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 일기예보를 보니, “토요일 날씨는 구름 많음, 일요일은 구름 적음”이다.
산행을 가려면 구름이 적은 일요일을 택해야 하건만,
둘째 딸 비염수술 때문에 며칠 동안 집을 떠나 있는
아내가 일요일쯤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
토요일로 산행일정을 잡았는데, 어디로 간다지,
월출엘 갈까, 아님 날씨도 시원찮다는데
남창계곡으로 해서 내장산 줄기나 거닐다 올까 하다가
문득 구름 낀 월출의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눈을 뜨니 다섯시 반경, 화장실에 가서 시원스레 물줄기를 쏟아내고
한숨 더 붙이려는데 케로(고양이)녀석이 옆에 와서 낑낑 거린다.
이 자식은 시도 때도 없이 밥을 주라 보채 싼다.
납뿐 노무 새끼가 싸가지 없이 잠도 못 자게.....ㅆㅂ
녀석 밥을 주고 거실에 앉아 한숨 더 붙여야지 했는데,
시간이 그게 아니다.
오늘은 경포대 짧은 코스로 갈 계획이어서 천천히 가도 될 일이지만,
일찍 출발해서 잡히는 대로 싸 댕기다 오기로 하고 채비를 하고 여섯시 이십분 경 집을 나선다.
가면서 일용할 양식을 챙기고 차를 몰고 가며 바라보니
월출의 절반 쯤은 구름에 가려 있다.
싸묵싸묵 차를 몰아 경포대에 도착한 시각은 여덟시가 되어 가는데,
눈에 띄는 산객은 아무도 없다.
시원스런 계곡의 물소리 들으며 걷다가 삼거리에서 우측 천황봉 방향으로 향한다.
코스가 정해졌다면 바람재 방향으로 가서 구정봉에 올랐다 천황봉으로 오를 텐데,
오늘은 천황봉에 먼저 오르고 구정봉을 거쳐
싸이 말마따나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산에서다.
산 중턱 쯤 올라서니 사방이 안개에 싸여있더니 더 오르니 아래쪽으로만 안개가 깔려있다.
오호라, 중턱으로만 구름이 감싸고 있는 모양이로 구나!
온통 촉촉이 젖어있는 습한 길을 모기와 벗하여 걷다가 약수터에서 기력을 회복해 능선삼거리에 오르니
사자봉이며 천황봉이 운무에 싸여 보일 듯 말듯 선경을 뽐내고 있어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그저 서서 마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을 선경에 발이 떨어지지 않지만 가까스로 발을 떼어
통천문을 지나 천황봉에 이르니 채 열시도 되지 않았는데, 금새 사자봉이며, 주변 산세가 구름속에 갇혀 모습을 감추었다.
천황봉에서 배낭의 짐을 조금 덜기로 하고 탁배기잔을 기울이며 바라보는 주변 정경은
바람과 구름의 조화에 따라 천의 얼굴, 만의 얼굴로 수시로 바뀌는 모습이 가히 경이롭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을까 봐 자리를 털고 일어나 구정봉 방향으로 향하는데 바람재 가까이에선 난간공사가 한창이다.
조금 험하더라도 있는 그대로가 좋은데......
남근바위를 지나 바람재삼거리를 거쳐 구정봉아래에 이르니 몸이 뭔가에 빨리 듯
베틀굴 쪽의 기운에 이끌려 구정봉쪽으로 올라가니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저거시 무어시냐?
무심코 안에 들어갔다 나왔더니 아랫도리에 힘이 쭉 빠지며 후덜덜 떨린다.
이런 제기럴!
기분이 쎄하더라니만 나도 모르는 새 베틀선녀에게 당했단 말이냐?
우리 각시가 알면 난리가 날 터인데 이를 우짠다냐?
일단 시치미를 뚝 떼고 구정봉에 올라 천황봉과 향로봉을 굽어보며 길이 없더라도 향로봉에 올라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가만히 앉아 주변 정취를 즐기자면 한이 없으나 주섬주섬 일어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국보라는 마애여래좌상을 보러 내려간다.
마애여래좌상을 거쳐 들른 용암사지는 예전처럼 머위대만 무성하고 용암사지삼층석탑이 홀로 외롭다.
다시 여래좌상을 지나 삼층석탑에서 주변 산세를 감상하다 산을 올라 여래좌상 봉우리의 전망 좋은 곳에
차분히 자리를 잡고 앉아 일용할 양식을 즐긴다.
다시 구정봉 앞을 지나 향로봉입구에 이르러 향로봉 가는 길목을 보니 입산금지 푯말이 선명하다.
시간을 보니 이제 오후 두시인데 억새밭까지 갈까 도갑사까지 갔다가 돌아 올까 생각하다가
일단 가보자고 억새밭으로 향해 이 곳 저 곳 다 둘러보며 억새밭에 이르니 세시가 다되었다.
