓰인다.

그래서 적멸을 낙으로 삼는다(寂滅爲樂)’고 말하기도 한다.

적멸은 번뇌가 소멸된 고요한 상태, 평화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말하자면 삶의 이상적 모습을 그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의 통상적 이해방식에서는 적멸은 그냥 조용한 것으로,

그냥 가만히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가령 천지가 조용한 적막강산에 들어 앉아 있어도

내 속이 시끄러우면 결코 고요할 수 없다.

또 바깥세상이 어떻든

내 마음만 고요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코 고요해질 수 없다.

 

내가 해야 할 바를 하지 않고

또 하지 않아야 할 짓을 해 놓고

그렇듯 내 인연들이 오염되어 있는데

내 마음이 고요할 수는 없다.

번뇌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니까 고요하다는 것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조용한 곳에 들어 앉아 있다고 해서

내 삶이 고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적멸이 구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령 자전거를 탄다고 하자.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가만히 멈추어 서려면 이리 비틀 저리 비틀하다가 쓰러질 것이다.

가만히 있고자 해서는 결코 고요할 수 없다.

 

그리고 바퀴가 천천히 굴러가면 바퀴살이 다 보인다.

이도 고요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아주 빨리 달리면

바퀴살이 보이지 않고 그냥 바퀴만 보인다.

마치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을 두고서 고요하다는 표현을 쓴다.

 

그러니까 고요하다는 것,

그냥 조용하다는 개념이 아니다.

치열하게 전진하는 삶,

그 속에서 번뇌와 망상이 자리할 여지가 없을 때

고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정말 고요한 것은 치열함에서만 나온다는 그런 이야기다.

머무는 바 없이 머물러야 한다는 것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삶의 품격은 얼마만큼 고민하느냐,

얼마만큼 치열하냐에 따라서 정해진다.

치열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는 삶은

구차하고 비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삶은 치열할 것을 요한다.

 

치열하다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키고 그 일관성을 지켜가는 것,

그것을 치열하다고 한다.

그리고 번뇌, 망상이 자리할 여지가 없고

잡스러움이 없을 정도로 치열한 삶,

그것을 고요하다고 한다.

 

공자는 사십에 불혹(不惑)’이라고 했다.

이도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초지일관할 수 있었다는 것,

그렇게 지행합일에 있어서 치열했기에

달리 어떤 의혹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공자는 사십에 불혹이라고 했는데,

우리 세간사 인생은 의혹만 늘어간다.

 

하늘은 의미 없는 생명을 낳지 않고

땅은 의미 없는 목숨을 기르지 않는다고 한다.

풀 한 포기도 의미 없는 목숨이 없는데,

우리네 인생이 아무 의미 없이 아무 생각 없이 떠돌다가

마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늘 생각하고 고민하고 또 행동해야 한다.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으면 죽은 것이다.

또한 생각만 하고 행동을 안 해도

거의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다.

 

적멸이란 개념도 불혹이란 개념도 밀어두기로 하자.

그러나 이것만은 다시 확인하자.

치열하지 않은 인생, 서툰 인생,

대충 사는 인생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치열하다는 것은 자신이 마주하는 문제를 비켜가지 않고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것이고

그 문제의 한가운데에 자신을 던지는 것이며

그리하여 끝내 그 문제를 소화하고 해결하는 것이다.

 

- 배영순의 방하한 생각중에서

 

이제 겨울이 서서히 물러날 채비를 하나봅니다.

아마도 며칠 남지 않은 짧은 2월과 함께

혹독했던 겨울이 작별을 고하고

따사롭고 화사한 새봄이 찾아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치열하지 않은 고요는 없다.”

제가 좋아하는 글이라서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다시 보내곤 하는 글입니다.

어쩌면 치열하게 살아오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 삶만이

진정 가치 있는 삶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로서 지긋지긋한 내란 수괴에 대한

헌재의 변론이 종결되는 날인가 봅니다.

나름 치열하게 다투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비록 페어플레이가 아닌 더티 플레이였고

거짓과 선동이 난무하는 난장판이었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아직 마무리된 건 아니지만

마치 거짓말하는 AI 로봇들을 보는 듯한

고문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거짓말을 하고 몇분도 지나지 않아 스스로 거짓임을 증명할 수 있는

거짓말계의 능력자 AI와 그 졸개들...

 

비루함과 치열함은 분명 다릅니다.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했건만,

반면교사를 자처한다면 그 또한 존재의 이유가 될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고요와 평화를 바라겠지만

그건 또 다른 치열함을 요구할 겁니다.

이 난장판이 마무리되고 나면 더티 플레이가 아닌

페어플레이에 의한 치열한 싸움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스위스가 오랜 기간 동안 영세중립국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주변국들이 작다고 예쁘게 봐줘서가 아니라

그들이 치열하리만치 자주국방에 매진해서

어느 나라도 쉽게 넘볼 수 없는 강력한 군방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치열함 없는 자유와 평화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겁니다.

 

어쩌면 삶의 가치나 국가의 존재가치도

치열함과 그로 인해 얻어지는 고요함에서 얻어지지 않을까요?

어찌 보면 이 또한 이상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치열하게 살기 위해서

치열하게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야하는 가치 있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날씨가 많이 온화해진 느낌입니다.

푸른 하늘 신선한 공기를 벗 삼아

오늘도 치열한 하루를 살아보시게요.

 

건강과 행복이 함께하는 알찬 하루 보내시길...

 

(음표) 안치환의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https://youtu.be/rESnmdgUxa8

 

(음표) 박강수의 다시 힘을 내어라

https://youtu.be/EO_-7AKg3_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