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여행의 시작

기쁨은 사물 안에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다!

金剛山도 息後景 - 풀잎처럼 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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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게 길을 내준 돌담 /221207

바람에게 길을 내준 돌담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중에 돌로 만든 담이 있습니다. 그 돌담은 시멘트로 두껍게 막아놓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통과하지 못하게 켜켜이 둘러막은 담이 아닙니다. 엉성하리 만큼 틈새가 있고. 견고함에 있어서는 어디 내세울 것이 없는 그런 돌담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긴 돌담은, 모진 바람을 잘도 이겨냅니다. 틈새 때문입니다. 돌담이 무너지지 않도록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내준 돌담 사이의 그 엉성한 틈새 때문입니다. 바람이라는 장애물에 맞서 대항하기보다 지나가도록 길을 내어주는 것. 그것이 돌담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어려움이 찾아오고 있습니까? 찾아올 고통에 대비해 단단히 무장하고 높이 더 높이 담을 쌓기보다 바람을 통과하게 하는 돌담처럼 지나가게 하십시..

12월의 기도 / 양광모 /221201

12월의 기도 / 양광모 12월에는 맑은 호숫가에 앉아 물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듯 지나온 한 해의 얼굴을 잔잔히 바라보게 하소서 12월에는 높은 산에 올라 자그마한 집들을 내려다보듯 세상의 일들을 욕심 없이 바라보게 하소서 12월에는 넓은 바닷가에 서서 수평선 너머로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듯 사랑과 그리움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게 하소서 12월에는 우주 저 멀리서 지구라는 푸른 별을 바라보듯 내 영혼을 고요히 침묵 속에서 바라보게 하소서 그리고 또 바라보게 하소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홀로 타오르는 촛불을 바라보듯 내가 애써 살아온 날들을 뜨겁게 바라보게 하소서 그리하여 불꽃처럼 살아가야 할 수많은 날들을 눈부시게 눈부시게 바라보게 하소서. ...................... 한해의 끝자락 12월이 시..

설야(雪夜) /김광균/221130

설야(雪夜) /김광균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밑에 호롱불 여위어가며 서글픈 옛 자췬양 흰 눈이 나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을 하고 흰 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 11월을 보내는 날입니다. 날씨가 제법 차가워지고 찬바람이 몰아칩니다. 이제 겨울이 느껴집니다. 이렇게 11월과 함께 가을은 떠나고 혹한의 겨울이 시작되나 봅니다. 가는 계절은 언제나 아쉬웁지만 하얀 설경과 더불어 행복하..

누가 뭐라든 당신 꽃을 피워 봐요/221129

누가 뭐라든 당신 꽃을 피워 봐요 작다고 피다 만 꽃 없고 크다고 사철 피는 꽃 없어요 꽃이 예쁜 건 하나하나 다르기 때문이고 꽃 핀 모습 기쁜 건 맨땅 뚫고 일어나 비바람에 굴하지 않고 초록으로 애쓰다가 자기만의 절정 펼쳤는데 어떻게 감동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옆 꽃 눈치 보지 않고 다른 꽃 부러워하지 않는 당당한 저 꽃처럼 ​ 기다릴게요 누가 뭐라든 당신 꽃을 피워 봐요 - 작자 미상의 첫사랑 중에서 추위를 부르는 마지막 가을비가 내립니다. 비록 하루를 남겨놓았지만 아직은 11월이니 가을비가 맞겠지요. 새벽에는 비가 그쳤더군요. 그리고 기온이 의외로 포근하더군요. 비에 젖은 메타세콰이아 잎들이 떨어져 쌓이며 바닥을 융단처럼 빨갛게 물들이고 있고, 까치를 비롯한 새들이 유난히도 지저귀는 평화로운 아침..