아무래도 도갑사까지는 무리겠다 싶어 한참을 머물며 주변 풍광에 빠져 있다가 오던 길을 되돌아 나간다.
향로봉 앞을 지나 구정봉 밑을 지나가는데, 안부를 묻는 친구의 카톡,
“이 친구가 대포 생각이 나는가 보다”하고 의향을 물었더니 당연히 대 환영이란다.
일단 내려가서 연락을 주기로 했는데, 내려가는 도중에 몇시에 만날거냐고 다시 카톡이 들어 온다.
여섯시 반쯤이면 되겠다 싶어 약속을 하고 내려가는데,
이 친구한테서 전화가 걸려와서 시간생각은 하지도 않고 전화 끊자마자 나와서
지하철 기다리고 있다고 몇 시에 만나기로 했냐고 묻는다.
내가 열심히 밟고 갈테니, 먼저 한잔 마시고 있으라 하고 뭣 빠지게 밟아서 약속장소 가까이 가고 있는데,
띠리링 전화가 와서 혼자서 막걸리 두병을 마셨더니 취기가 올라온다고 빨리 오란다.
천천히 마시지 얼마나 술이 고팠으면...ㅉㅉ
오랜만에 만나 탁배기 대여섯병을 더 시켜서 맛있게 나누어 먹으니, 여독이 쫙 풀린다.
친구를 택시로 배달시키고 대리운전으로 집에 와 샤워를 하고, 다시 산책길에 나서서 두어시간 동안 싸 돌아 다니다,
집에 들어와 깊은 잠에 빠져 일어나니, 아침 아홉시가 되어 가누나.
띠리링 전화를 걸어 온 아내는 오늘도 못 내려가니 아들이나 잘 챙기란다.애고....
아들녀석 밥 대충 챙겨 놓고, 대충 치우고 삼실로 향하며 또 하루를 연다.
***추신 : 곱고 예쁘고 쓸만한 짐이었으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을텐데,
술에 찌들고 별 볼일 없는 짐이라서 택시 배달이 제대로 이루어 졌다고.....^^;;
친구 다음에 시간내서 보세그랴!
**** 산행코스
집출발(06:20)→월출산 경포대탐방소(07:58)→계곡삼거리갈림길(08:03)→약수터(09:11)→경포대능선삼거리(11:38)→통천문→천황봉(09:52):휴식→바람재삼거리(11:38)→베틀굴→구정봉(12:07)→마애여래좌상(12:46)→용암사지→삼층석탑(13:06)→마애여래좌상 봉우리에서 중식→구정봉입구(14:06)→억새밭(14:58)→향로봉입구(16:07)→바람재삼거리(16:29)→경포대탐방소(17:30)
엄청나게 큰 천남성
이곳에서 오른 쪽 천황봉 방향으로
산딸나무꽃이 한창이어서 홀로 하얗다.
약수터
경포대능선삼거리
사자봉 주변의 운무가 조화를 부린다.
천황봉도 보이고...
시시각각 모습을 바꿔 놓는 운무의 조화가 신비롭다.
통천문을 지나 하늘에 오른다.
구름속에 쌓인 천황봉이 홀로 외롭게 서 있다.
뒤따라 올라온 혼자 온 아주머니가 서로 인증썃을 찍어주자해서 억지춘향 인증샷!
사바가 내 발 아래로다!
연출감독 : 구름, 촬영감독 : 햇살이
향로봉과 구정봉
향로봉
개미도 양지꽃에서 꿀물을...
돼지바위
바람재삼거리에서 구정봉으로....
왼쪽은 경포대로 하산하는 길, 다시 이곳으로 와야 한다.
쥐똥나무도 꽃을 피웠으나 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꽃보다 아름다운게 바위라 했던가?
베틀굴은 항상 목마르다.
안쪽엔 음수기 괴어있다.
구정봉 입구
구정봉
구정봉에서 바라본 주변 풍광
어디서나 보아도 보아도 질리지 않고, 찍어도 찍어도 질리지 않는다.
마애여래좌상을 만나러 내려간다.
마애여래좌상
오른 손 옆에는 협시보살이 있다.
머위밭으로 변한 응암사지 절터
다시 마애불 앞을 지나 삼층석탑으로..
삼층석탑
전망 좋고 술맛도 좋고, 캬!!! 좋다!
다시 구정봉 앞을 지나 향로봉 입구로...
향로봉 길목에 세워진 출입금지판
도갑사 방향으로......
오늘은 가히 구름의 향연이다.
억새밭전경
억새밭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광이 너무도 곱다
한참을 머물다가 오던 길로 발길을 돌린다.
향로봉 입구
다시 만난 천황의 위엄
바람제삼거리에서 경포대로 하산
시원한 계곡물에 머리를 감으니 하늘을 날 것 같다.
화장실에 진짜로 다녀갔습니다.
다시 바라보는 월출, 고맙다! 월출!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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