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그네내 이름에 딸린 것들고향에다 아쉽게 버려두고바람에 밀리던 플라타나스무거운 잎사귀 되어 겨울 길을 떠나리라구두에 진흙덩이 묻고담쟁이 마른 줄기 저녁 바람에 스칠 때불을 켜는 마을들은빵을 굽는 난로같이 안으로 안으로 다스우리라그곳을 떠나 이름 모를 언덕에 오르면 나무들과 함께 머리 들고 나란히 서서 더 멀리 가는 길을 우리는 바라보리라재잘거리지 않고누구와 친하지도 않고언어는 그다지 쓸데없어겨울옷 속에서 비만하여 가리라눈 속에 깊이 묻힌 지난해의 낙엽들같이낯설고 친절한 처음 보는 땅들에서미신에 가까운 생각들에 잠기면겨우내 다스운 호올로에 파묻히리라얼음장 깨지는 어느 항구에서해동의 기적소리 기적(奇蹟)처럼 울려와 땅속의 짐승들 울먹이고먼 곳에 깊이 든 잠 누군가 흔들어 깨울 때까지 - 김현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