가을비 /김시탁/221128

가을비 /김시탁 가을비는 외투보다 가슴을 먼저 적신다 우체통보다 사연을 먼저 적신다 우산을 쓰고도 비를 맞는 사람들 대낮부터 낮술에 취해 벌겋게 달아오른 사람들 가을비 맞으며 길 떠나면 발길보다 마음이 먼저 젖는다 사랑이 먼저 젖는다 ....... 11월을 보내고 12월을 맞이하는 한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입니다. 새벽하늘은 구름한점 없이 맑고 별들이 총총해서 오늘 비가 내린다는 말이 실감이 나지 않더군요. 하지만 아침이 되니 벌써 구름이 끼기 시작합니다. 이번 비가 내리면 추워진다고 합니다. 비도 와야하고 겨울이 다가오니 날씨도 추워지는게 당연합니다만, 갑작스러운 기온의 변화는 건강에 위협이 되기도합니다. 다가오는 추위에 대비하시고 건강도 챙기시며 알차고 행복한 한주 즐거운 마음으로 열어가시길 빕니다. (..

옛날의 그 집 /221125

옛날의 그 집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

추일서정 /김광균/221124

추일서정 /김광균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 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荒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 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 ............ 이제 가을이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매일 아침에 거니는 영산강변의 숲길도, 점심시간이면 거의 매일 ..

가을비 /김병환 /221123

가을비 /김병환 가을비 나뭇잎 적시니 은행잎 힘없이 떨어져 지붕이 노랗게 물든다 가을비 머리에 내리니 생각이 하얗게 변하고 다리에 냉기가 흐른다 가을비 온몸을 적시니 뜨끈한 어묵이 그립고 힘들던 옛날이 서럽다. ............ 가을비가 그치고 구름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비친다. 어제는 비가 내렸다. 봄비같은 가을비가... 이즈음에 가을비가 내리면 의례히 바람과 추위를 몰고오기 마련이다. 어제는 비가 차분히도 내리고, 비내린 후의 아침기온은 마치 봄비가 내린 후에 날씨가 풀린 것처럼 포근하다. 사람이란 게 참으로 간사하기는 하다. 초가을에 반짝 추위가 닥치니 가을이 실종됐다고 파출소에 실종신고를 하고 난리부루스를 치더니만, 따사로운 가을날이 이어지니, 이제는 겨울이 어디로 갔느냐고 난리법석이다. 결국..

끝끝내 / 정호승/221122

끝끝내 / 정호승 헤어지는 날까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헤어지는 날까지 차마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그대 처음과 같이 아름다울 줄을 그대 처음과 같이 영원할 줄을 헤어지는 날까지 알지 못하고 순결하게 무덤가에 무더기로 핀 흰 싸리꽃만 꺾어 바쳤습니다 사랑도 지나치면 사랑이 아닌 것을 눈물도 지나치면 눈물이 아닌 것을 헤어지는 날까지 알지 못하고 끝끝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끝끝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 날씨가 포근합니다. 오늘은 비가 내린다합니다. 비도 이왕 오려거든 대지를 흠뻑 적시고도 남을만큼 내린다면 좋겠지만, 이곳 남부지방에는 흡족한 비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오늘이 절기상으로 소설(小雪)이라는데, 기온이 초가을처럼 ..

손을 잡으면 /221121

손을 잡으면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 따뜻해집니다 누군가와 함께 가면 갈 길이 아무리 멀어도 갈 수 있습니다 눈이 오고 바람 불고 날이 어두워도 갈 수 있습니다 바람 부는 들판도 지날 수 있고 위험한 강도 건널 수 있으며 높은 산도 넘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라면 갈 수 있습니다 나 혼자가 아니고 누군가와 함께라면 손 내밀어 건져 주고 몸으로 막아주고, 마음으로 사랑하면 나의 갈 길 끝까지 잘 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혼자 살기에는 너무나 힘든 곳입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사랑해야 합니다 단 한 사람의 손이라도 잡아야 합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믿어야 합니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나의 모든 것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동행의 기쁨이 있습니다 동행의 위로가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누군가의 동행에 감사..