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사는 일에 쫓겨 살다보니, 가끔씩 짬을 내어 산책은 즐겼으나
산행다운 산행을 해본지가 한참은 된 것 같다.
이번주에는 오랜만에 산에 올라 맘껏 즐겨보고 싶은데....
사상 유례없는 폭염에 산을 오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아직은 산에 시신을 누일 나이는 아니니, 적당히 즐길 수 있는 산이면 좋겠는데,
홀로 움직이는 길이니 멀어도 그렇고, 가까이 있는 산과 계곡을 머리속에 그리다가,
문득 곡성의 청계동계곡이 떠올랐다.
동악산에서 발원하여 남동쪽방향으로 흐르는 계곡은 도림사계곡이고,
북쪽방향으로 흐르다 섬진강과 만나는 계곡이 청계동계곡인데,
임진왜란때 양대박장군께서 의병을 양성하여 왜병과 맞서 싸우셨던 유서깊은 곳이다.
그래서 청계동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동악산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계곡으로 내려와 맑고 시원한 물에 잠시 지친 몸을 식혀오기로 한다.
토요일 아침 느즈막이 일어나 아내에게 의향을 물으니
아침부터 얼굴이 뻘겋게 상기된 아내는 더워서 정신을 못차리겠다며
움직이기도 싫다며 냅다 손사래를 친다.
천천히 국도를 따라 곡성으로 향하는데, 가로수도 푸르고 산도 푸르러 얼씨구나 좋다.
주변 풍경을 즐기며 싸묵싸묵 가다보니 섬진강이 나타나고,
계곡입구에 이르니 주변도로가 온통 車山車海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곳인데,
계곡안을 들여다보니 말 그대로 텐트와 사람이 어우러져 人山人海를 이루고 있다.
입구에서부터 사삼교를 지나 폭포에 이르는 계곡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는 공간이고,
폭포 상류에 올라서면 인파가 한산해진다.
그런데 긴 장마속의 가뭄때문에 계곡물이 생각보다는 많지가 않아 다소 아쉽지만,
물놀이를 즐기기에 부족해 보이지는 않는다.
폭포에서 동악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따라 산에 오를 계획으로 폭로상류 계곡에서
시원한 막걸리와 김밥으로 허기도 때우고 잠시 쉬었다가기로 한다.
시각은 정오를 향해 달려가는데, 바로 등산로로 접어들 엄두가 나지 않아
일단 계곡을 따라 오르기로 하고 골짜기를 따라 걷는데,
계곡을 잠시만 벗어나도 숨이 턱턱 막혀온다.
청계동계곡의 길이가 대략 4키로 남짓되고 상류로 가면서 여러 갈래로 나뉘는데
한참을 오르다보니 인적은 없고, 시원스러운 연못이 손짓을 한다.
청계동계곡의 시원(始源)에 가까운 이 곳에서는 아마도 신선이나 선녀,
그리고 나뭇꾼 정도가 목욕을 즐기던 곳이리라.
계곡에 몸을 담그려면 기본적으로 중요한 곳을 가려야 할 일이지만
아무도 없는 심산계곡에서 땔나뭇꾼이 목욕을 하면서 무슨 체면치레가 필요하랴 싶어
실례를 무릅쓰고 홀라당 벗고 계곡에 입수하니 신선이 따로 없도다.
이 시원한 계곡에 몸을 담그고 앉아 오이를 통째로 씹으며 마시는 얼음 막걸리의 맛이라니...........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시원함과 개운함,
껄껄껄.........
이 순간만큼은 세상사 뿐만 아니라 각시까지도 모두 잊혀져 나의 것이 아니다.
"어허! 조타!!!"
땔나무꾼 주제에 신선놀음을 너무 오래하는 것 같아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골짜기에 난 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는데,
아까와는 달리 발걸음이 하늘이라도 날 듯 가볍고 경쾌하다.
그런데, 얼레!
갑자기 정상까지 이어질 것처럼 보였던 길이 뚝 끊겨버린다.
시각은 오후 세시를 향해가고, 기어이 오르려면 못 오르랴만,
산에 못올라 환장한 사람도 아닌데, 굳이 고생을 사서 할 일도 아니고
폭포수까지 내려갔다가 산을 오르기엔 시간이 짧아 보인다.
한참 동안을 걸었지만 몸에 아직 열기는 느껴지지 않지만,
아까 물속에서 맛보았던 그 감흥이 잊혀지지 않는다.
"에라,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신선놀음이나 더하다 가자.'
발길을 되돌려 내려오다 아까보다 조금 더 깊숙한 곳에 둥지를 틀고 앉아
남은 막걸리와 함께하니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뿌듯하고도 상쾌하다.
한참동안 머물다가 입기 싫은 속세의 옷을 걸쳐 입고,
인간계를 향해 발길을 옮기는데,
내려가기가 싫었음인지 계곡의 바위에 미끄러져 두번이나 엉덩방아를 찧어
지금도 엉치가 얼얼하다.
"에고! 신선놀음에 엉치깨지는 줄 몰랐구나!"
이 무덥고 찌는 듯한 여름에
언제 시간내서 신선놀음 한번 안해 보실라우.
대신 내려올 땐 정말 조심해야 한다우.
부분적으로 엄청 미끄럽거등.
집에 와서 궁벵이선녀님께 셀카사진 보여줬다가
아무리 사람이 없는 곳이라도 아무데서나 고추내놓고 목욕했다고
맞아 뒈질뻔 했다!!!
휴!!!!!!!!!
담양 메타세콰이아 가로수길을 지나...
계곡 인근 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했고,
섬진강은 조용히 흐른다.
계곡입구는 아이들의 놀이터
몇년전에 이 곳에 의병체험장을 조성한다고 기본계획을 수립했던적이 있었다..
계곡입구에서 사삼교까지는 계곡이 난민촌을 방불케 한다.
사삼교 위의 물놀이장
아담한 청계동폭포,
폭포를 지나면 인파가 한산해지기 시작한다.
이 정도의 길이면 등산로와 연결되어 있을 것 같은데...
별로 가파르지 않은 골짜기 길임에도 한참을 오르다 보니 숨이 목까지 차오른다.
인적이 없는 깊은 산중에 나 홀로 입욕을 했더니
이 곳이 바로 천국이고,
나뭇꾼도 신선이 부럽지 않구나!
근데 하늘에선 선녀님이 내려다 보고 계시고
잠자리 한마리가 두눈을 부릅뜨고 바라보고 있다.
설마하니 나뭇꾼 주제에 신선흉내낸다고 신선님께 일러바칠려는 건 아니겠지.
꿩의다리꽃도 피어있고, 한참을 오르다보니 길이 사라져 버린다.
워매!
여기도 깊숙하니 좋구만...................
어허!! 시~원하다!
참나리꽃에도 잠자리 한마리가....
그렇게 홀로의 신선놀음이 끝나고 집으로 향한다.
우씨! 엉덩방아만 안 찧었으면 얼마나 좋아!
하마터면 진짜 엉덩이 깨질뻔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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